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어제와 같은 오늘이 시작되었다.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어제는 없던 기대와 희망이 오늘 갑자기 생겼다는 정도? 물론 세상은 예상할 수 없는 일이 99%이며, 나머지 1%도 예상했다고 착각한 일이라는 걸 알고 있다. 이제는 모를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기에는 또 너무 멋이 없지 않은가? 시니컬하게 “흥, 그깟 연말연시가 무슨 소용이야? 어제 뜬 해가 오늘 또 뜨는 건데, 이거 다 사람들이 괜히 의미부여하는 쓸데 없는 일이야!”라고 생각은 할 수 있지만, 입밖으로 내뱉으면 멋없는 사람이다. 멋없는 사람은 현실적이고 논리적으로 보이기 보다는 그저 삶에 찌들어 피폐해 보일 뿐이니까 우리는 멋이 있는 사람으로 남아야 한다. 낭만을 지켜야 한다.
없던 기대와 희망이 생겼다. 아마도 최악의 해를 꼽으라면 많은 사람들이 2020년을 꼽을 지도 모르겠다. <2020 원더키디>처럼 우주를 항해하진 못했으나, 우주복을 닮은 방역복이 일상에 익숙해졌다. 얼굴을 마스크로 가리고 타인을 경계했다. 물론 새해에도 뾰족한 수는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기대와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한다. 이제 해도 지났으니 조금은 나아질 거란 기대와 희망을 품어야 한다. 물론 정마담은 이렇게 말했다. “도박판에서 사람 바보 만드는 게 뭔지 알아요? 바로, 희망.” 불확실에 불안을 느끼는 건 당연하고, 불안을 불안해하면 모든 것은 부정적으로 보이기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앞서 말한 것처럼 멋없는 사람이 된다.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산에 올라 어제와 다를 바 없는 해를 바라보며 의미 없는 기도도 좀 하고, 당연히 이뤄지지 않을 소원도 좀 빌고, 그렇게 비과학적인 기대와 희망을 품는 것이 일상을 (얼마간은) 지탱해주는 비타민이 될 수 있다. 오염되었던 피로를 일정 부분이나마 닦아주는 세정제가 될 수 있다. 기대와 희망. 나 역시 마음 한편에 새해에 대한 부푼 기대와 희망을 자리 내어주었다. 뭐, 버티고 버티다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힘들고 괴롭지만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은 이렇게 또 해피뉴이어를 맞이하지 않았나.
어제는 책방에 앉아 김소연 시인의 산문집 <사랑에는 사랑이 없다> 를 읽었다.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시작해서 사람의 관계는 무엇인가를 걸쳐 새로운 시선을 하나 배웠다. 오늘도 특별한 방문이 없는 이상 하루 종일 서점을 지키며 미뤄둔 독서를 해볼 계획이다. 독서라니. 독서를 사치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 독서는 여유다. 그리고 여유는 여유가 있을 때 부려야 한다. 여유는 금방 사라지기 때문이다. 여유가 끝나면 독서도 끝이 난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일상에 여유 하나쯤 남겨두는 새해가 되길 바란다.
마음에는 기대와 희망을! 일상에는 여유와 여백을! ‘독립서점 서점원에게 무상급식을! 셀라비!’ (*리산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 - 인디 시인에게 무상 급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