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
돈에 대한 첫 기억이 언제였을까?
아마도 아빠 구두를 닦고 받은 500원이었던 것 같다.
500원이라는 동전의 가치보다 아빠 구두를 닦아주는 행위만으로 행복했던 예닐곱 살.
매년 다섯 식구가 에버랜드 자유 이용권을 끊어서 놀러 다니고,
지금 생각하면 비싼 스포츠였던 스키장을 수십 번 다녔다.
알뜰살뜰 모아서 풍족한 삶을 선물해 주셨던 부모님.
중학교 2학년, 그런 부모님이 이혼하시면서 집안 형편이 어려워졌다.
당시 EBS 문제집 1권이 4,200원이었는데
"사도 돼?" 이 한마디를 내뱉기까지 몇 번을 망설였는지 모른다.
처음으로 돈이 없어서 서럽다고 느꼈다.
아빠가 준 양육비는 턱도 없이 모자랐다.
그만큼 아빠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쌓여갔다.
학교에서 한부모가정 학비지원을 받아야만 했고,
감사하기도 했지만 창피한 마음이 훨씬 컸다.
어쩌면 내 인생에서 '돈'이란 무관심의 영역이었다.
많이 벌면 좋지 정도랄까.
하지만 '부모님의 이혼'이라는 인생의 큰 변수가 생겼고,
이후로 '돈 없는 세상'의 무서움, 서러움 등 부정적 감정이 커져버렸다.
나의 부정적 감정은 아빠를 향했다.
영수증 하나, 1원 단위까지 허투루 돈을 대하는 일이 없는 경제관을 가진 아빠.
그런 아빠가 나의 삶을 힘들게 했다는 생각으로 돈에 밝은 아빠를 돈 밝히는 아빠로 정의 내렸다.
'돈 밝히는 사람 = 최악이다'라는 공식을 만들며 돈을 외면했다.
TV에서 아빠처럼 꼼꼼하게 근검절약하는 이야기만 나와도 치를 떨었다.
가난한 어린 시절을 딛고 자수성가한 아빠를 닮을 생각은 1도 안 했던 것이다.
모두가 부자를 외치는 세상이다.
돈 버는 방법이 돈이 되는 세상.
하지만 정작 나는 돈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도대체 왜, 돈에 대한 관심조차 두지 않고 외면했을까.
돈에 대한 첫 기억보다 중요한 건 돈에 대한 감정이다.
부정적 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돈을 벌겠는가?
34살이 되어서야 돈을 제대로 바라보고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 주변에서 유일하게 주식으로 돈을 번 사람이 우리 아빠다.
직장인 투자자로 경력 30년인 아빠에게 돈이란 생존이자 행복, 사랑이었을 텐데..
이제는 내 손으로 가린 나의 좁은 시야를 벗어날 때가 온 것 같다.
과거의 나에게 돈이란?
아픔을 투영한 도구였다.
지금부터 나에게 돈이란?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할 도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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