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제주살이 1년이 금세 끝이 났다. 제주와 결이 잘 맞았던 우리 부부는 연세 1년을 더 연장했고 계약만료 전인 2019년 6월 제주 정착을 결심했다.
그 당시 J는 구좌읍 한동리에서 제주시내까지 출퇴근을 하고 있었다. 왕복 두 시간이 소요되는 거리라 매일 피곤해했다. 제주 정착을 결심하며 더 이상 연세가 아닌 매매를 염두에 두었다. 제주시에서 차로 30분 이내 거리, 마당, 텃밭, 돌담이 있는 전원주택을 우선순위로 두었다. 조천읍을 최종적으로 선택했다. 시내 쪽으로 가까워지면 높은 빌딩이 들어서 있어 전원주택에 사는 맛이 안 나고, 조천읍에서 더 동쪽으로 가면 출퇴근 시간이 너무 길어지기 때문이었다.
제주지도
구좌읍 집 근처 복지관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었던 나는 10개월 간의 계약 종료 다음날이었던 2019년 7월 1일부터 조천읍으로 집을 구하러 다녔다. 꼬박 2주 동안 발품을 팔다가 마당과 텃밭, 돌담이 있는 전원주택을 발견했다. 게다가 바다와 너무 가깝지도 중산간으로 너무 올라가 있지도 않은 딱 적당한 위치였다.
처음에는 널찍한 구조 말고는 도무지 가늠이 안 되는 집이었다. 마당이 넓은지 대문이 있는지도 모르게 잡초가 허리까지 자라있어 뒷문을 통해 출입했고, 비 내리는 날에는 천장에서 물이 떨어졌다. 가구도 낡아서 몽땅 바꿔야 했다. 부동산 업무도 하셨고 건물을 지은 경험이 있던 엄마는 집을 보는 눈이 있는 분인데 괜찮은 집이라며 권유하셨다. 올 리모델링을 결심하고 계약을 했다. 생애 첫 내 집이었다.
한 달 반 동안 지붕, 외벽 페인트, 전기, 도배, 내부 맞춤 가구 등 전 과정을 동시에 진행했다. 지인을 통해 각 분야마다 따로 전문가를 모셨다. 그 과정 내내 엄마가 함께 해주셨다. 사실 엄마가 아니었다면 엄두도 못 냈을 일이었다. 딸내미 때문에 한 달 반 내내 독수공방 신세가 되셨던 아빠에게 계속해서 심심한 사과를 드렸었다.
집을 지으면 십 년은 늙는다는 말이 있는데 올리몰델링은 족히 이십 년 늙는 것 같았다. 아침 6시부터 저녁 8시까지 꼬박 한 달 반 동안 구좌읍 한동리 집과 조천읍 이사 갈 집을 오가며 리모델링 현장에 있었다. 인건비에 포함되어 있어서 굳이 안 해도 되는 일이었지만 매일같이 일하시는 분들에게 음료수를 사다 드리고 잘해주십사 부탁을 드렸다. 이사 전 청소업체를 부르지 않아도 될 정도였으니 엄마와 내가 그동안 직접 쓸고 닦고 한 시간이 얼마였는지 가늠이 될 것이다.
2019년 8월 중순. 드디어 조천읍으로 이사를 했다. 제주의 8월. 엄청난 생명력을 마주하는 시기. 무시무시한 검질과의 혈투. 지금은 이렇게 표현하지만 그때는 미처 몰랐다. 전원주택러의 8월은 마당의 잡초 따위 보지도 말고, 잡초를 뽑을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하는, 온전히 마음을 내려놔야 하는 시기라는 걸.
생애 첫 내 집을 가졌다는 기쁨에 마냥 들떠 있었다. 시멘트도 잔디도 아닌 자갈을 깔아놓은 우리 집 마당. 마당을 뺑 둘러 심어진 나무들. 허리까지 잡초들로 정글을 이뤘던 공간은 잡초 하나 없는 자갈 깔린 마당으로 변신해 있었다. 이전에 가져본 적 없던 꿈에 그렸던 이상적인 공간이었다. 그 이상적인 공간에 잡초 따위는 허락할 수 없었다. 집 안 청소를 마친 후 꼬박 한 달 동안 하루 네 시간 이상 마당의 잡초를 뽑고 나무 전정을 했다. 심지어 비가 내리는 날도 우비를 쓰고 나가 잡초를 뽑았다. 전원주택에 한 번이라도 살아본 적 있는 이들은 알 것이다. 잡초는 정말이지 네버엔딩이라는 걸. 그걸 다 뽑겠다는 야무진 생각 자체가 불가능이라는 걸. 아침밥도 안 먹고 마당에 나가 시간을 보내면 어느새 집그늘이 드리워지는 오후가 되기 일쑤였다.
