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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가에서 말리는 부부싸움

우리 집에는 CCTV가 없는데

by 여름옥수수 Jan 13.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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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할아버지는 나를 정말 예뻐하신다.

장손인 남편을 예뻐해서 이어진 사랑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에게 무장해제가 되어주시는 분.

전화로 국수를 좋아하는지 물어보셔서 좋아한다고 했더니 지난 추석, 소면 한 다발을 안겨주셨다.

올라가는 길에 친정에도 가져다주라며 꽃다발보다 아름다운 소면 두 다발을 안고 온 기억이 났다.

사랑이 담긴 소면이어서일까? 왜 이렇게 잘 삶아진 거야.

혼자 감탄하며 간장비빔국수를 후루룩 마친 저녁이었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저녁을 먹었냐고 물어봤고, 남편은 안 먹었다고 했다.

언제나 남편과 같이 먹고 싶지만 혼밥의 횟수를 늘려가고 있는 아내.

다이어트를 위해 매일 저녁 굶으려고 하지만 아내와 같이 먹는 횟수를 신경 쓰는 남편. 

우린 잘하고 있었다.

계속 잘하려면 알아서 먹게끔 내버려 뒀어야 했는데 이상하게 권유하고 싶었다.

씻고 나오는 동안 국수를 삶아줄까 물었다.


간장비빔국수 양념장은 간단하다. 면도 삶기만 하면 된다. 그냥 그 둘을 비비기만 하면 되는 음식.

어렵지 않으니까 해줄까라는 의도도 있었지만,

'방금 할아버지가 주신 사랑을 먹었는데 너무 맛있더라. 자기도 느껴볼래? 진짜 기분이 너무 좋아'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의도와 다르게 날아간 질문은 우리를 또 다투게 만들었다.

남편은 인상을 팍 쓰며 말했다.


모르겠어. 지금 말해줘야 돼?

남편은 당장 결정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고 했다.

맞다, 다이어트 중이지.

씻는 중에도 씻은 후에도 먹을지 참을지 고민할 것이었다.

요즘은 남편이 본인과의 싸움에서 자주 지길래(저녁을 먹길래) 잠시 깜빡했던 것뿐.


그런데 저녁은 먹었는지, 먹을 건지 물어보는 게 이렇게 눈치 볼 일인가? 

억울하고 분했다. 나도 사람이니까 깜빡하는 거지.

다시 한번 말하지만 간장비빔국수라는 건 세상 간단한 음식이다. 

오직 내가 먹고 싶어서 만든 음식. 당신을 위해 전혀 수고하지 않은 음식.

어머니에게조차도 밥을 차려달라고 해본 적이 없는 남편의 그 배려심이 참 얄궂었다.

눈물이 터져 나왔고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뭐가 그렇게 어려운 거냐고!


기다려줘야지 하다가도 기다림이 잘 안 되는 내가 답답하다.

뭐가 그렇게 어려운지 모르겠는 남편이 원망스럽다가도

내가 생각한 그림에 남편을 끼워 맞추고 있는 내 모습이 한심해 한숨이 나온다.

결국, 어디까지는 허용 가능하고 어디까지는 용납할 수 없는지 나 스스로 정리가 안된 것이 문제였다.


이렇게 싸우게 되는 날이면 남편은 입을 꾹 닫고 본인의 동굴로 도망을 갔다.

처음 한 번은 매달리다시피 대화를 시도했지만 두 번은 안 당한다. 안 당했다.

20대 때 열심히 연애해서 얻은 깨달음은 '사람은 똑같이 당해봐야 상대방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워딩은 잔인하지만 막상 해보면 잔인하지 않다. 유치할 뿐. 나도 동굴로 갔다.

그동안 마음이 좀 정리된 것일까? 용기 내어 톡을 보냈다.


유료 부부상담 가볼까?

반복되는 패턴으로 지쳐가던 날이었다. 남편이 먼저 정신과에 가보자고 했다.

