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뭐하고 지내?”라는 질문만큼 보편적이고 곤혹스러운 질문은 없을 것이다. 좀 더 구체적이지만 유사하게 곤혹스러운 질문으로는 “요즘 퇴근하면 뭐해?”, “주말마다 뭐해?” 등이 있겠다. 이런 질문에 너무 무기력해보이지도, 뻔해보이지도, 잘난체하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진심으로 존경을 표하는 바이다. 나의 대응전략은 주로 되묻기이다. 그냥 뭐 하고 말꼬리를 흐리면서 재빨리 “너는 잘 지내?”하고 묻는 것이다.
며칠 전 오랜만에 연락 온 후배와 통화를 하였다. 후배가 물었다.
“뭐하고 지내요? 요즘도 책 읽고 글 쓰고 해요?”
나는 그렇다고 했다. 물론 어떤 때는 일주일 내내 책을 한 장도 읽지 않을 때도 있고, 글을 한 문장도 쓰지 않을 때도 있다. 퇴근 후에 인터넷쇼핑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주말에는 여기저기 쏘다니며 혀끝을 즐겁게 해줄 맛있는 음식을 찾아 헤맬 때가 태반이다. 친구와 카페에 죽치고 앉아 나를 힘들게, 혹은 내가 힘들게 한 사람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입방아를 찧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는 글을 쓰는 저녁이 가장 저녁답고, 책을 읽는 주말이 가장 주말답다고 느낀다. 후배의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어 나는 감사했다.
마음에 거리낌이 없이 선선히 내가 무언가를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고,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중학생 때 나는 말 그대로 문학소녀였다. 토요일이면 버스를 타고 가장 가까운 구립도서관을 갔다. 학교에서는 쉬는 시간마다 때로는 수업 시간에도 책을 읽었다. 집에 오면 책가방을 내려놓기 무섭게 컴퓨터로 달려가서 워드프로세서를 켰다. 올포유라는 지금은 없어진 사이트에 거의 매일 유치한 소설을 정성껏 써서 올렸다. 헤르만 헤세와 파트리크 쥐스킨트를 좋아했고 이영도와 전민희의 판타지소설을 넋을 빼놓고 읽었다.
한 시절 무언가에 미쳤던 기억은 삶의 중요한 옹이가 된다. 삶은 자주 직선처럼 뻗어나가기보다는 나무의 나이테처럼 원을 그리며 때때로 반경을 넓히기만 할 뿐이어서 그렇게 돌고 도는 시간 속에 좌표의 역할을 해줄 수 있는 하나의 옹이가 있다는 건 참 귀한 일이다. 때로는 그 옹이에 걸려 생채기가 난다 하더라도 말이다. 스무 살이 넘어 성인을 대상으로 한 각종 공모전들에서 아무런 답을 듣지 못하면서 나는 차츰 내 글재주가 그리 대단한 건 아님을 차츰 깨닫게 되었다. 무엇보다 언제부터인가 내 글이 내가 읽어도 재미없고 진부하게 느껴졌다. 그냥 남들보다 성장의 속도가 좀 빨랐을 뿐 최종 도달점은 그리 다르지 않았구나 하는 자각은 생각보다 더 아팠다.
내 평범함을 인정하는 것은 사실 성장의 중요한 과제이다. 그래야 타인의 평범함을 사랑할 수 있고, 나아가 나를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자주 실수하고 후회하고 널브러지고 게을러지는 나를 받아들이고 용서하는데 서툴다. 마음은 자주 오만과 열등의 극단을 오간다. 그래도 이제는 조심스럽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여러모로 평범한 사람이지만 그것은 당연한 일이고 종종 감사하기까지 한 일이지 결코 슬픈 일이 아니라고.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내 글은 특별하기를 바란다. 아주 위대한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조금만 더 특별히 정확하고 싶다. 내가 느낀 감정을 타인의 단어와 문장과 수사로 표현하고 싶지 않다. 내 단어와 문장으로 포착하여 남기고 싶다. 이것은 아마 내가 바라는 마지막 특별함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