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14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잊고 지내던 폐렴이 다시 아들을 찾았다

by 사이 Feb 25. 2025

봄 햇살을 가득 머금고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지고 진달래가 한창 꽃망울을 터뜨릴 때 우리 집에서는 아들이 콧물 방울을 터뜨렸다. 머리가 띵 할 정도로 춥디 추운 파주 한겨울에도 안 걸리고 잘 넘겼던 감기가 봄바람을 타고 아들 녀석에게 찾아왔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되고부터 병원도 혼자 곧잘 가서 증상을 이야기하고 약을 타와 이번에도 여러 차례 혼자 보냈는데 혼자 보내서였을까 코감기가 일주일을 넘기더니 기침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이때 알아채고 얼른 폐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큰 병원에 갔어야 했는데 해열제를 먹이면 이내 열이 삭으라 들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아이도 천방지축으로 잘 놀아 학교도 보냈다. 



아들의 기침 소리가 심상치 않다


그냥저냥 놀던 아이가 아침에 축 쳐져 있다. 머리가 어지럽단다. 이런 열이 38.5도! 전날까지도 뛰놀던 아이는 하룻밤사이에 급격히 안 좋아지더니 완전히 드러누워버렸다. 급한 대로 해열제를 먹이고 X-레이과 혈액검사가 가능한 큰 병원에서 진료를 보니 ‘기관지폐렴’이란다. 기침소리가 예사롭지 않았을 때 얼른 조기진단을 받고 빠른 치료를 했어야 했는데 병을 키운 것 같아, 아이를 힘들게 방치한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는데 거기에 의사가 일갈을 날린다. “다른 엄마들은 오전 일찍 와서 진단받고 입원시키는데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나를 야단한다. 내 새끼가 아파 나도 아픈데 거기에 호통까지 들으니 내 정신마저 혼미해진다. 다행인 건 입원실이 있어 바로 입원을 시킬 수 있었고 의료파업으로 진료대란이라는데 조금 늦긴 했지만 진료를 볼 수 있어 다행이었다. 



아이가 클수록 서서히 잊혀졌던 폐렴


오랜만이다. 폐렴. 어렸을 때는 참 많이도 앓았는데 새삼스럽다. 아들이 어렸을 때 집 근처에 있는 큰 대학병원은 다 가본 것 같다. 겨울이 올 때마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그때마다 맞벌이였던 우리 부부는 교대로 휴가를 내고 입원해 있는 아들을 간병하고 아프지 않은 딸아이는 집에서 친정엄마가 돌봐주셨다. 갑작스러운 휴가로 진행 중이던 일은 올스탑 되고 급한 일은 급한 대로 병원에서 처리하는 식이었다. 출장이나 외근에서 열외 된 것만으로도 다행이던 직장 생활이었다. 힘들다는 생각도 못할 정도로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어느덧 아이는 커 있었고 더 이상 병원에 입원하지 않아도 될 만큼 겨울을 잘 이겨냈다. 그간 겨울이 여러 번 찾아와도 별달리 아프지 않아서였을까?! 아이가 기관지가 약했다는 사실도 까맣게 잊고 여러 해를 보냈는데 올해는 겨울도 다 지난 봄에 찾아왔다. 



