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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은 PainterEUN Oct 24. 2021

꼭 무언가를 남기지 않아도 되는데

신념을 유연하게

Photo by Gilles Lambert on Unsplash


"지이이이잉"

늦은 새벽 메시지 알림이 울립니다.

졸음으로 지나치려다

문득 힘들었던 지난날의 제가 떠올라

핸드폰을 집어 듭니다.


"자고 있겠지. 많이 늦었을 테니."


체념한 듯 적어 내려간 글에 급히 답장을 보냅니다.


"왜 무슨 일 있어?"


일상을 살아가다 문득 무너지는 순간.

고요한 새벽은 낮 동안 단단하게 붙들어 놓았던 마음이 일순간에 허물어져 내리게 하는 힘이 있나 봅니다.


새벽녘은 이렇게 무너져내리는 자신을 붙잡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연락이 오는 시간입니다.

얼마나 다급하면 한참 늦은 시간인 걸 알면서도 견뎌내지 못하고 급히 연락해올까요.


힘든 시간을 겪어본 사람은 힘든 사람을 알아볼 수 있나 봅니다.

내가 흩어지지 않도록 나를 붙잡아 줄 손길이 절실함을 알기에, 피곤에 눈꺼풀이 내려앉고 바쁜 일정이 기다리고 있지만 졸린 눈을 비비며 전화를 받습니다.


"자고 있었을 텐데 미안해......."


'미안해'로 시작된 전화는 '고마워'라는 말로 종료를 알립니다.


-


 언제부터인지 저는 저를 만나는 이들의 마음에 좋은 인사이트를 주려고 애썼던 것 같습니다.

어린 사람을 만날수록, 힘든 순간을 걷고 있는 사람을 만날수록 더 많이 그랬던 것 같습니다.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이 많은 이들에겐, 자신에 대한 믿음과 가능성을 품게 해주고 싶었던 진심 어린 안내였고,

삶이 힘든 이에겐 아픔이 덜어지길 바라며 건넨 위로와 응원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것이 어떤 의무인 양 때때로 그러지 못할 때는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누가 부여하지도 않은 '좋은 기운을 주어야 해', '좋은 영향을 미쳐야 '라는 책임감에.

저도 모르게 그것이 어른의 덕목이라 생각했던 걸까요.


 적어도 아주 친밀한 관계의 사람에게라도 그냥 '나'이면 되는데, 그들에게도 저는 '나와 함께 있는 시간이 그들에게 충전되는 시간이 되어야 해' 라며 저를 저로 놔두지 못하고, 좋은 기운을 주는 사람이 되려 애썼습니다.


 호통보단 조언이 필요했던 시간. 강압적으로 생각을 묵살하기보다, 열린 마음으로  말에 귀를 기울여주는 이가 간절했던 적이 있어서일까요?

마음이 습자지처럼 얇아진 시간을 건너는 사람들을 볼 때면, 그들의 생각이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좀 더 그 시간을 잘 건널 수 있도록 힘이 되어주는 사람이 되어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무리 좋은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라 할지라도, 저의 에너지가 가능할 때만 그리해도 되는데...

정작 그렇게 에너지를 다 쓰고 저에게 쓸 에너지는 고갈되어가면서 뭐 그리 무언가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려 애썼던 건지....


요즘은 '조금 자유로워져도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이따금 제 마음의 여유가 허기로 뱃가죽이 등까지 들러붙듯 바닥나 버렸을 땐 

그들의 마음을 그대로 흘려보내거나

그저 들어주는 공간으로 곁에 있으려 합니다.


너무 남의 마음을 헤아리려는 데만 '나'를 쓰기보다

'나'를 좀 편하게요.

'내' 마음이 좀 편하게요.


남은 삶의 시간은 나의 마음을 헤아려

내가, 내가 되어가는 시간

내가, 나를 찾아가는 시간이 되도록요.


다시 울리는 전화를 미처 흘려보내지 못할지라도,

마음만큼은

다짐만큼만 이라도

나를 돌보는 내가 되려 합니다.



Painter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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