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내 새끼도 힘든데, 어떻게 남의 새끼를 키울래?
입양도 결국엔 육아다. 네 살짜리 아이를 키우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육체적으로 너무 고되다. 우리 애는 분명 딸인데, 남자아이들보다 더 활달하다. 건강해서 좋긴 한데, 그건 남의 딸일 때 하는 덕담이다. 막상 따라다니다 보면 진짜 지친다. 다른 딸 엄마들은 한 군데 앉아서 수다를 떠는데 나만 계속 일어나 딸을 따라다닌다. 나도 앉아서 아줌마들이랑 놀고 싶은데, 다음 이야기가 너무 궁금한데, 위험하게 뛰어다니니 잡으러 다니기 바쁘다. 너도 다른 딸내미들처럼 앉아서 소꿉놀이나 역할놀이를 하면 안 되겠니? 하하하.
오늘도 패브릭 소파에 오줌을 두 번이나 쌌다. 아이가 씩 웃으며 다가온다. 저렇게 웃을 땐 팬티에 똥 싼 거다. 잘못한 건 알아가지고. 배변 훈련하면서 애교가 늘었다. 애를 키울 걸 생각하신다면 패브릭보다는 가죽 소파를 권한다. 아니, 소파 자체가 좀 사치다. 고양이 스크래치 때문에 구입한 아쿠아 뭐시기 소파는 커버도 분리가 안 된다. 방수라더니 오래 쓰니 이제 방수도 안 된다. 에잇. 신문지로 흡수도 시켜보고 패브리즈도 뿌려봤지만, 아무래도 소파가 이미 오줌 밭이 된 것 같다. 이건 곧 버려야겠다.
밤잠이 없는 딸은 밤 11시에도 쌩쌩하다. 새벽형 인간인 남편과 나는 9시만 되어도 잠이 오는데 말이다. 불을 다 끄고 아무 대꾸도 해주지 않는데도 계속 침대 위를 뛰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혼자 신이 났다. 아무래도 대꾸가 없으면, 최후의 수단으로 '오줌 마려워.'를 시전 한다. 그럼 우리는 좀비처럼 일어날 수밖에 없다. 매트리스는 지켜야 하니까. 똑똑한 것 같으니라고.
아이는 이쁘지만 딱 그만큼 귀찮을 때가 많다. 오죽하면 잘 때가 제일 이쁘다고 하지 않는가. 같이 있으면 괴로울 때가 많다. 식당에선 제정신으로 밥 먹은 게 언젠지 기억도 안 난다. 백화점에 가도 여유롭게 내 옷을 쇼핑하는 건 포기한다. 남편이 백화점 복도에서 애를 쫓아다니는 꼴을 보면 '그냥 가자' 소리가 절로 나온다. 거기서 여유롭게 쇼핑하기엔 우리 남편 체력도 별로다. 말 그대로 내 맘대로 되는 게 잘 없다. 다 딸 맘대로다. 하하하.
물론, 이 모든 것을 상쇄할 만큼 딸은 예쁘다. 말 그대로 예뻐 죽겠다. 아침에 일어나면, 또 예쁘다.
"오늘 일어나니까 더 귀여워졌네."하고 안으면, 잠결에도 "당연하지. 나 귀여워." 한다. 놀리고 싶은 날엔 "오또카지? 오늘 우리 딸 몬생겼네." 하면 "그럴 리가 없어. 나 귀여워."라고 한다. 하하하. 네 살인데 이렇게 말을 잘한다. 이건 딸 자랑이다.
가끔 친구들과 육아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누가누가 더 힘든가' 대회라도 하는 것 같다. 한참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아휴, 내 새끼니까 키우지, 남의 새끼면 못 키우겠다."라고 말한다. 말한 나도 놀라고, 듣는 사람도 놀란다. 이미 여러 번 그랬다. 하하하. 친정 엄마가 예전에 자주 썼던 표현이라 그런가? 왠지 이 말이 입에 짝짝 붙는다. 하하하. 내 입에서 이런 말이 술술 나오다니. 이런 걸 보면 언니들이 '내 새끼도 힘든데, 어떻게 남의 새끼를 키울래?"하고 나를 걱정했던 것도 대충은 이해가 된다. 이런 말들은 관용구처럼 우리 사회에 퍼져있어 너무 당연한 말로 들린다. 그 말에 대한 내 답은, '남의 새끼 같으면 이렇게 애지중지 키우겠어? 나도 내 새끼라고 키워. 내가 낳지 않았다는 걸 아주 자주 까먹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