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도, 분명히 살아 있었던 나
살아 있다는 말이,
한때는 나를 위로하지 못했다.
그 말이 너무 가벼워 보였고,
나는 나를 붙잡기엔 너무 무거웠다.
하루에도 몇 번씩 흔들렸다.
작은 자극에도 가슴이 뛰었고,
사람들과의 말 한마디,
조금의 실수, 아주 사소한 일에도
나는 숨을 삼키며 눈을 피했다.
그럴 때마다 머리속은 미래를 상상했다.
아무도 날 좋아하지 않을 미래, 다 실패할 미래, 모든 관계가 끊어질 미래.
그 미래는 나를 지키기 위한 상상이였지만,
결국엔 나를 갇히게 만드는 감옥이 되었다.
불안은 언제나 말한다.
"미리 준비하라"고,
나는 그 말에 따라 말도 조심하고, 마음도 조이고, 나를 버리고, 가능성을 포기하며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했다.
하지만 그렇게 나도 모르게 결정해버린 미래가
결국 현실로 다가왔을때
나는 속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러면 그렇지, 역시 나는 안 되는 사람이야.'
불안이 만들어낸 예언은
결국 나를 향한 예언이 되어버렸다.
나를 구하려 만든 상상은
나를 무너뜨린 결과로 돌아왔다.
그 사실이 너무 늦게야 와닿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모든 순간에도 나는 살아있었다는 것을.
기억은 희미하고, 기록은 모호하고, 표정도 말도 흐릿했지만
그 시간에도 분명히 내가 있었다는 것을.
이 책은 그 흔적을 붙잡기 위해 써 내려간 기록이다.
완전한 회복이 아니라,
아직도 치료 중인 마음으로부터
흔들리는 나날을 견디는 누군가에게 보내는 고백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혹시 나와 같은 곳에 있다면,
꼭 이 말을 기억해 주었으면 한다.
기억나지 않아도 괜찮다.
불안해도 괜찮다.
아직 살아 있는 당신이,
이미 충분하다는 것을.
삶이라는 공간은
기억 속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도 버티고 있는 이곳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