남편 입에서 저런 말이 먼저 나오다니 반갑고 놀라웠다. 역시 우리 남편은 열려 있는 사람이었다.

심리 상담도 괜찮냐고 했더니 괜찮다고 했다.

그때 시에서 하는 무료 부부상담을 신청했는데 대기가 3~4개월이라고 했다. 

그 정도는 기다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생각보다 우리의 밥 문제는 심각했고 일상생활을 위협했다. 남편은 선뜻 예약하자고 했다.


하룻밤 사이에는 참 많은 것이 뒤바뀐다. 그 하룻밤 사이에 남편의 마음은 변했다.

이제 막 일어나서 눈을 비비고 있는 내게 급하게 물어본다.

"부부상담 그거 취소 안돼?"

"왜.."

"돈도 아깝고, 그 100분 동안 상담사가 우리를 어떻게 알아"

"하.."

무엇이든 돈도 시간도 우리가 쓴 에너지도 결과가 좋으면 안 아깝다. 하지만 이 모든 게 아깝게 느껴진다면 참 허무하겠지. 나도 심리상담 다섯 번은 받아봤지만 다 무료로 받았다. 이해한다.

그런데 그렇게 가보고 싶었다. 직감적으로 꼭 가야 할 것만 같았다.

부탁도 해보고 설득도 하다 보니 어느새 남편은 출근을 해야 했다.


쉬는 날이었던 나는 동굴로 더욱 깊게 들어갔다.

상담 전에 최대한의 가성비(?)를 위해 두 가지를 준비했다.

명료하게 우리의 문제를 터놓아서 시간 낭비를 하지 말 것. 그리고 솔직할 것. 

남편에게 서운한 점과 고마운 점을 각각 적어봤다. 서운한 점을 아주 꽉꽉 써 내려갔는데도 불구하고 고마운 점 1번은 '내 남편이 되어준 것'이라고 쓴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때 마침 택배가 도착했다.


엄마가 대게 한 박스를 보냈다


도망가도 괴로워도 밥시간은 항상 때 맞춰 찾아온다.

남편이 퇴근할 시간이었지만 마주 앉아 밥을 먹기가 싫어서 혼자 이른 저녁을 했다.

대게 다리를 뜯으며, 게딱지에 밥과 들기름을 넣고 비비며 우리 집에 CCTV가 있는지 둘러봤다.

없다. 정말로 없다. 있을 리가 없다.

부부싸움 중에는 어머니의 사과 한 박스가 도착했고, 시할아버지의 안부전화가 걸려왔다. 이번엔 엄마의 대게였다. 우리는 그 음식들을 먹으며 자연스레 웃은 적이 있다.

이런 게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부모의 사랑 아닐까?

매번 우리를 따뜻하게 말리신다. 토닥이신다.

혼자 앉아서 대게를 먹는 남편의 뒷모습에서도 서러움과 쓸쓸함이 느껴졌다.

그게 왜 또 안쓰럽냐고.


헤어짐에는 가짜 이별과 진짜 이별이 있다.

가짜 이별은 이별을 가지고 상대에게 협박도 하지만 진짜로 할 생각은 없는 것이고,

진짜 이별은 어느 날 갑자기 혼자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수많은 사건과 감정이 쌓여서 찾아오는 어느 날, 그렇게 진짜 이별을 하게 된다.

남편이 안쓰럽다고 느껴지는 걸 보니 가짜 이별이다.

남편이 입은 고래수면잠옷이 귀여운 걸 보니 가짜 이별이 맞다.

그리고 택배 상자에 담겨오는 건 분명 물건인데 말이 들린다.

'둘이 서로 아껴주고 사랑하니 고맙다. 그거면 됐다'

그래서 긴 침묵을 깨고 남편에게 다시 한번 말했다.

"우리 부부상담 가보자"

"그래, 그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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