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빨랫줄에 아무도 읽은 적 없는 페이지들이 널리기도 하고 작은 창이 열렸다 영영 닫히지 않기도 하는 나와 나 사이의 생은 지난 밤의 꿈처럼 언제든 무너질 준비를 하고 있다
안녕- 이라고 말할 때 나의 입매가 불안한 아치를 그리는 것은
너무 크게 웃으면 네가 나한테 와서 와르르 무너져 흔적이 될 것 같기 때문이다
흔적은 흔적에 기대어 산다
전시회를 좋아한다. 전시된 작품들 사이에서 생각지 못했던 감정과 문장들을 건져올릴 때가 있다. 현실의 장면들을 켜켜이 기묘하게 배열하여 환상적인 세계를 더없이 실재적으로 형상화해내는 에릭 요한슨의 사진전에서 이 사진은 메인에 위치한 작품이 아니었다. 액자 크기를 보아도 그렇고 배치된 벽면도 그러했다. 그러나 이 작품을 보는 순간 위의 첫 문장이 떠올랐다. 절벽 사이에서 위태로운 균형을 이루고 있는 집들이 나 같고 우리 같았다.
이제는 그만두었지만 예전에는 각종 관람권이나 입장권을 간단한 메모와 함께 꼭 스크랩해 두었었다. 이따금 그 스크랩북을 꺼내보면 일기와는 또다른 느낌으로 그 때의 흔적들을 만질 수 있다. 그냥 쓰레기통으로 직행할 수도 있었던 무용한 종이조각들이 기억의 입장권이 되어 이 문 저 문 앞으로 나를 데려다 줄 때면 나는 어딘지 애틋한 기분이 된다.
스크랩북 앞쪽에는 영화관람권이 압도적으로 많다. 당시 유행했던 영화의 관람권뿐만이 아니라 인디영화특집, 부천영화제 상영작 같은 문구들이 적혀 있는 낯선 영화관람권들도 간간이 보인다. 뒤쪽으로 갈수록 전시회 입장권이 많아진다. 영화를 보고 떠올리게 되는 인상은 사람들마다 대동소이한 반면 전시를 보고 떠올리게 되는 인상은 아주 제각각이다. 영화는 스토리도 상영시간도 정해져있지만 전시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각자 자신의 속도와 상념에 맞게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를 걸어다니는 게 전시회의 묘미이다. 마음에 드는 작품 앞에 의자가 놓여 있는 것만큼 반가운 일은 없다. 십 분이고 이십 분이고 멈춰 앉아 이 작품을 완성했을 또 다른 누군가의 시간과 상념을 더듬어 보고는 한다. 그건 어쩌면 우리가 생을 살아가는 방식과 아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요즘 굉장히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중이다. 최근 본 전시들만 되짚어 보아도 그러하다. 에릭 요한슨의 전시는 사람이 너무 많아 대기표를 뽑고 들어갈 정도였음에도 대중적이면서도 기이한 아름다움과 쓸쓸함을 주는 작품들이 워낙 흡입력 있어 후회 없었고, 이 풍경들의 의미에 대해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눌 일행이 있어 더 좋았다. 몇 주 전 부암동 서울미술관에서 보았던 전시는 제목처럼 안 봐도 사는 데 지장은 없지만 보고 나면 스쳐 지났던 삶의 점들에 잔잔히 다시 빛을 비춰볼 수 있는 전시였고, 말수는 적지만 세심한 마음을 가진 사람과 함께 할 수 있었다. 초여름에 접어들 무렵 내가 가장 사랑하는 친구와 함께 본 중앙박물관의 오백나한전은 아마 앞으로도 이 친구와 함께 한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 중 하나로 기억에 남아 있을 것이다. 붉은 벽돌 바닥과 둥근 나한들의 얼굴과 먹물 떨어지는 소리의 울림 가운데 열여섯에 만난 우리가 아주 많이 변하고 또 변해 그러나 여전히 같은 것을 바라보며 나란히 앉아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너무나 감사하고 아름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