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이 Jan 03. 2025

[센추리 마리나 호텔] 향은 밤을 품고 술은 낮을 열고

하코다테 여행 ep2. 편한 밤잠 아로마 향과 아침부터 와인

   하코다테 여행 ep1. 위치, 조식, 온천 뭐 하나 빠지지 않는 곳! 에 이은 글입니.



하코다테 밤을 품은 아로마 로즈 향


나이 들수록 향에 예민해진다. 명절에 들어온 선물세트 속 비누 보단 내 취향에 맞는 향을 찾아 특정 비누를 구매해서 쓰고 샤워젤 역시 내게 특별했던 기억, 즐거웠던 추억을 회상하게 하는 향을 찾아 즐긴다. 매일 가깝게 두고 쓰는 물건들에서 누릴 수 있는 작은 행복들을 하나씩 수집해 가는데 ‘향’이 그중 하나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향기 하나가 더 추가되었다. 이곳에는 아주 특별한 공간이 있다. 숙면을 돕는 아로마향과 필로우바(pillowbar)다. 한쪽 벽면에 절반은 다양한 형태의 베개들이, 다른 한쪽은 아로마 오일향이 오밀조밀 모여 있다. 객실 내 표준화된 베개에 내 몸을 맞추는 게 아니라 이곳에서 자신에게 맞은 베개를 고를 수 있다. 물론 한정수량으로 선택의 폭을 넓히려면 필로우바 오픈 시간에 가는 것이 좋다. 개인 맞춤형까진 아니지만 베개 높이가 안 맞거나 좀 더 단단한 베개를 원한다면 시도해 볼만하다. 다양한 베개를 선택할 수 있는 곳은 이곳 말고도 다른 곳에서 경험한 바 있어 생경한 서비스는 아니다. 


딸아이가 예쁘게 찍어준 센추리 마리나 하코다테에서 업어 온 아로마 향들 / 잠잘 땐 로즈향, 드레스룸엔 오렌지향


필로우바 옆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아로마 오일들. 투명 유리 커버로 씌워져 있는데 그 커버를 들어 올려 향을 맡으면 그곳에 갇혀있던 향들이 슈퍼 펀치를 날리며 일제히 내게로 온다. 두 눈을 부릅뜨고 있을 수 없다. 나도 모르게 눈을 감게 되고 앞다투어 내에게로 오는 향을 음미할 수밖에 없다. 시그니쳐 향부터 시작해 숙면에 도움을 주는 향만 여러 가지고 청아한 숲향, 로즈향 등 다양한 향들이 쭉 제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와인을 시음하듯 나와 함께 할 오일을 하나씩 시향 하며 마음속으로 정해 본다. 서너 개의 옵션을 두고 고르는 게 아니라 십여 개는 족히 되는 선택지를 두고 골라야 해 꽤 오랫동안 그곳에 머무르게 된다. 나는 단잠을 선사할 로즈향 아로마 오일을 골랐다. 진열된 향 옆에는 향을 가리키는 번호표가 있는데 그 걸 가지고 카운터에 가면 직원이 500원짜리 동전만 한 틴케이스 안 스톤 디퓨져에 선택한 아로마 오일을 몇 방울 톡톡 떨구어 준다. 그리고 주술을 외우듯 떨궈진 오일이 잘 퍼지도록 틴케이스를 빙그르르 몇 바퀴 돌려준다. 별 거 아닌 동작에도 의미 부여를 하게 된다. 오늘 밤 내 단잠을 위한 주문. 향을 머금은 틴케이스를 달그락 거리며 객실로 가지고 온다. 한참 후 잠자기 직전에 내가 선택한 로즈향 오일이 들어있는 틴케이스 뚜껑을 열면 방안이 온통 향으로 가득 채워진다. 작은 틴케이스 안에서 내뿜는 향기의 위력은 대단하다. 내 모든 의식들을 잠식시켜 버린다. 내가 고른 그 향기가 나를 편안하게 잠재워 준다. 이곳에 있는 내내 같은 향기를 매일 밤 맞이 했다. 그리고 그 향을 집으로 품고 왔다. 비싸지도 싸지 않는 가격. 내가 부담스럽지 않게 즐길 수 있는 향이다. 이 향을 맡는 내내 하코다테에서 편안했다. 집으로 돌아온 지금도 향을 머금고 추억을 머금고 단잠을 편히 잔다. 




