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코다테 여행 ep9. 징기스칸과 삿포로 클래식은 언제나 옳다!
하코다테 여행 ep8. 카페 피베리 + 롯카테이 + 고료카쿠 에 이은 글입니다.
호불호 갈리는 양고기, 징기스칸
수프카레와 양대 산맥을 이루는 삿포로의 맛, 징기스칸. 화구가 징기스칸 투우 모양을 닮아 그 이름이 징기스칸이란다. 이 요리의 정체는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양고기 구이다. 튀르키에 여행에서 양고기를 못 먹던 아저씨는 같은 테이블에 앉기 조차 힘들어하셨다. 패키지임에도 불구하고 따로 싸 온 마른 멸치와 진미채로 한 끼 식사를 하실 만큼 양고기를 못 먹는 사람들은 영 끌리지 않는 음식이 이 양고기다. 누군가에게는 극불호인 이 양고기가 삿포로 명물이라니 뭐든 가리는 거 없이 먹는 나로서는 이왕지사 삿포로에 왔으면 응당 먹어봐야 하는 음식임에 틀임이 없다.
삿포로의 정신없던 첫 징기스칸
수프카레만큼이나 삿포로 시내, 특히 징기스칸 맛집은 스스키노를 중심으로 옹기종기 모여있다. 다이마루와 그 분점들. 크고 작은 가게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며 늦은 저녁부터 차고 넘치는 손님들을 받아내느라 정신이 없다. 다시 말해 삿포로 징기스칸을 내가 원하는 식당에서 즐기려면 반드시 사전 예약을 해야만 한다. 혼자 여행을 비행기와 숙소 예약만 하곤 계획적으로 촘촘히 움직이는 스타일이 아니라 레스토랑을 예약해 먹으러 다닌 적이 드물다. 그날 상황에 따라, 동선에 따라먹고 싶은걸 그 자리에서 결정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징기스칸과는 인연이 쉽게 닿지 않는다. 겨우겨우 3일에 걸쳐 여러 군대를 찔러 오픈런 한 곳에서 간신히 맛볼 수 있었는데 노력만큼이나 기대했던 맛은 아니다. 단지 삿포로에 왔는데 머스트잇 중 스탬프 하나 더 찍는 정도랄까?! 움푹 들어간 반원모양의 모자불판을 개인화로에 얹어 놓고는 그 위에서 고기를 굽기 시작한다. 함께 나오는 야채는 양파 정도. 몇 번 굽고 요령이 없어서였는지 판에 고기가 들러붙고 그을음이 제법 많이 생긴다. 앗! 뭔가 잘못됐다. 처음이라 미숙하기도 하고 혼자 고기를 이리저리 뒤집다 보니 생각처럼 잘 구워지지 않고 연기만 난다. 이런 불판이 같은 공간에 몇십 개가 있다. 연기가 매장 가득 찬다. 불판 위의 노릇한 고기보다 칙칙 소리와 연기로 기억되는 첫 징기스칸. 정신없이 한 번에 모든 고기를 굽고 나서야 불판 테두리에 고기들을 쌓아두고 밥 한 숟갈에 특제 양념소스를 찍은 고기를 올리고 한입에 넣었다. 그리고 빠질 수 없는 맥주. 고기 굽느라 달아났던 정신이 이제야 돌아온다. 그래 맥주 맛이지! 첫 징기스칸은 고기 자체 보다 매쾌한 연기 속에서 마신 목 넘김이 청아했던 삿포로 클래식 맥주 맛이었다. 햐~! 클래식 맥주가 참 맛있네!