운동과 노동은 다르다. 하루 종일 몸 쓰는 노동 현장에 갑자기 내던져져 두 달 반 동안이나 무리를 했더니 몸에 이상신호가 왔다. 고관절부터 어깨, 목, 손목, 발목 안 아픈 곳이 없었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서른 살이 넘는 시간까지 계속해서 운동을 해왔기에 몸에 대해 너무 자신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제주에 와서부터 규칙적인 운동은 전무했다. 최소 2년 넘게 운동을 쉬었던 거다. 평소 운동을 하지 않은 채 무작정 몸 쓰는 일을 했으니 근육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고 온몸의 관절에 무리가 갔을 터.
10대, 20대도 아닌데 내 몸에 대해 자신했다. 그동안 큰 병 없이 늘 에너지 넘치게 활동하며 체력 하나는 자부했던지라
'금방 괜찮아지겠지.'
하며 몸이 주는 신호를 무시했다.
어느 정도 집 정리가 됐다고 생각했을 무렵 긴장이 풀렸는지 온몸의 기력이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이 주 동안 매일 죽만 먹고 누워있었다. 처음에는 감기인 줄 알고 약국에서 약을 사다 먹고 잤는데 배와 허벅지에 두드러기가 올라왔다. 더 열심히 약을 챙겨 먹고 쉬었다. 두드러기가 더 심해졌다. 병원에 가서 100가지 알레르기 검사를 했는데 원인을 찾지 못했다. 면역력이 떨어져 특정 항생제에 대한 알레르기가 생긴 것 같다고 했다. 어떤 성분에 알레르기가 있는지 정확하게 모르니 일단 약을 끊고 푹 쉬라고 했다.
약을 끊고 무조건 쉬었다. 그렇게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누워만 있었다. 두드러기는 사라졌는데 좀처럼 기력이 회복되지 않았다. 영혼과 육체가 지구상에서 점점 소실되어 가는 느낌이 들었다.
한 달 반 리모델링, 한 달 집 정리, 한 달 반 시름시름 앓기. 몸이 아파서 계속 누워 있으니 티브이 보는 일 밖에 할 게 없었다. 종일 티브이만 보고 있으니 잉여인간이 된 듯했다. 몸이 아플 뿐이었는데 마음도 병이 드는 기분이었다. 혼자가 아니었는데도 육신이 약해지니 하루에도 몇번씩 마음이소조하고 휘해지기까지 했다.
분명 한여름에 이사 왔는데 어느새 낮에도 창문 밖 서늘한 공기가 침대 위의 내 피부에 닿는 계절이 되었다. 더는 안 되겠다 싶었다. 겁이 더럭 났다. 이러다 정말이지 몸도 꺼지고 마음도 작아져 아무도 모르게 생을 마감해 버릴 것만 같았다.
살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다. 매일 아침 아픈 몸을 일으켜 세워 요가매트 위에 앉았다. 요가를 검색해 30분씩 운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요가매트 위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는 것도 너무 힘이 들었다. 시체처럼 누워서 호흡하는 사바아사나 자세부터 시작했다. 사실 그 동작만 30분 하다 일어난 날도 있었다.
이제 성실이 능력임을 아는 나이가 되었다. 하루이틀 운동하고 말 거 아니니 느려도 꾸준히 해보자 생각했다. 조급해하지 않았다. 호흡을 하며 내 몸속에 들어오는 숨과 내뱉는 숨을 가만히 응시하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내 몸을 더 아껴줘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허리를 펴고 책상다리하는 것도 힘들어 누워서 호흡을 시작했던 비루한 몸은 서서 한 발을 들고 균형을 잡아야 하는 나무자세를 할 수 있는 보통의 몸으로 일취월장했다.
조금씩 몸에 힘이 생겼다. 몸에 힘이 생기니 마음에도 힘이 생겼다.
'무언가를 시작해 봐야지.'
라는 생각에 가장 먼저 떠올랐던 건 글쓰기였다.
마스다 미리의 <오늘의 인생> 만화책을 보며 매일의 일상도 글감이 되는구나 생각했던 기억이 났다. 블로그에 '단비의 오늘'이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어 매일의 일상을 적어내려 갔다.
그렇게 다시 시작했다.
꿈에 그렸던 인생 첫 집도 내가 건강해야 누릴 수 있다.
좋아하는 글쓰기를 오래 하려면 중간중간 일어나서 고관절도 풀어주어야 하고 굽어진 어깨도 돌려주어야 한다.
몸이 주는 신호에 반응해야 한다. 몸이 주는 신호를 무시하면 출발선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아니, 한참 전으로 다시 돌아가서 출발선에 서기까지도 오래 걸린다. 결국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건은 체력이다. 몸이 피곤하면 짜증이 잦아지고, 내 주변의 사랑하는 이들에게 함부로 대하게 될 확률도 높아진다. 관계가 무너지면 일을 그르치게 되는 경우도 빈번해진다.
물론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벼락같은 병도 있을 수 있지만, 오늘의 하루를 누리기 위한 2,30분의 운동은 내가 선택할 수 있다. 나의 선택으로 나의 하루가 생기로울 수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는 자명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