링거 바늘 꽂고 혼자 있어도 될 만큼 큰 아들


오랜만의 입원이라 무엇을 챙겨야 할지 모르겠다. 게다가 오후에는 딸아이도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병원예약이 되어 있어 가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앓아누웠던 아들은 수액 덕분인지 해열제 때문인지 앉아서 조잘거린다. 그래 할 수 없다. “혼자 있을 수 있지? 엄마는 00 병원 갔다가 4시 전에 다시 올게. 아프면 간호사 선생님께 말씀드리면 돼” 아이는 핸드폰으로 게임만 할 수 있으면 괜찮다고 한다. 놀거리 하나 던져주면 병원에서 링거 바늘 꽂고 혼자 있어도 될 만큼 아이가 컸다. 뾰족한 링거 바늘도 큰 동요 없이 순순히 맞았고 채혈도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아이가 클수록 내 손과 마음이 덜 간다. 울고 불고 엄마 곁을 떨어지지 않으려던 아이는 이젠 없고 장딴지에 근육이 붙었다며 굵어진 종아리를 내밀곤 엄지를 치켜세우는 남자 어린이가 떡 하니 있다. 이젠 덩치가 제법 돼서 안으면 그 무게가 온전히 느껴져 뒤로 밀린다. 아이는 엄마 없이도 시간을 혼자 보낼 수 있을 만큼 컸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데 내가 그러했다.


아들이 입원한 날, 엄마의 칠순 생신이다. 예나 지금이나 엄마에게 SOS를 친다. “엄마, 와줄 수 있어요?” 하는 물음에 엄마는 늘 긍정으로 응답하신다. “그래, 가야지. 내가 가야지.” 크게 돈사를 거느린 엄마지만 늘 한 걸음에 달려오신다. 미안하기 짝이 없다. 엄마의 밥벌이를 뒤로 하시고, 칠순 생일상을 마다하시고 오늘도 내 딸을 돌보러 한달음에 달려오신다. 농장일을 돕는 사람이 생겨 손을 덜었다지만 환절기 돼지도 감기에 걸려 세심하게 아침저녁으로 온도 조절을 해줘야 하는데 손 놓고 우리 집에 오셨다. 칠순 여행을 일찍 다녀와 미안함을 덜었다는 짧은 생각이 스친다. 감사한 마음은 셈을 하는 것이 아닌데 늘 신세 지는 마음을 며칠간의 여행으로 빚 갚듯 생각하는 내 좁은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순간이다. 자신에 대한 사랑은 무한인데 부모에 대한 사랑은 유한한가 보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데 딱 내 모습이다. 품 안에 안겨 잠든 아들 얼굴을 들여다본다. 어느 순간 떠날 귀한 손님. 아들 역시 내가 엄마를 생각하듯, 나를 무한 사랑으로 바라보겠지. 그리고 이내 내 품에서 떠나가리라.



좁은 입원실에서 오늘도 우리의 사랑은 쌓여간다.


아들이 입원해 있는 내내 둘이 좁은 입원실에서 살갑게 붙어있었다. 링거를 오른손 안쪽 접히는 곳에 맞아 팔을 접질 못해 나와 있는 내내 삼시세끼 밥을 먹여주었다. 소복이 올린 흰쌀밥 위에 반찬을 가지런히 놓아 아이 입 속으로 넣어주는 맛이 꿀맛이다. 내가 먹지 않아도 아이 입 속에 밥이 들어가는 걸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는 어른들 말이 딱 그대로다. 태생적인 혹은 신화적인 모성애를 믿지 않는다. 11년간 쌓아 올린 모정이리라. 틈틈이 낮잠도 잔다. 아이를 두 팔로 안아 꼭 껴안고 잠든다. 아이의 동그란 볼 언덕에는 잔디 마냥 솜털이 일렁인다. 그리고 감은 두 눈에 길게 드리워진 속눈썹이 차양막 같이 드리워져 있다. 콧볼이 동글동글 하니 아직 아기 때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 인중에는 전에 없던 찐한 솜털이 보인다. 아이가 이렇게 커가는구나. 그리고 그 아이를 내 품에 안고 이렇게 볼 수 있어 다행이다. 많이 안아 줘야지. 비록 폐렴으로 입원했지만 아이를 새삼 가까이 옆에서 지켜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다. 


언제 또다시 이렇게 안아볼까. 아이는 클 테고 조금씩 내 품을 떠날 텐데. 

지금 이 순간 많이 안아주리라. 안을 수 있을 때, 이렇게 안길 때 많이 안아주리라.


#육아 #병치레 #어린이_폐렴


매거진의 이전글 스쿠버 다이빙 라이센스를 얻다!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