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코다테 여행 ep7. 카페모이와 + 공동묘지 + 비오는 거리 산책
하코다테 여행 ep6. 아카렌가 + 하치만자카 + 공회당 산책길 에 이은 글입니다.
공동묘지 속 카페 모리에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 소싯적 아이들끼리 모여 앉아하던 귀신 이야기. 학교 푸세식 화장실에 앉아있으면 귀신이 나타나 빨간 휴지냐 파란 휴지냐 묻는다는 그 무서운 이야기. 어른이 되고 나서 휴지를 염색하려면 휴지 단가도 올라가고 온갖 화학물질이 많아 좋지 않지! 동심파괴(?) 어른이 되었다. 그런데 40 중반에 하코다테 공동묘지 한가운데 있는 인적인 드문 화장실을 쓸 수밖에 없었던 나는 정말 변기에서 귀신 손이 나와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 하고 으스스하게 속삭일 것만 같아 볼 일 보는 짧은 순간에 엄청난 공포감을 느꼈다. 조명도 안 들어오는 화장실, 그날따라 하늘은 회색 빛이고 간간히 비도 내리는 우중충한 날씨여서 더 그러했는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별일 없었고 공동묘지 안에 떡하니 자리한 카페를 잘 찾아갔다.
뒷통수는 싸한데 눈앞은 시원한 전망
그날은 하코다테를 떠나는 마지막 날. 아침을 먹고 기차시간까지 여유가 있어 동네 카페를 가기로 했다. 구글맵으로 이리저리 돌려보니 뷰가 아주 좋은 곳! 그곳을 딱 찍고 출발했다. 먼 거리는 아니지만 트램 몇 정거장과 10여분 걸으면 당도하는 곳이다. 매번 구글맵에 의지해 여행하며 느끼는 점. 구글맵의 맹점은 지도가 평면이라 올라가기 힘든 언덕배기 인지. 으슥한 골목길인지 알 수 없다. 점으로 찍힌 공동묘지는 간과된 채 그곳으로 향했다. 트램에서 내려 카페로 가는 길. 비도 오고 추워 으스스한 날씨.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길 중간중간에 열린 상점은 묘지에 놓을 꽃을 파는 꽃가게들 몇 개. 이왕 나선 길 멈출 수가 없었다. 딱히 차선이 없어 그냥 가는데 이내 내 키보다도 더 큰 묘비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한다. 서양인 묘지여서 그런지 서양인들 키만큼이나 큼직큼직한 비석들이다. 죽은 자들의 마지막 쉼터. 조용하다. 그리고 으스스하다. 당시 고향을 그리며 타국에서 생을 마감했을 애타는 외국인들의 원혼이 깃들어 있는 것만 같다. 이곳에 발을 드려놓았으니 끝까지 가보자. 뒤돌아보지 말고! 사실 뒤통수도 싸할 만큼 무서웠다. 근데 왜 갔을까?! 많은 곳을 여행하진 않았지만 바닷가를 끼고 있는 묘지들을 전망이 정말 빼어나다. 시드니 본다이비치에서 쿠지비치로 가는 길목에 놓인 묘지들처럼 이곳에서 보는 바다 전경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뒤통수는 공포영화 마냥 싸한데 눈앞에 펼쳐진 바다는 흐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내가 보고 싶었던 그 바다 그대로다. 앞뒤 온도차가 큰 공동묘지 길을 거닐어 드디어 오늘의 목적지 ‘모이와’ 카페에 당도했다.
