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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성호 Sep 19. 2018

네모칸 세상, 그곳은 SNS

친구가 외국으로 여행을 간 모양이다. 관광지에서 멋들어진 포즈를 취해 보인 친구의 모습이 부쩍 SNS에 자주 보인다. 군대 동기가 결혼을 하나 보다. 턱시도를 반듯하게 차려입은 그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내가 아는 누님은 이번에도 제주도로 여행을 갔나 보다. 비행기 날개 사진과 함께 떠난다는 의미의 파란색 글자(해시태그)가 곁들여져 있다.




몇 해 전, 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영화 「써로게이트」를 보았다. 인간이 더 이상 집밖으로 나올 필요가 없어진 세상을 그린 SF영화였다. 영화 속 사람들은 모두가 각자의 집에 설치된 시스템 튜브 안에서 생활하게 되는데, 시스템 튜브에 뇌파를 접속시키기만 하면 컴퓨터가 그 사람의 대리 로봇에 전파를 연결시켜 세상일을 대신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들이 로봇을 이용하며 좋아진 점은 단연 안전이었다. 로봇을 대신 내세워 살아가는 인간은 더 이상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을 일도, 위협받을 일도 없다. 혹 사고가 난다 해도 로봇만 바꿔 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좋아진 점은 사실 따로 있었다. 그건 바로 화려함이었다. 인간의 모습을 똑같이 구현해 낼 수 있는 로봇은 사용자가 가장 화려했던 시절의 모습을 연출해 냈고, 때로는 근사한 다른 누군가의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원격 로봇은 말 그대로 세상이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이 된 셈이었다.


그렇지만 화려함엔 반드시 이면이 존재하는 법. 화려한 로봇으로 자신을 치장한 사람들은 일과가 끝나는 밤이면 시스템 튜브에서 빠져나와 힘없이 침상에 누웠고, 거울 속에 비친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부정하기도 했다. 그러다 다음 날이 밝아오면 어김없이 시스템 튜브에 누워 자신을 화려한 로봇으로 둔갑시켰다.




나는 온라인상의 내 모습이 때로는 영화 속 대리 로봇과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SNS라 불리는 작은 네모 칸 세상 속의 나는 타인에게 그럴듯한 모습으로 비쳤지만, 실상은 허허로울 때가 많았다. 심지어 어떤 날은 현실 세계의 활동이 온라인 포스팅 수단이 되기도 하면서 현실과의 괴리감이 더욱 심해지곤 했다. 그러나 현실의 허전함을 달래는 수단 역시 네모 칸 세상일 때가 많았고, 나는 속절없이 그 좁고도 넓은 세상에 나 자신을 기대곤 했다. 풍요 속의 빈곤인 셈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이 있다면, 그간 네모 칸 세상을 통해 꽤 괜찮은 인연들을 여럿 얻었다는 것이다. 네모 칸 세상을 통해 알게 된 사람들과 나는 ‘책’이라는 공통의 관심사로 가까워졌고, 가끔은 그들이 물리적 거리가 가까운 이들보다 정서적으로 더 가깝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각자의 빈곤한 마음이 모여 서로의 풍요가 되어 준 걸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모두 외롭고 불안한 미완성의 존재들이 아니던가. 아마 우리에겐 적절한 장소가 필요했을 것이다.


서로의 결핍을 채워 줄 수 있는, ‘만남의 광장’ 같은 곳 말이다.





네모칸 세상, 그곳은 SNS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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