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야호 여행 ep2. 우스산 로프웨이(케이블카) + 달리기
도야호 여행 ep1. 도야호 크루즈 + 함박스테이크 + 주판 여인 에 이은 글입니다.
누군가 해외여행을 가면 루틴으로 달리기를 한다는데 나도 어쩌다 보니 가끔 뛰게 됐다. 러닝 머신에서 뛰는 게 아니라 잔잔한 호수를 낀 인도를 뛰고 벚꽃 핀 들길을 뛴다. 때론 낯설고 인적이 드문 산길을 무서운 발걸음으로 내달려 내려온 적도 있다. 뛰게 된 계기야 무엇이든 낯선 곳에서 달리기는 내게 좋은 추억을 안긴다.
아침에 본 맑은 하늘 아래 요테이산이 멋져 앞뒤 재지 않고 오른 우스산. 시골 완행버스는 서너 시간에 1대인데 이걸 산에 오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보다 1시간 남짓 걸어내려 가는 시간이 더 빠르다. 찬찬히 걷기 시작한 발걸음이 신나게 도움닫기 하는 순간 내 몸도 내 마음도 날아간다. 우스산에서 도야호수까지 싸이의 ‘예술이야’를 들으며 뛰어내려온 순간 그날 정말 예술이었다.
우스산 케이블카
이 넓고 높은 곳에 나 혼자인 거야?!
그곳에는 몇 년 전까지도 활동했던 활화산 우스산이 있고 그 언저리에 케이블카가 있어 산 위에 올라가 칼데라 호수인 도야호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조용한 시골마을인 데다 처음 갔을 때는 코로나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는 시기라 사람 구경하기가 더욱 어려웠다. 상가가 있는 마을 중심지에도 사람이 없고, 심지어 케이블카를 타러 간 곳엔 매표소 직원, 케이블카 문을 여닫아주는 직원, 케이블카 안에서 안내해 주는 직원 단 3명, 그리고 나뿐이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온 정상에도 아무도 없다. 직원들과 나뿐. 마치 ‘스즈메의 문단속’에 나오는 버려진 마을 한가운데에 있는 기분이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온 산 중턱에는 흰 눈 위에 내 발자국뿐 아무것도 없다. 조금 걸어 올라가면 탁 트인 공터에 벤치가 하나 있는데 그곳에 앉으면 왼쪽으로는 칼데라 호수가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바다가 보인다. 참 신기한 조화다. 내가 있는 곳을 중심으로 트라이앵글처럼 바다와 호수가 동시에 존재한다. 흰 눈밭에 온전히 내 발자국 밖에 없는데 다시 반대방향으로 모양을 내며 내려간다. 이곳에 올라올 때는 설레는 여행자의 발걸음으로 사뿐히 올라왔는데 되돌아가는 길은 조심스럽다. 넘어지지 않으려 어찌나 발끝에 힘이 들어가는지 케이블카까지 되돌아가는데 시간은 배로 걸리고 힘도 배로 든다. 아는 길을 가는 게 더 힘들구나. 길이 어떨지 예상이 되니 몸이 더 움츠려 든다.
도야호를 바라보며 달려내려온 산길
숙소로 돌아가는 길, 버스는 하루에 몇 대 없고 택시도 오는데 30분. 택시 타고 돌아가는데 15분이라 걸어 내려가는 시간과 비슷하다. 처음 가보는 길, 차 타고 스쳐 지나간 그 길을 내 발로 걸어 내려갔다. 인적은 드물지만 보도 블록 눈도 다 치워졌고 햇살도 따사롭다. 그렇게 조금씩 걷기 시작했다. 숲 속 신선한 공기가 내 가슴 깊숙이 파고든다. 강원도 금강송 마냥 침엽수들이 삐쭉삐쭉 쏟아 있는 풍경을 벗 삼아 굽이굽이 돌아 산길을 내려가니 이내 중턱부터는 햇살에 반짝이는 도야호수가 저 멀리 보인다. 눈이 부신다. 가슴도 두근두근 설렌다. 세상은 있는 그대로 더없이 찬란하고 아름다운데 버겁게 살아온 것 같다. 뭐 그래 대단한 삶이라고 꼭 이래야 하고 저래야 했을까. 물 흐르듯 어차피 지나가는 시간인 걸 힘들게 생각을 곱씹으며 살아온 것 같다. 저렇게 눈부시고 잔잔한 호수도 흐린 날이면 요동치고 어두운 빛으로 물들다 이내 다시 제모습으로 돌아온다. 나도 다시 찬란히 눈부시리라. 굽은 길 돌아내려 오면 다시금 빛나는 나 자신을 마주할 것이고 때론 흔들릴 때도 있지만 이내 찬란하리라. 내 인생을 축복한다. 단지 안 가본 산길을 걸어 내려온 것뿐인데 낯선 곳에서 나 자신을 무한 긍정하게 된다. 충만한 마음 때문이었을까 나도 모르게 한 발을 박차고 힘껏 다리를 들어 올려 달리기 시작했다.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 숨이 차도록 달려본 적이 근래 없었던 것 같다. 소싯적 달릴 때 듣던 노래 ‘예술이야’를 듣는다. 전주부터 신이 난다. 오래전 달렸던 기억, 신나는 템포 그대로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으며 뛰다 보니 도야 호수 곁으로 내려와 있다. 찬 홋카이도의 공기와 나의 뜨거운 입김이 만나 하얀 구름을 만들고 내 등은 봄비를 맞은 것처럼 촉촉해졌다. 달리는 것 자체가 좋아서였을까 땀범벅이 되었어도 축축 늘어지는 솜뭉치가 아닌 코앞에 있는 흰 구름을 잡아챌 수 있을 것 같이 신나고 가벼운 발걸음이었다.
계획하지만
계획하지 않은 곳으로 흘러간다
도야호를 달리던 날은 정해진 기차시간이 있었다. 날이 좋아 계획을 변경했고 뜻밖의 풍경을 마주하게 되었다. 오랜 직장 생활 끝에 건강 이상 그리고 잠시 일시정지 상태인 나의 커리어. 당시 정해진 경로 없이 마냥 떠다니는 일상 같아 내심 불안하고 조급한 마음이 앞섰는데 달리고 나니 별거 아닌 감정이 되었다. 어떤 길이 될지 모르는 새로운 길이지만 난 내가 원하는 길을 찾을 것이고 신나게 달려가 눈부신 나 자신을 보게 될 거라 확신한다. 낯선 곳에서 달렸던 그날은 새로운 길을 신나게 갈 나를 힘껏 응원했던 날이다. 지금도 그러하다.
단체관광객들이 없으면 조용한 곳, 우스산 로프웨이!
https://maps.app.goo.gl/5gwQeeCG7wqQNX9y7
날이 좋으면 무조건 가야 하는 우스산!
https://maps.app.goo.gl/LERuYCE2oesD1bFw7
산 위에 이렇게 큰 호수가 있을 줄이야! 멋짐 뿜뿜!
https://maps.app.goo.gl/eLMVyZQNGziwdXXa6
도야호 너머로 웅장하게 보이는 요테이산
https://maps.app.goo.gl/8t2AntmPrFhdo2c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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