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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롤 Aug 31. 2022

37. 유예한 출산의 아픔, 애도기.

  공개 입양의 경우, 아이에게 입양을 처음 공개하는 건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이 대부분이다. 빠른 경우, 갓난아기를 두고도 입양을 수시로 말하는 부모도 있다. 아직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아이에게 입양을 공개한다니 거 너무 가혹한 게 아닌가 싶은가? 나도 그랬다.

  갓난아기를 두고 입양을 이야기하는 건 아이에게 입양 교육을 한다기보다는 입양 부모가 자신을 단련하는 과정에 가깝다. '넌 엄마가 낳진 않았지만, 엄마가 가장 사랑하는 아이야. 난 네 엄마야. 우린 가족이야.'와 같은 말을 한다. 처음엔 아무 말도 이해하지 못할 아이의 눈을 보면서 말하는데도 눈물이 줄줄 흐른다. 마음이 약한 부모일수록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담을 키우는 것이 좋다. 아이에게 부모가 처음으로 입양을 이야기할 때는 부모가 편안한 표정인 편이 아이의 불안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는 자신의 입양 사실을 처음 들었고, 사실 아직 입양이 무엇인지도 정확히 잘 모르겠는데 부모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서럽게 울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아이가 가질 공포와 불안이 상상되지 않는가?

  "너무 이른 거 아니야? 애가 그걸 이해해?"

  "애가 힘들어하지 않을까? 좀 크면 말하던가 하지. 좀 짠하네."

  사람들의 주된 반응이다. 물론 입양아를 위한 말인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적절한 연령이라는 게 과연 있을까? 스무 살? 서른 살? 마흔? 자신의 출생을 이해할 수 있는 성숙한 연령이라는 게 과연 존재하는가. 아이들에게 입양은 연령과 이해 정도에 따라 조금씩 보태어가며 꾸준히 진행되는 게 좋다. 처음부터 비밀이 아닌 진실로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처음엔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간단히 말한다.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 질문이 더해지면, 아이의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게 답변한다. 입양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생길 때마다 내용을 보태어간다.   

  '애도기'라고 불리는 이 시기는 대체로 7세 전후다. 친부모를 궁금해하고, 보고 싶어 하고, 함께 살 수 없음을 슬퍼하고, 자신이 입양되었음을 이해하는 시기이다. 나는 이 시기에 양부모가 아이와 함께 견뎌내는 슬픔이 출산의 고통과 사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배로 아이를 낳는 아픔을 이렇게 뒤로 유예한 셈이다.

  왜 이렇게 빠른 시기에 아이들에게 입양을 알려야 하냐고 묻는다면, 이 시기 아이들이 부모와 대부분의 감정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감추는 것 없이 충분히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고, 궁금해하고, 슬퍼한다. 이 시기를 놓치면 아이는 그 고통을 오롯이 혼자 감당해내려고 한다. 아직은 부모에게 편안하게 입양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어린 시기를 놓치지 않아야 아이가 부모와 함께 애도하며 감정을 충분히 다루어낸다. 이 시기에 입양부모와 함께 입양을 충분히 애도한 아이는 이후에도 입양에 대한 고민을 입양 부모와 자연스럽게 나눈다. 충분히 애도가 이뤄지고 난 아이들은 사춘기 때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해 나간다.

  세상에 비밀은 없다. 현 제도에서는 더욱이 불가능하다. 이미 정체성 형성이 완료된 성인이 입양을 뒤늦게 아는 건 천지가 개벽하는 슬픔이라고 들었다. 입양을 알기 전 모든 삶이 부정당하는 느낌이라고도 했다. 당장의 슬픔이 두려워 내 아이에게 그런 슬픔을 주고 싶진 않다. 우리는 큰 병에 걸리지 않길 바라며 갓난아이의 허벅지에 바늘을 찔러 예방 주사를 맞힌다. 우는 아이를 안고 달래는 부모에게 매정하다 말할 사람은 없다. 자식이 아파하는 것이 괴롭지 않은 부모는 없다. 그럼에도 어떤 아픔은 피해 갈 수 없는 법이다.

  내 딸의 애도기가 점점 다가온다. 혼자 운전을 하거나, 밤에 강둑을 걸을 때 아이에게 입양을 이야기하는 것을 연습해본다. 여전히 나도 모르게 입술이 떨리고 울음이 섞여 든다. 아직은 더 연습이 필요한 모양이다. 딸이 내게 입양을 물을 때쯤엔, 담담하게 입양을 이야기하겠다. 애도기의 절정에선 아이의 슬픔에 함께 울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처음부터 딸 앞에서 이런 울음을 보이지는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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