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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시절예보 07화

[일곱번째 詩절예보]장마전보

그 시절 마음에 담은 풍경: 가을비에 능소화가 집니다

by 은토끼

1.
올 여름에는 유난히 능소화가 눈에 밟혔다. 이상할 정도로, 매일, 어느 담장에서든.

스무 살 무렵에는 이 꽃을 볼 때마다 갓 상경한 시골 아가씨의 치맛자락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잔뜩 멋을 부리긴 했는데 어딘가 촌스러운, 그래서 다소 애처롭기까지 한 느낌. 물을 잔뜩 섞은 수채화처럼 채도 낮은 같은 빛깔들을 좋아하는 나에게 능소화의 주홍색 꽃잎은 한여름의 햇빛처럼 너무 노골적으로 선명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능소화는 매년 어디에서든 시골 아가씨의 치맛자락 같은 꽃잎을 흐드러지게 펼쳤고 채 시들기도 전에 송이째 뚝뚝 떨어졌다. 여름의 동백이었다.

동백이 봄비에 지듯 능소화는 가을비에 진다. 칠월부터 팔월까지 매연 가득한 길가에서도 오래도록 꽃을 피우는 씩씩한 능소화지만 계절의 자리바꿈을 이겨낼 수는 없다. 게다가 긴 비에 이어 몰아친 돌풍은 아마 능소화의 계절을 끝장냈을 것이다.

변한다. 계절도, 나도. 인간의 생은 심지어 자연의 생보다 더 불규칙하여 다음 계절에 돌아오리라는 약속 같은 것도 없다. 모든 슬픔은 거기에서 기인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것들은 대개 더 슬프다. 변한 자리가 더 확연하기에.


2.
열다섯 살 때 나는 비만 오면 울었다. 꽃이 지듯 마음이 져서 뚝뚝 떨어져 내렸다. 그 때 내게는 빗소리가 먼 데서 온 언어처럼 들렸다. 하늘에서 문장들이 내려와 우산 위로, 지붕 위로 떨어졌다. 내가 그 해석불가의 문장들에서 감지할 수 있었던 것은 막연한 슬픔뿐이었다. 비가 지나가듯 온몸의 촉수가 예민하게 돋은 시절도 지나가리라는 슬픔, 이 순정한 슬픔을 언젠가는 제대로 기억조차 하지 못하리라는 예감.

그 예감대로 나는 차츰 둔감해졌다. 더 이상 비가 와도 울지 않았다. 그러다 스물두살 여름이 끝날 무렵에 한 아이를 만났다. 이마와 콧날의 선이 아주 선명한 아이였다. 손끝으로 그 아이의 옆얼굴을 가만히 쓸어내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울렁였다. 어느 날은 비가 왔다. 그 아이는 살풋 잠들어 있었다. 나는 멍하니 그 잠든 옆모습을 내려다 보며 열린 창 너머로 빗소리를 들었다. 눈물이 났다. 지금 둘 사이에 내려앉은 고요함을 다시는 똑같이 경험하지 못하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직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 때였는데도 나는 그 순간이 너무 아름다워 이미 잃을 것을 슬퍼하고 있었다.

변한다. 슬픔은 어찌 보면 변해버릴 순간을 박제하기 위해 첨가하는 방부제 같다. 변질되거나 휘발하지 않도록 무거운 슬픔을 얹어두는 것이다. 그러나 슬픔마저도 시간이 지나면 변한다. 능소화가 걸려 있던 어제와 누군가의 옆얼굴에 마음이 시리던 오랜 어제와 비를 언어처럼 듣던 더 오랜 어제를 나는 떠나왔다. 그 모든 떠남을 일일이 기념하기에는 이제 지탱해야 할 일상의 무게가 크다. 슬픔의 무게보다 더.

다만 종종 생각해보는 것이다. 그 어제들이 어딘가에는 남아 있지 않을까, 하고. 저희들끼리 찰방찰방 마음의 밑바닥에서 헤엄치며, 다시는 수면 위로 올라오는 일이 없다 할지라도.




그리고
투명의 교신이 시작되었다

방울방울 맺혀
후득후득 떨어지는
비의 부호에는 쉼표가 가득하다

어느 어린 여름날
축축히 잠든 이마와
곰팡이 핀 벽지 너머로 들었던
쉼표, 쉼표들

그 때 너와 내가 썼던 시들은 어디로 갔을까

이제 나의 우편함에는
숫자들만 꽂힐 뿐
그 어떤 말들도 찾아오지 않는데

해독할 수 없는 장마의 편지들만이
빈 지붕을 두드린다

-여보세요, 내 슬픔이 아직 거기에 사나요

꼬리 잃은 쉼표들은 갈 곳 몰라 하고

나는 아직 여기에
젖은 이불 속을 헤엄치고 있다
찰방, 찰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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