100년 전통 스키야키 대신
친구집 같았던 하코다테 징기스칸
삿포로에서 기차로 4시간 가는 곳, 야경으로 유명한 하코다테. 이곳의 야경과 지척에 있는 오누마코엔, 전망대, 하치만자카 등 많은 관광지들만큼이나 기대한 곳이 100년 전통의 스키야키 집 '아사리'다. 그런데 아쉽게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먹지 못했다. 예약을 하지 않으면 못 먹는 집을 나는 무슨 배짱으로 3번이나 예약도 않고 찾아갔는지 모르겠다. 매번 갈 때마다 ‘스미마셍’과 ‘고멘나사이’였다. 예약 없이는 죄송하지만 안 된다. 정말 미안하다. 늘 예약 없이 방문한 나에게 한결같이 친절하게도 늘 같은 대답을 해주신다. 터덜터덜 발길을 돌려 돌아오는 길에 꿩 대신 닭이라고 징기즈칸 집에 들렀다. 고기는 먹고 싶지만 소고기가 안 되니 대신 양고기다. 돌아가는 길 위에 있어 어쩌다 보니 흘러 들어가게 된 곳. 일부터 찾아가진 않을 것 같은 도로변 아주 작은 집이다. 늦은 오후 오픈 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인지 아주 작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그 연기에 나도 합세해 본다. 주방에 붙어있는 바에 앉아 주인장이 추천하는 로스 부위를 주문하고 역시나 시원한 생맥주를 시켰다. 두 번째 징기스칸 집이어서 그런지 여유롭게 메뉴판을 훑어보고 추가로 숙주도 주문하고 와사비도 시켰다. 생고기는 간장소스보단 와사비지! 그럼 그럼! 이곳은 식당이라기 보단 자주 놀러 가는 친구집 주방 같았다. 어쩌다 들렀는데 고기를 굽곤 먹고 가라 하시는 친구 부모님 같다. 나오는 고기를 잘 먹는지 생 와사비를 작은 강판에 잘 갈아서 먹는지 주인장 부부가 부담스럽지 않게 눈으로 나를 챙긴다. 내가 잘하고 있나 조심스레 살핀다. 내가 바 너머로 주인장 아저씨께 여쭤보면 아저씨는 영어를 잘 못하시지만 최선을 다해 ‘바쁜 와이프’를 불러 잘 알려주라고 하는 눈치다. "와사비는 이렇게 갈아서 먹는 거고 야채는 이쪽에 놓아야 타지 않고 먹을 수 있어" 주인장 부부의 세심한 보살핌 덕분에 나는 꽤 든든한 한 끼를 먹고 추운 거리를 따뜻하게 나설 수 있었다. 첫 번째 징기스칸과 다르게 좀 더 여유로웠고 좀 더 친근했다.
하코다테 여서 여유로웠고
바쁘지 않아 즐길 수 있었던 나만의 시간
셋 번째 방문 역시 '아사리' 스키야키 집을 가려다 역시나 '곤멘나사이'를 듣고 나왔다. 그래 지난번 양고기 집을 가면 되지 하고 나섰는데 한 블록 더 가 새로운 양고기집이 오픈했단다. 리뷰가 많진 않지만 모두 칭찬 일색이다. 그 칭찬, 나도 한번 해보자! 서빙하는 아주머니의 우렁찬 목소리를 들으며 문을 열고 입장했다. "이랏세이마세~!" 어쩜 하나 같이 이곳 식당들은 친절할까. 지나가는 전차를 볼 수 있는 창가 쪽 바 자리에 앉았다. 내 앞에 불판이 있고 창문 너머로 간간이 지나가는 예쁜 전차를 구경삼아 살얼음 동동 삿포로 클래식을 들이켜며 본다. 적당히 배고파 가벼워진 몸에 삿포로 클래식을 시원하게 꿀꺽꿀꺽 넘겨준다. 이 맛이지! 100년 된 스키야키는 먹지 못해도 아쉬움이 남지 않는 이 맛! 특히나 오늘은 더 맛있다. 한겨울 서리 낀 창문 마냥 얇은 눈이 뒤덮인 하얀 맥주잔에 찰랑찰랑 담긴 삿포로 클래식 맥주. 홋카이도에서만 맛볼 수 있는 그 맛. 특히나 오늘은 얼음잔이라 더 시원하고 경쾌하다. 고기를 굽기도 전에 절반을 단숨에 마시고 내려다보니 살얼음이 동동 떠있다. 시골 들녘에 추수가 끝나고 쌓인 볕짚에 서리가 앉은 것 같다. 어린 시절 새벽녘에 봤던 늦가을이 맥주잔에 동동 떠있다. 가득 찼던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온다. 이제 불을 피울 시간이다. 한점 한점 불판 위에 고기를 올려놓는다. 저녁장사라 그런지 여러 부위를 한 번에 내어오는 세트메뉴만 판다는데 사실 어떻게 다른지는 잘 모르겠다. 이미 맥주 맛에 취해서 인지 이 맛도 맛있는 맛 저 맛도 맛있는 맛이다. 분명 성인 1인분인데 부족하다. "이모~ 하나 더요!"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스미마셍~ 원모어, 플리즈" 일어와 영어가 뒤섞인 이상한 말을 내뱉곤 비어졌던 불판을 다시 채워본다. 흰 쌀밥에 고기 한 점 올리고 와사비와 김치도 얹어 입안 한가득 채워 넣는다. 그래 이 맛이지! 인생 별거 있나. 삼시 세끼 맛있게 먹을 수 있으면 그게 행복이지.
