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기획서를 쓰기 전에 먼저 작가를 만났다. 그녀는 미국 동부에 살고 있었다. 그녀도 내 아이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였다. 본업과 집안일과 미취학 아동의 육아에 허덕이는 워킹맘 둘이서 시간을 내서 만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같은 처지에 있는 친한 친구들과 만나 얼굴 보며 잠시 커피 한 잔 하는 것도 일 년에 한두 번 될까 말까. 전화 통화도 사실 쉽지 않은데.
시차가 어마무시한 미국 동부에 살고 있는 작가와 진지한 대화를 할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는 희생이 필요했다.
이메일로 서로 가능한 시간대를 조율했다. 나는 아이가 잠든 늦은 밤, 그녀는 아이가 아직 잠에서 깨어나기 전인 이른 아침에 만나기로 했다. 마침내 구글밋 덕분에 클릭 한 번으로 태평양 너머에 있는 작가와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화면에 나타난 내 얼굴은 들뜬 표정이었다. 연애든, 게임이든, 뭐든지 처음이 재미있다. 그 처음을 마음껏 즐겼다. 이메일에 썼던 이야기에 더 많은 감정과 열정을 실어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일을 하다가 혼란에 빠져버린 나날들, 당신의 책을 발견하게 된 것, 이해관계자들과의 소통의 어려움 등에 관한 이야기가 술술 나왔다. 그녀 또한 만면에 미소를 띠며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한국어 번역 출판 허락을 받고 번역을 어떻게 할지, 책 안에 들어있는 원본 삽화 파일을 어떻게 전달받아서 작업할지 등등 구체적인 실무 관련 이야기도 빠르게 진행했다. 사실 이미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일본어로 출간한 경험이 있어서 그녀는 여유로워 보였다. 마치 나를 기다렸다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참 감사한 시간이었다.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갔을 때, 환영받는 것보다 더 감사하고 행복한 일은 없는 것 같다.
1시간이 어찌나 짧던지.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었다. 갑자기 입양하게 된 귀여운 아기 같은 이 프로젝트를 제대로 키워나갈 시간. 드디어 번역을 시작할 시간이었다. 내가 제일 잘하는 것. 제일 좋아하는 것. 그래서 밥 벌어먹고 있는 수단. 번역.
번역을 시작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잠시 잊고 있었던 진리를 몸소 깨달았다.
번역을 잘하는 사람은 모국어를 잘하는 사람이라는 것.
그동안 나는 인하우스 번역사로 일하면서 거의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하는 프로젝트만 했다. 그래서 내 모국어 실력이 형편 없어졌다는 것을 확인할 기회가 없었다.
몇 안 되는 페이지를 번역하고 다시 읽어보았을 때 나는 좌절했다.
아니, 왜 이렇게 번역이 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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