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주는 주말
그런데 어젯밤부터 내리던 비가 아침까지 이어졌다. 일기예보에서는 하루종일 비가 온다지만, 혹시 그칠까 싶어 틈틈이 창밖을 본다. 오후 3시쯤 결단을 내린다.
‘아이스크림이라도 먹으러 가자!’
아이들 옷을 갈아입히고, 양말을 신긴 뒤 현관으로 보낸다. 그사이 나도 옷을 갈아입고 잡히는 대로 양말을 신는다. 남편은 아이들의 우비와 우산을 챙긴다. 바쁘게 준비해 밖으로 나오니 아이 손에 주황색 풍선이 걸려있다.
“이건 언제 가져온 거야?”
어린이날 받은 풍선이었다. 며칠째 현관에 살면서 바람이 빠지고 있었는데 아이가 데려온 모양이었다. 실랑이하다가 이왕 내려왔으니 같이 가기로 한다.
남편과 분홍색 우비를 입은 첫째가 앞서간다. 열심히 뒤따라가는데 노란색 우비를 입은 둘째가 우산 손잡이를 애타게 끌어당긴다. 키 82.5cm에게 손잡이를 넘겨주자 우산이 낮아진다. 아이는 아이대로 팔을 힘껏 들고, 나는 나대로 불편했다. 비바람은 내 어깨와 등을 적셨고, 우산을 2번이나 뒤집었다. 그때마다 아이는 대단한 걸 본 듯 손뼉 치며 웃었다.
빗방울에 익숙해진 아이는 물웅덩이에 발을 퐁당퐁당 담기 시작했다. 작은 발이 움직이며 물결을 일으키는 동안, 작은 손에 잡힌 풍선은 쉴 새 없이 파닥거렸다. “이거 살아있는 거 아니야?” 하고 말하는데 풍선이 뒤로 휙 날아갔다. 붕 떴다가 데굴데굴 굴러간다. 아이는 어르고 달래 겨우 걸어온 길을 되돌아 뛰어갔다.
하긴 목적지를 아는 내게나 되돌아가는 길이지, 아이에게는 똑같은 길일뿐이었다. 분명한 건 뛰어가는 뒷모습이 무척 신나 보였다는 것이다.
‘그래, 네가 행복하면 됐다.’
아이를 쫓아가며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린 틀렸어.”
풍선은 집 앞까지 날아갔고, 외출 30분 만에 제자리로 돌아왔다. 나가기 싫었으면 현관 앞에서 버틸 것이지, 한참 가다가 마음을 바꿔 날아가다니. 신이 난 노란 우비를 탓할 수 없어 풍선을 구박하고 만다.
빗방울이 흩날려 우산이 소용없는 길 위에서 우리는 여전히 풍선을 쫓아 첨벙 댔다. 비에 젖은 노란 우비가 비늘처럼 윤이 난다. ‘물고기 같네.’
미끄러질까 봐 손 좀 잡자고 했지만, 아이는 대꾸도 없이 파닥거린다. 노란 우비나 주황 풍선이나 똑같다. 나도 안다. 아이는 비바람과 풍선을 보고 만지느라 내 손을 잡을 새가 없을 것이다. 아이에게 내 손은 그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어차피 잡히지도 않는 거 그냥 풀어놓기로 한다.
그리고 아이를 쫓던 눈으로 하늘을 본다. 흐린 하늘을 뒤로한 먹색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바닥에는 나무에서 떨어진 하얗고 얇은 꽃잎이 눈처럼 흩날렸다. 다시 나타난 주황 풍선이 그 위를 굴러가고, 뒤따라온 노란 물고기가 헤엄친다.
그 사이에 바람이 출렁출렁 불어와 노란 물고기와 탁, 하고 부딪친다. 놀란 얼굴로 도도도도, 뛰어와 안긴다. 얼굴을 보니 콧물이 주르륵.
“이제 그만 들어가자.”
야윈 풍선은 더 이상 붕 뜨지 않고 길가에 멈춰 있었다. 풍선에는 하얗고 얇은 꽃잎이 비늘처럼 붙어 있었다. 바다 냄새가 난다. 이제 노란 물고기를 담뿍 안아 들고 집으로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