별다를 것 없는 인생 후반전에 대한 고민들. 회사를 나오고 잘할 수 있을까?! 인생 2막이라는데 그 2막을 잘 열고 있나?! 내가 잘하는 게 뭐였지?! 하는 온갖 상념들이 밥 한술에 꿀떡꿀떡 잘도 넘어간다. 하루하루 맛있게 살다 보면, 평범한 일상을 하고 싶었던 일로 조금씩 채워나간다면 뭐든 이룰 수 있겠지 하는 기분 좋은 생각들이 샘 쏟는다. 단지 맛있는 밥 한술 때문에, 그리고 거침없이 넘어가는 맥주 덕분에 하고 싶은 일을 하나씩 해 나갈 용기가 생긴다. 별거 없다. 단지 하루하루 성실히 해나 갈 뿐. 이젠 나설 때다. 허기진 배도 든든해졌고 갈팡질팡 확고한 의지 없이 약해졌던 영혼도 조금은 단단해졌다.
그냥 하는 거야. 내가 하고 싶은 일. 잘할지 못할지는 나중에 알게 되겠지.
한국인은 밥심 이라더니 내가 그랬다. 징기스칸과 흰쌀밥, 맥주의 조합. 유약한 일상에 지쳐 훌쩍 떠나버렸던 홋카이도 여행에서 일상을 나는 힘을 얻었다. 고작이라고 할 수도 있는 고기반찬에 쌀밥에서 말이다. 어쩌면 하코다테 여서 인지도 모르겠다. 징기스칸은 양고기 여서 특별했다기 보단 밥 한 끼 든든히 먹게 해 준 반찬이다. 그리고 아무리 바빠도 정성스러운 음식을 친절히 웃으며 내어준 여주인장들의 마음 씀씀이다. 나에게 징기스칸은 씹으면 씹을수록 맛있는 고기라기 보단 먹으면 먹을수록 사람 냄새와 든든한 밥 한 끼가 주는 삶의 여유, 평안한 일상을 누리는 힘이다.
이젠 일부러 징기스칸을 먹으러 하코다테에 가야겠다. 바삐 돌아가는 도심 대신, 밀려드는 손님들에게 신속하게 고기를 내어주는 삿포로 징기스칸 가게 대신 나는 한적한 하코다테에 일부러라도 징기스칸을 먹으러 가야겠다. 그리고 삿포로 클래식은 언제나 늘 옳다.
[삿포로] 나의 첫 징기스칸 '히게노우시'
https://maps.app.goo.gl/GDA3QcDXcXky78MAA
[하코다테] 삼고초려했음에도 먹지 못한 100년 전통의 스키야키 '아사리'
https://maps.app.goo.gl/ka5Xs13DYTDmK65q9
[하코다테] 스키야키 대신 선택한 길 건너 양고기집 'lidaya'
https://maps.app.goo.gl/GFobnd3HLazoaYtaA
[하코다테] 스키야키 대신 선택한 두 번째 양고기집 '焼いてもらうジンギスカン大門ひつじ亭十字街店'
: 어떻게 읽는 줄 몰라 구글 번역하니 '구워주는 징기스칸 다이몬 히츠지테이십자가점' 라고 한다.
근데 구워주진 않는다. 셀프굽기. 눈 오는 날 예쁜 전차뷰를 감상할 수 있는 곳!
https://maps.app.goo.gl/oWMbuk1fnTmjgBQy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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