오늘 나의 하루를 위해 건배! 이른 아침 치얼스~!


로즈 향 덕분인지 포근한 호텔 침구 때문인지 호텔에서는 대체적으로 숙면이다. 늦은 아침이지만 걱정이 없다. 출근준비를 할 필요도 없고 챙겨야 할 가족도 없다. 아침 준비를 위해 분주할 필요도 없다. 단지 몸을 일으켜 조식당으로 내려가면 그뿐이다. 이제 나는 정성스레 준비된 아침밥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 친절히 자리를 안내해 주는 직원. 여러 테이블 가운데 혼자 앉아 있을 수 있는 바 테이블로 안내한다. 고개를 들면 햇살이 스미는 통창을 볼 수 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고가도로에서는 차들이 쉴 새 없이 내달린다. 바쁜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 사이에서 시간이 멈춰버린 나의 일상. 무언가 해야 할 의무감도 책임감도 없다. 여유롭게 흘러가는 내 시간을 위해 축배를 들뿐. 이곳에선 조식으로 스파클링 와인이 제공된다. 호리호리하고 매끈하게 빠진 목이 긴 글라스에 방물이 맺힌 와인을 절반 정도 따라 즐긴다. 회식 때 팀워크를 위해 하는 건배사가 아닌 오늘 나의 하루를 축복하는 건배사를 외치며 식전 주를 들이켠다. 


흰 밥 위에 해산물을 올리는 카이센동 말고 제각각 와인과 즐기기



지금 이 순간부터는 맛있는 음식을 그저 진심을 다해 맛있게 음미하면 된다. 음식을 씹으며 오늘 반드시 해야 할 체크리스트를 곱씹을 필요가 없다. 단지 이른 아침부터 나를 위해 준비된 맛깔스러운 음식들을 어떻게 하면 더 맛있게 즐길 것 인지만 생각하면 된다. 나만의 카이센동을 위해 준비된 해산물들 중 어떤 해산물을 넣고 뺄 건지, 그 양을 어떻게 조절할 것인지. 어떤 모양으로 올릴 것인지에 대한 의사결정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홋카이도 특별식인 수프카레와 하코다테의 명물 시오라멘(소금라멘)도 한편에 제공되는데 이것을 먹을지 안 먹을지도 결정해야 한다. 카이센동 따로, 수프카레 따로, 시오라멘까지 먹으면 배가 불러 자칫 홋카이도산 신선한 우유로 만든 디저트를 놓칠 수 있다. 적절한 시간 안배와 식사량 조절이 필요하다. 


즉석에서 직접 만들어 먹을 수 있었던 이곳 명물 시오라멘



다행인 건지 이곳에 오면 참 신기하게도 밥, 반찬, 국이 메인이 되어버린다. 다른 곳에서 돈 주고 먹을 법한 메인 요리들이 즐비한데도 내 접시에 담기는 건 소담스럽기 짝이 없는 일본식 밑반찬과 밥이다. 특히나 이곳 밥은 명물이다. 하나의 상품처럼 정성스럽게 항아리 단지에 뚜껑까지 덮어 예쁜 보온 보자기에 싸여 있다. 물론 여느 뷔페에서처럼 여러 사람들이 여닫는 커다란 밥솥도 있지만 나는 조각보로 덮여 있는 작은 항아리 속 씹는 맛이 일품인 보리밥을 선택한다. 그리고 오늘의 수프, 국을 선택하는데 가끔 이색적이게 북해도 사슴고기가 제공되기도 한다. 국 또한 큰 솥에서 뜨는 것이 아니라, 개인 화로에 초로 불을 지펴 데워 먹는 형태다. 여러 사람 손이 거쳐 가는 뷔페 음식임에도 개인을 위해, 나만을 위해 준비된 음식들을 선택적으로 즐길 수 있어 좋다. 한 그릇의 밥과 1인분의 작은 무쇠 솥에서 끓여지는 국을 조금씩 덜어 오밀조밀 먹는다. 그리고 신선한 야채들과 뿌리채소, 해조류로 만들어진 밑반찬들의 향을 느끼며 씹는다. 이 맛이지, 내가 이곳에 오는 이 맛. 화려하지도 변화무쌍함도 아닌 혀끝에 잔잔하게 퍼지는 자연 본연의 맛. 나이 들어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바삐 움직이는 도심보단 호젓한 시골을 좋아하게 되고, 걸쭉하고 강렬한 맛보단 깔끔하고 슴슴한 맛을 즐기게 된다. 밖으로 향해있던 관심들이 이젠 안으로, 나에게 집중되고 있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어떤 걸 할 때 내 마음이 편안한가, 무언가를 대할 때 내 생각과 느낌은 어떤가 좀 더 세밀하게 들어다 보기 시작했다. 외부 자극이 강렬해 내가 묻히기보단 나를 중심에 두고 내가 무엇을 진정 원하는지 곱씹게 된다. 회사에선 상황과 인간에 대해 곱씹었다면 이젠 그 중심이 '나'다. 나는 '나'를 위해 내 시간을 보낸다. 비단 매일 먹는 밥조차도 말이다. 지금 이 순간 감사하다. 밥 먹다 말고 '감사합니다'를 외친다. 


