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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Sep 28. 2023

지기지기 백선백복

"매일 행복하진 않지만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 <곰돌이 푸> -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 백 번 이길 수 있단다. 그런데 말이야. 가뜩이나 매일매일 전쟁터에 내몰리는 것 같은 일상에서 나를 알 시간도 부족한데 뭘 남부터 알래. 


됐고. 지기지기면 백선백복하자. 나를 알고 또 나를 알면 백번의 선택에 백번 모두 행복할 수 있다. 










난 새로운 시도를 좋아해 세 번 이상 내돈내산한 맛집에 가도 매번 다른 메뉴를 시킨다. 새로운 음식을 맛보는 게 즐겁다.


생각이 많아 머릿속이 복잡해질 때나 삶이 무료하다 느껴질 때면 천 피스 퍼즐을 맞춘다. 먼저 테두리를 맞추고 그다음 큰 그림을 맞추고 마지막으로 아무 무늬 없는 것 같은 어렵고 지루한 모양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퍼즐을 맞춘다. 

퍼즐은 인생을 닮았다. 찬란한 꿈을 꾸고 원대한 목표를 그리며 시작한 나의 인생은 테두리 퍼즐과 같다. 쉽고 즐겁다. 노력한 만큼의 성과가 드러났던 한 때는 퍼즐 속 큰 그림과 비슷하다. 고지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보이지만 그제야 알게 된다. 이제부터 난코스구나. 도무지 다른 점을 찾기 힘든, 비슷비슷해 보이는 수많은 퍼즐 조각들은 지루하고 무료한 나의 일상과 같다. 한 조각을 맞추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 포기할까도 싶다. 하지만 조금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깨닫게 된다. 단 하나도 같은 퍼즐이 없다는 걸. 미묘하게 색이 다르고, 점이 찍힌 위치도 다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천 개의 조각 중 단 한 조각만 잃어버려도 퍼즐은 완성되지 않는다. 

우리 인생도 그렇다. 나의 매일이, 지금 이 순간이 쌓이고 쌓여야만 나라는 인생이 완성될 수 있다. 단 하루도 같지 않고 한 순간도 버릴 수 없다. 천 피스 퍼즐을 맞추며 '지금, 여기'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낀다. 천 피스 퍼즐 완성 후 유액을 발라 액자에 끼워 걸어놓을 때의 행복감이란. 


이제 더 이상 월급 받는 회사에 기웃거리지 않는다. 제주에 와서도 한동안은 일해서 당장 월급을 받을 수 있는 직장을 검색했다. 지금까지 일했던 경력에 미련이 남아서이기도 했고, 돈이 아쉽기도 했지만, 일을 하지 않는 내가 불안해서이기도 했다. 글쓰기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소득이 없으니 당당하게 일을 한다 말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즐겁게 해 왔던 일, 앞으로도 질리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은 글쓰기뿐이다. 마음을 고쳐먹었다. 처음 회사에 들어가 업무가 익숙해지기까지 최소 2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데 그 시간만큼은 투자해보자 싶었다. 그 시간이 지나도 글로소득이 전무하거나, 그때가 되어 글쓰기가 진절머리 나게 싫어진다면 그때 그만두어도 늦지 않으니. 지금 난 글쓰기가 좋다. 쓰고 싶은 이야기가 계속 생긴다. 그거면 충분하다. 


딸기, 만두, 올리브, 냉소바, 엄마표 두부찌개와 김치, 내가 만든 아포가토, 마블 영화, 판타지 드라마, 조카들 사진 보기, 불멍 하며 종이 쓰레기 태우기, 화분 물주며 대화하기, 호기심 발동하면 자격증 취득할 때까지 공부해 보기, 아침 공복에 20분 운동하기, 3040 독서모임 가서 수다 떨기, 드림팀이랑 언젠가 다 같이 모여 다시 한번 프로젝트하자고 행복한 상상 하며 카톡 하기, 부모님 놀러 오시면 모시고 갈 맛집 체험단 신청해 보기, J랑 맛있는 음식 먹으며 티브이보기. 지금 생각나서 바로 주르륵 써내려 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우쿠렐레를 연주한다. 잘 치지도 못하고 노래를 잘 부르지도 못하지만 인생에 음악 한가락은 삶의 윤활유가 되어준다.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강요하는 사람을 힘들어한다. 분명 모두가 다르고, 있는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며 살아가면 그뿐인 건데. 나의 생각을 슬쩍 드러내보다 대화가 안 통한다 생각되면 슬며시 피해버린다. 


이처럼 난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어떻게 스트레스를 풀어야 하는지, 반대로 어떤 걸 싫어하는지 잘 알고 있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나는 아주 느린 사람이다. 


첫 연애도 스물넷이 되어서야 시작했고, 결혼도 서른 중반이 넘어서 했다. 10년 넘게 직장 생활을 했지만 평생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본격적인 실천에 옮기기 시작한 건 1년도 채 되지 않는다. 인생의 모든 성장과정에서 사회가 권유하는 속도가 아닌 나만의 속도대로 아주 느리게 살아가고 있다. 


그뿐 아니다. 누군가를 내 마음에 들이는 것도, 떠나보내는 것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나라는 사람을 알아가는데도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랑과 이별을 통해 나를 바닥까지 내려다보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고찰해 보는 시간을 가졌고, 네 군데의 직장을 다니며 나의 성향과 업무 스타일, 내가 불편해하는 성향과 환경을 파악했다. 


느린 대신 깊어졌다. 천천히 한 걸음씩 느리게 내딛는 동안 나에 대한 생각을 오래 했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뭘 좋아하는지, 무슨 일을 했을 때 행복해하는지. 남들보다 오랜 시간 고민하고 나에 대해 곱씹었기에 내 선택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여전히 흔들리지만 쉽게 뽑히지 않는 심지를 가졌다. 어쩌면 나의 이런 모습이 단단하게 느껴져 드림팀 쏘금이가 나의 삶과 생각을 궁금해하며 책내기를 권유했던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나를 잘 아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스스로를 잘 알지 못한다. 스스로를 알아가는 시간보다 사회가, 부모님이, 혹은 인플루언서가 권하고 원하는 것에 집중하며 그것에 시간을 더 쏟는 경우가 많다. 타인을 위한 선택을 하면 행복과는 점점 멀어지게 된다. 종국에는 내가 원하고 의미를 두고 즐거워하는 것으로 방향을 틀게 된다. 


내가 오래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은 나만 안다. 내 입맛에 맞는 음식 또한 내가 먹어봐야 안다. 무엇을 했을 때 스트레스가 풀리는지 알고 나만의 해법을 가지고 있으면 쉽게 지치지 않는다.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힘들어하는지 알면 나를 보호할 수 있다. 


나를 알고 또 나를 알면 백번의 선택에 백번 모두 행복할 수 있다. 결국은 다 행복하자고 하는 일 아니던가. 행복이라는 단어가 거창하게 느껴진다면 즐거움, 기쁨, 만족, 뿌듯함이라는 단어를 대입해도 괜찮다. 


곰돌이 푸우가 말했다. 

"매일 행복하진 않지만,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고 녀석 지혜롭다. 매일 도처에 널려있는 행복한 일을 나의 것으로 만들려면 선택해야 한다.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선택을 하려면 나를 잘 알아야 한다. 


 느리고 더뎌보이지만 결국 나를 잘 아는 것이 내가 가장 행복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나를 알려는 노력을 멈추지 말자. 나도 여전히 노력중이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또 다르니까. 


나답게 행복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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