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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전토끼 Jul 18. 2024

작가가 된다는 것 그리고 첫 책


어렸을 때부터 나는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다.


혼자서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보며 시를 써보기도 하고, 학교 백일장이나 각종 글쓰기 대회에 나가면 장려상이라도 항상 상은 받아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왠지 모를 글부심(?)이 있어서 그런지 학창 시절에는 작가나 기자가 되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살다 보니 전업으로 작가나 기자는 되지 못했지만, 브런치를 통해서 작가가 될 수 있었고, 거의 일 년 정도의 시간이 걸려서 내 이름으로 된 첫 책을 출간할 수 있었다. 이제 정말 '작가'라는 타이틀을 써도 되는 것인지도 아리송했던 시점이었다.


작가가 되기 전에는 브런치의 열혈독자였고, 쉬는 시간이나 출퇴근과 같은 이동시간에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소소한 재미를 느꼈었다.


그러던 중에 회사를 그만두고 유럽에 가서 생활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우연한 기회는 막연하게도 작가로서의 삶으로 들어가는 관문이 되었다.  처음에는 '유럽 생활을 겪으면서 생긴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브런치에 소소하게 써보면 어떨까?'라는 마음으로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했었다.


 하지만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나름대로 쓴다고 쓴 글이었는데.. 역시 작가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라는 아쉬움과 함께 '그냥 하지 말까?'라는 심술이 마음 한 구석에서 스멀스멀 자라나고 있었다.


그래도 어딘가 모르게 미련이 남아서 '그냥 한 번만 더 해보고, 아니면 말자!!'라는 마음으로 다시 신청을 했다.  심기일전한 재도전은 이전보다 좀 더 신경 써서 글을 다듬기도 했고, 사진을 삽입해서 시각적인 효과를 강조했다. 다행히 마지막 시도로 생각하고 했던 신청은 승인이 되었고, 처음 브런치 작가로서 유럽에 가서 생활하고 여행하는 에피소드를 공유할 수 있었다.





유럽에서의 갭이어 생활을 소재로 한 글들을 브런치에 올리면서, 다양한 독자들과 소통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작가로서 생경하지만, 형용할 수 없는 희열을 느꼈다. 댓글을 달아주시는 분들, 좋아요를 눌러 주시는 분들을 보면서, 작가로서 꾸준히 글을 써야 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당시에는 나름 해외생활을 하면서 몸도 마음도 지쳐있었던 때였다. 가끔 소용돌이 같은 외로움에 휩싸일 때, 브런치 독자분들과 글로 소통하는 것이 내게는 소박한 위로이자 인정이었다.  


유럽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에 생애 첫 브런치 글들을 엮어서 '책을 내볼까, 말까?'라고 수없이 갈등했었다. '책은 아무나 내는 것이 아닌데...'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 내게, 책을 낸다는 것 자체가 상당한 부담감으로 작용했다.


'그래도 한 번쯤은 내 인생에서 작가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그 기회를 잡는 것이 맞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러고는 '일단 해보자!'라는 마음을 먹게 되었고, 원고 수정, 편집을 시작으로 책 표지까지, 빠르진 않지만 나만의 속도로 하나하나 완성해가고 있었다.


그렇게 꾸준히 하다 보니 어느새 내 책이 출간되었고, 각 서점에 내 책이 입고되었다.

아직도 내 책을 처음 주문해서 집에 배송된 날을 잊지 못한다. 이 책을 받았을 때, 그동안의 내 정성과 노력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고, 인생에서 처음으로 작가가 되었다는 뿌듯함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처음으로 책을 받은 기념으로 찍은 사진이다. 작가가 되었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았다.




가족, 친구, 지인들에게 처음으로 책 출간 사실을 알렸을 때, 굉장히 머쓱해질 때가 많았었다.

당시 사람들의 반응은 "너 이제 작가야 그럼?",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 , "대단하다!"였다.

이런 반응들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민망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고마웠다. 누가 보면 마치 베스트셀러 작가가 책이라도 낸 것처럼 호응을 해주니 말이다.



생애 처음 내 이름 석자가 적힌 책을 내는 과정을 겪으면서,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 말아야 하는 것인가?"의 명제에 대한 의문이 생겼었다.  이 질문에 대한 나만의 답변은 "너무 높아서 그 끝이 보이지 않는 나무라고 해도 주위를 계속 기웃거려야 뭐라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분명 처음에는 어떻게 올라가야 할지 몰라서, 까마득하면서도 당황스러울 것이다. 마치 출구 없는 미로에 갇힌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 근처를 연신 기웃거리다 보면 어떻게 올라야 하는지에 대한 자신만의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생애 출판을 통해 얻은 하인드사이트(hindsight, 경험 후의 깨달음을 지칭)는 새로 시작한 작은 일이라도  끈기 있게 주위를 열심히 기웃거리면서 두드리다 보면, 자신만의 방식으로 스스로가 정의하는 성공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갈아 넣었던 내 인생의 책은 보기 좋게 실패했다.

가족, 친구, 지인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사주지 않았고, 첫 책이라서 다른 사람들에게 홍보하기도 민망했다. 스스로 책의 품질을 담보하기도 어려웠으며, 주문자 요청 출판(Publish on Demand) 형식이라서 단가도 높은 편이었다.



비록 나의 첫 책은 작가로서의 흑역사를 안겨준 책이지만, 한편으로는 작가로서의 시작을 할 수 있게 해 준 책이다. 이따금, 책을 뒤적거리면서 이런 필력(?)으로 책을 내려고 했었던, 시절 나의 패기에 박수를 보낸다. 그래도 책이 없었더라면, 작가라는 직업인생의 평행세계에 있는 수많은 직업들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그렇기에 디엔에이(DNA)처럼 버릴 수도, 지울 수도 없는 것이 작가의 첫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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