1인용 무쇠솥 나베와 씹을수록 맛있는 보리밥, 신선한 샐러드와 우엉, 버섯, 가지, 톳 등 소박한 가정식 반찬이 일품!
매일 메뉴가 바뀌는 1인용 나베(左)와 1인분의 보온밥(右)



꼭꼭 씹어 밥을 맛있게 먹고 이제 디저트 차례다. 밥이 맛있다고 두 그릇 먹으면 안 된다. 이곳의 디저트를 놓쳐 버리면 큰 낭패니 말이다. 스파클링 와인 옆에 놓인 녹진한 오누마 야마카와 목장 우유와 요거트, 견과류, 말린 과일들을 한데 모아 나만의 수제 요거트를 만들어 먹는다. 1막 메인 요리, 밥과 국에 이서 2막 디저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라이트 한 우유푸딩부터 시작해 초콜릿, 말차, 시폰, 롤 등 다양한 케이크와 마들렌, 마카롱, 수제 젤리 등등. 홋카이도산 신선한 우유로 만들어진 디저트를 하나씩 음미하기 시작한다. 크리미 한 디저트와 함께 하모니를 연주할 주인공, 따뜻한 아메리카노가 등장하는데 이때 빠져선 안 되는 것이 컵받침! 나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나를 대접하는 마음으로 받쳐줘야 한다. 예쁜 커피잔은 아니지만 단정하게 놓인 흰 잔에 절반 정도의 블랙커피를 따른다. 커피는 무엇보다 식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디저트를 모두 세팅한 후에 마지막에 온전히 커피만 가져온다. 이렇게 디저트만 2~3 접시, 커피를 2~3잔 마시다 보면 조식 마무리 시간이다. 아쉽지만 내일을 기약하며 남은 숙박일 동안 같은 루틴으로 즐기리라. 



미숙한 촬영 솜씨로 찍은 다양한 디저트들. 케익, 푸딩, 마들렌, 초콜릿, 마카롱 등 다양하고 뭐하나 빠짐없이 모두 맛있다.
밥 안 먹고 디저트만 즐겨도 반나절은 갈 것 같다.





센추리 마리나 호텔, 이런 점이 좋았습니다.


밥국반찬뿐 아니라 특별식과 디저트 모두 맛있는 조식

슴슴한 일본 가정식 반찬들과 카이센동, 시오라멘, 수프카레, 사슴고기 나베 등 모두 훌륭하다.

힘찬 하루를 응원하는 스파클링 와인은 덤!


단잠을 위한 아로마 향과 내게 맞는 베개 선택

다양한 베개뿐 아니라 아로마 향도 있어 은은하게 스며드는 평온한 밤을 선사한다.




조식과 아로마향이 좋았던 센추리 마리나 하코다테

https://maps.app.goo.gl/gVXzz9timFXBhDGm7


상세한 아로마 바(bar) 소개 - 블로거님들은 참 훌륭하다. 사진만 봐도 그곳에 내가 있는 것 같다. 

https://blog.naver.com/phanway/223014542913


상세한 조식 소개 - 난 먹기 바쁜데 어떻게 이렇게 정성스레 사진을 찍으셨는지 감탄!

https://blog.naver.com/phanway/223020209410



#퇴사 #혼자여행 #혼여 #아줌마_여행 #여자_혼자_여행  #엄마_혼자_여행 #홋카이도 #하코다테 #하코다테_숙소 #하코다테_호텔 #센추리_마리나_하코다테 #센추리_마리나_하코다테_조식 #센추리_마리나_하코다테_아로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