밖은 스산하나 안은 온기 가득
사람들이 어떻게 알고 이렇게 찾아왔을까?! 인적이 드문 곳 치고는 사람들이 꽤 많이 앉아있다. 밖과 달리 카페 안은 사람의 온기로 가득하다. 나와 똑같이 혼자 온 옆테이블을 제외하고는 주인장을 아는 동네 이웃들인 모양이다. 둥그렇게 삼삼오오 테이블에 앉아 주인장과 한참 담소를 나눈다. 그중 누군가 피아노를 친다. 낡은 피아노에 앉아 악보도 없이 느낌 가는 대로 몸을 흔들며 피아노 선율을 느낀다. 천천히 시작해 빠른 템포로 쳤다 다시금 소리가 잦아든다. 무엇인지 모를 리듬이지만 공간과 닮아있다. 창문 너머로 잔잔히 일렁이는 파도를 멍하니 바라보다 시선을 돌리면 한데 모여 앉아 왁작지껄 화기애애한 동네사람들의 이야기로 흘러간다. 부드러웠다 경쾌했다 피아노 선율은 카페를 담고 있다. 이곳에서라면 뭐든 천천히 음미하면서 마실 것 같다. 따뜻하게 내려진 블랙커피에 갓 구운 와플과 그 위에 올라간 바닐라 아이스크림. 부슬부슬 비 내리는 공동묘지를 지나오는 길이 제법 스산하고 무서웠는데 온기 가득한 카페에 앉아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따뜻한 커피를 대접받으니 움츠렸던 내 마음이 활짝 펴진다. 눈앞에 뻥 뚫린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바 자리에 앉아 커피 한 모금 먹고 고개를 드니 무상무념 이로다. 커피 한잔을 앞에 두고 명상하기 좋은 곳이다.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데 주인장이 다가와 말을 건넨다. 한국사람 반갑다 하시며 혼자 여행 온 거냐고 본인도 코로나 때 한동안 문을 닫고 언니가 있는 뉴질랜드에 가있었다고 본인 이야기를 해주신다. 간단히 오가는 말과 미소에서 그녀의 밝은 성격이 묻어난다. 나와 적당히 거리를 두며 관심을 표현하고 즐거운 여행되라며 건네는 말들이 따뜻하다. 주인을 닮은 손님인가 머리가 희끗한 아저씨도 먼저 다가와 인사하신다. 호주 아저씨가 일본 아줌마를 만나 이곳 하코다테에 자리를 잡았단다. 아주머니가 카페 주인과 피아노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내게 와선 자기는 피아노가 싫다고 하시며 연신 아줌마 눈치를 보는 것이 뭔가 대단한 비밀을 말하는 냥 속삭여 재밌다. 잠시 잠깐의 대화였지만 이곳 카페를 찾는 동네 사람들의 분위기를 알 것 같다. 내가 자리를 뜨려니 한쪽에서 이야기 나누던 아줌마 아저씨가 잘 가라고 손짓한다.
모리에, 친근하네.
커피도, 주인장도, 그곳에 함께 있던 사람들도 모두 따뜻했던 모리에를 뒤로 하고 발길 닿는대로 빗길따라 걷는다. 걷다보면 주택가를 지나 모토마치 공원, 옛 하코다테 공회당과 영국영사관, 하치만자카, 하리스토스 정교회, 모토마치 성당, 하코다테 로프웨이까지 조용히 거니는 산책길이 된다. 로프웨이를 끼고 직선으로 내려가면 바로 하코다테역이다. 바다전망에 따뜻한 커피 한 잔과 천천히 걷길 좋아한다면 한번쯤 가볼 만 하다.
다녀와보니 날 좋은 날 반나절 코스가 될 것 같다.
* 트램 타고 가볍게 공동묘지 산책(?)
* 탁 트인 바다를 내려다 보며 커피 한 잔
* 동네를 거닐다 하코다테의 유명 관광지를 한번에 볼 수 있는 코스
: (구)공회당 & 영국 영사관 - 하치만자카 - 정교회 - 모토마치 성당 - 로프웨이 야경
친근한 주인장을 닮아 그 곳 모든 것이 따뜻했던 카페 모리에
https://maps.app.goo.gl/pH1xnzUBTmBXhNTA9
조명도 안 켜지던 공동묘지 공중화장실, 비석이 엄청 컸다.
https://maps.app.goo.gl/cQ9Z3D5tFbJxVfMQ7
봄에 가면 왕벚꽃이 반기는 곳!
https://maps.app.goo.gl/MRTf5nBtimUM6bct8
낮과 밤이 모두 아름다운 공회당, 2층 테라스에서 보는 도시 전경도 으뜸!
https://maps.app.goo.gl/3ij7cqcgJYWJBbwh9
스쳐 지나가 듯 '(구)영국 영사관'
https://maps.app.goo.gl/jnewMJphY6YFrmsz6
모두들 기념사진 찍는 곳, 사진 찍을 때 차조심!
https://maps.app.goo.gl/ezEFV5ConJkfu8BF8
빨간 정문이 예뻐 멈춰 서게 되는 '정교회'
https://maps.app.goo.gl/V2mb3eRTWZouZvTD9
정교회 앞에 있는 '성 요한 교회'
https://maps.app.goo.gl/DLNeLHfKaK1ujXiu6
건물 곡선과 특이한 창으로 이국적인 모습을 선사하는 '모토마치 성당'
https://maps.app.goo.gl/ijdgxCfRxSbETD4T
해가 지기전 올라가 멋진 노을과 야경을 함께 볼 수 있는 곳 '로프웨이'
https://maps.app.goo.gl/rEAk3UZpsy7UvcxV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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