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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 Jun 05. 2024

공황장애 1 - 공황장애 판정

그분은 그렇게 오셨다.

다행이다. 오래된 기억이고 증상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 나은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핸드백 안 작은 파우치에는 공황장애 약이 아직도 여전히 자리하고 있다. “네가 왜?”, “어떻게 된 거야?” 사돈의 팔촌까지는 아니어도 가까운 지인부터 멀리 발령 나서 자주 보지 못하는 회사 분들까지 하나같이 의아해했다. 심지어 친정엄마까지 “그게 뭐니?”설명해 드리면 “그런 병이 왜 너한테 왔어?” “응?” 나도 묻고 싶다. 너 왜 왔냐고 누가 좀 알려주세요! 지금이야 흔했지만 당시만 해도 연예인 병이었다. 유명 연예인이나 걸리는 병을 네가 왜 걸리냐고 묻는 분도 계셨다. 


일과 가정, 자아의 부조화


당시 아이들은 어렸고 회사 일은 표현 그대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야근을 밥 먹듯 했고 교대근무를 하는 남편은 하루 건너 집에 없었다. 대신 나보다도 시급이 높은 아이들을 봐주시는 이모님이 계셨다. 참 다행이다. 내 경제적 여건에 이모님을 모실 수 있어 다행이었다. 한 번은 주말에 나와 근무하는데 이모님이 약속이 있으시다고 회사까지 친히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가셨고 아이들은 내 옆에서 놀고 난 일을 서둘러 마무리해야 했다. 그땐 그렇게 돌아갔다. 잠시 멈춰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이렇게 계속해도 될까?’하고 생각할 틈조차 없이 일과 가정을 아슬아슬하게 양립하며 하루살이를 했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그날은 점심도 거르고 서둘러 사무실 일을 마무리했다. 오후에 매장 오픈 VMD 소품들을 사러 가야 하는 스케줄이 있었다. 동네 운전만 하던 내가 동네를 벗어나 소품까지 내 차에 가득 싣고 오던 날. 머리는 어지럽고 가슴이 답답했다. 끼니를 한번 걸러 그런가 보다 생각했다. 그다음 날은 외부 미팅이 있었다. 내용을 들어보니 '굳이 내가 나가지 않아도 되는 일인데...' 싶다. 가만히 앉아 해결되지도 않을 문제를 가지고 길고 긴 이야기를 답답하게 들으며 사무실에 남아 있는 아직 끝나지도 않은 일들을 생각했다. '사무실로 복귀해 마무리해야 하나...' 사무실로 복귀하는 버스에 오르기 전 한 손에는 아이들에게 줄 빵을 잊지 않고 샀다. 크림이 잔뜩 들어간 빵을 아이들이 꽤나 좋아할 것 같다. 데드라인이 있는 잔업과 아이들에게 줄 빵. 손은 가볍지만 마음은 한없이 무겁다. 사무실은 출판단지에 위치해 있어 버스는 합정에서 승객들을 태워 바로 자유로를 내달린다. 그날은 퇴근 전이라 도로는 한산한데 비해 비가 추적추적 내려서 인지 퇴근 시간이 아님에도 앉을자리가 없었다. 당시만 해도 입석이 가능했다. 버스가 흔들릴 때마다 내 머리도, 내 가슴도 울렁거린다. 급기야 심장이 가슴 밖으로 뛰어나올 듯 뛰고 숨이 안 쉬어졌다. 머리가 띵하며 앞이 깜깜해졌다. 숨은 안 쉬어지고 앞이 안 보인다. 운전기사님 바로 뒤에 서있었는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행히 앞 좌석에 앉으신 분이 자리를 양보해 주셔서 운전석 옆 기둥을 붙들고 앞으로 고꾸라져 있었다. 기사님께는 창문을 좀 열어 달라고 하곤 숨을 크게 드리 쉬려고 했다. 큰 들숨에도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견뎠는지 모르겠다. 자유로에서 내릴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냥 헐떡대며 버티는 수밖에. 



바닥이 일렁인다


이내 버스에서 내렸지만 정신이 나가있었다. 퇴근 이후엔 유령도시가 되는 출판단지에 내려 오가는 사람도 없이 버스정류장 의자에 한없이 앉아 있었다. 길 건너 편의점에 가서 물이라도 마시고 싶은데 2차선 도로가 왜 이렇게나 먼 거리인지. 길 건너다 기절하면 보는 사람 없는 길바닥에서 뺑소니 날까 무서웠다. 당시엔 몸을 가누지 못해 불안했다. 길을 건너기가 참 힘들었다. 끼니를 제대로 먹지 않아 당이 떨어졌나 싶어 손에 쥐고 있던 빵을 주섬주섬 먹고는 택시를 불러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참 힘드네. 아니 죽을 뻔했네.' 그다음 날도 나는 외근이 있었다. 이번에는 길바닥이 물처럼 일렁인다. 길바닥이 나에게 밀려온다. 당시 남편이 교대근무하고 퇴근 중이라 바로 나를 데리고 응급실에 갔다. 응급실에 가니 응급환자들이 누워있는데 팔다리가 멀쩡한 내가 "땅이 울고 있어요. 가슴이 답답해요. 머리가 어지러워요." 하는데 몹시 민망했다. 물리적으로 팔다리가 부러져 피가 철철 나는 것도 아닌데 괜히 왔나 싶었다. 응급실 의사는 마치 정해진 수순대로 일련의 검사들을 하곤 신경외과 진료를 잡아주었고 난 그곳에서 ‘공황장애’를 판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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