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 소파에 앨범들이 아무렇게나 펼쳐져 있다. 또 앨범을 꺼내 사진들을 본 모양이다. 우리 딸은 자기애가 강하다. 자기 사진을 보거나, 자신이 나온 동영상을 보는 걸 가장 즐거워한다. 엉망이 된 거실을 보다가 앨범 하나를 집어 든다.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앨범을 함께 구경했다.
"이건 OO이가 엄마 만나기 전 사진이네. 아고 아기가 이쁘지? 안녕, 아기야."
"OO이가 엄마랑 처음 만났을 때 사진이네? 아구 복지사님한테 안겼네? 이쁜 OO이. 이건 복지사님이야."
"이건 우리 집 오던 날이네. 복지사님이랑 위탁 엄마도 있지? 엄마랑 만나기 전엔 위탁 엄마가 OO이를 키워주셨지?"
아무 말 없이 듣고 있던 아이가 몇 장을 더 보다가 안겨있는 게 답답하다는 듯 일어선다. 거실에서 다시 뽀로로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 이젠 우리 가족의 일상이다. 아이와 앨범을 볼 때면 자주 이렇게 입양 이야기를 꺼낸다. 물론, 아직 어리니 들어도 뭔지 모른다. 나도 일어나 앨범을 모아 다시 꽂아두고 옆에 앉아 빨래를 갠다. 아이가 씻고 나온 아빠를 따라 쪼르르 안방으로 들어간다.
"자기야. OO이한테 뭐라고 했어?"
"아니, 왜?"
"아니, 나한테 오더니, 'OO이를 다른 사람이 키웠어. 다른 사람이 키우면 안돼에.' 하더니 가던데?"
"아."
그날 이후로 딸은 수시로 우리에게 말했다. '다른 사람이 OO이를 키웠어, 엄마가 날 키워야 돼, 다른 사람은 싫어, OO이는 엄마가 좋아, 엄마랑 아빠랑 OO이랑 살아야 돼.' 같은 말들을 아무 상관도 없는 순간에 툭툭 내뱉는다. 물놀이 갔다 카시트에서 내릴 때, 양치를 하러 가면서,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아마 수시로 생각이 나는 모양이다. 평소 아빠바보면서 나에게 집착하기 시작했다. 세상 이별에 쿨하던 아이가 어린이집 문 앞에서 내 치마를 잡고 늘어지기도 한다. 자기는 무조건 아빠랑 잔다더니, 내 옆에 와 꼭 붙어 '엄마가 더 좋아, OO이는 엄마 딸이야.'하기도 한다.
이때 우리가 해줘야 할 말은 이렇다.
'OO이는 엄마만 키우는 거야. OO이는 엄마랑 살 거야. OO이가 미운 짓을 해도 엄마는 OO이를 키울 거야. 다른 사람은 안 돼. 엄마가 OO이를 키울 거야.'
입양을 처음 인식하고 나면 아이는 입양 부모가 친생 부모가 아니라는 것을 슬퍼하지 않는다. 그건 그다음 단계다. 아직은 이르다. 아이에게 가장 먼저 생기는 감정은 '불안'이다. 부모가 바뀔 수도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입양부모가 자신을 키우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 불안. 내 딸도 지금 그것을 먼저 겪고 있는 것이다.
가끔 입양 부모가 "OO이를 낳아준 엄마가 아기를 키울 수 없는 상황이라서, 엄마에게 OO이를 키워달라고 한 거야."라고 입양을 말하면서, "누구라도 그랬을 거야."나 "엄마도 이해해."와 같은 표현을 덧붙여하는 경우가 있다. 입양 부모는 아이가 친생부모를 미워하지 않길 바라서 한 말이다. 내 아이가 마음에 분노나 증오를 키우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말을 들은 입양아는 입양부모도 피치 못할 사정이 있으면 자신을 다시 입양 보낼 수 있다고 오해하고 불안해하기도 한다.
이 시기 아이에게는 '우리가 가족이라는 것, 절대 헤어지거나 포기하는 일이 없다는 것'을 인식시켜주는 일이 중요하다. 아이는 가족의 안정감 있는 울타리를 느끼도록 도와야 한다. 그 속에서 아이는 입양을 제대로 알아가고, 친생부모에 대한 의문과 그리움을 하나씩 풀어내는 것이다.
딸이 예상보다 빨리 입양을 알아가는 것 같아 마음이 아린다. 아직은 너무 어린데. 그래도 이제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기로 하고 정신을 다잡는다. 어린이집 선생님께도 아이가 이제 입양을 조금씩 인식하기 시작한 듯하다고 미리 알렸다. 어린이집에서도 곧 비슷한 말을 할 테니까. 선생님께서 이전에 입양된 형제를 보육하신 적이 있으시단 말에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어머님, OO이는 잘할 거예요. 야무지고, 단단한 아이예요. 저희도 잘 지켜볼게요. 걱정 마세요."
선생님 말씀이 옳다. 내 딸은 잘 해낼 거다. 엄마, 아빠가 네 등 뒤에 떡하니 지켜주고 서 있을 테니 불안해하지 마. 내 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