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없이 맞이하고 머물렀던 계절의 초입에서
무르익은 여름이었다. 장난감 도서관에 거의 도착했을 때, 아이의 손을 고쳐 잡으며 숨을 돌렸다. 땀이 찬 손이 촉촉하게 맞닿았다. 파랗고 맑은 하늘은 더운 바람도 없이 고요했다. 태풍의 눈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한 달 전에 빌린 장난감을 들고 엘리베이터를 탄다. 2층에 내려서 곧장 오른쪽에 있는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니, 밝은 조명과 희고 노란 벽지가 보였다. 우리는 담당자의 환대를 받으며 데스크를 지나 장난감 진열대로 갔다. 장난감에 둘러싸여 서로를 부르는 목소리가 물결처럼 흩어졌다가 한 곳으로 모이기를 반복했다.
“이거 어때?”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거나 ‘응’이라고 하면 대여하고, ‘아니야’ 하고 두 손을 흔들면 그 자리에 뒀다. 아이의 손짓과 표정, 불분명한 대답을 알아채기 위해 눈과 귀를 곤두세웠다. 장난감을 골라서 데스크로 가면, 담당자는 문제가 없는지 확인해 준다. 이 과정이 끝나면 비닐 포장된 장난감을 들고 아이의 신발을 신긴 뒤, 무사히 이곳에서 빠져나가야 한다.
‘오늘은 울지 않고 신발을 신을 수 있을까?’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하는데 낯익은 담당자가 말을 건넨다.
“이쪽으로 오세요.”
장난감 도서관의 대여 담당자는 6개월에 한 번 새로 뽑는다. 모든 일이, 누구나 그렇듯 처음에는 서툴지만 달이 찰수록 능숙해진다. 낯익은 얼굴은 한 달 전, 여름의 초입에 더딘 속도로 장난감을 확인해 준 담당자였다. 담당자의 뒤를 따라가면서 그날이 떠올랐다.
*
“잠깐만, 민준아. 잠깐만 기다려 봐.”
아이는 장난감 도서관 곳곳으로 가고 싶어서 매달리고 엎어지며 내 손을 당기고 있었다. 그동안 담당자는 장난감의 나사를 풀고 건전지를 끼운 뒤 다시 조였다. 전동 드라이버는 윙, 하고 재빨리 돌아갔지만 그마저 느리게 느껴졌다. 장난감의 모든 버튼을 누르며 작동되는 모습을 보여줬고, 그밖에 알아둬야 할 사소한 문제들도 알려줬다.
“미니 자동차는 원래 2개 들어있어요.”, “여기 불이 들어오다가 말다가 해요.”
친절했지만, 길게 느껴지는 과정이었다. 그동안 옆 사람이 두 개의 장난감을 대여해 밖으로 나갔으니 실제로도 길었던 게 맞다. 담당자는 장난감을 다시 비닐 가방에 담았다. 빨리 끝나길 바라며 담당자의 손을 유심히 봤다. 느리지만 어쩐지 정성스러운 데가 있었다. 서툰 일을 꼼꼼히 해내려고 애쓰는 중이었다. 매일의 나를 보는 것 같았다.
*
담당자가 걸음을 멈추고 돌아봤을 때, 다시 한 달 후 그를 직면했다. 데스크 위에 장난감과 함께 마음도 내려놨다. 그런데 전보다 눈에 띄게 빨라진 속도로 장난감을 확인시켜 준다. 한 달 전 그 사람이 아닌가, 싶어 다시 얼굴을 확인할 정도였다. 이번에는 그의 손을 관찰할 새도 없었다. 한 사람의 성장을 보는 듯 응원하는 마음이 들다가 이내 오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나는 지난 한 달 동안 뭐가 나아졌을까.’
무사히 밖으로 나오니 내리쬐는 햇볕에 정수리가 뜨겁다. 모자를 두고 온 것을 후회하며 여전히 떠올린다.
‘나도 저 사람만큼 숙달된 것이 있나.’
점점 달궈지는 생각을 들고 집에 도착했다. 그리고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아이를 보며 뜻밖의 아쉬움이 든다.
‘여름 초입의 미숙함도 좋았는데.’
느린 것은 때론 정성스러워 보여 좋다. 어쩌면 미숙해서 더 꼼꼼히 살펴볼 수 있는지도 모른다. 미숙하다는 건 끊임없이 나를 의심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언제나 미숙에 머물 수는 없는 법이다.
살면서 계절의 초입을 수없이 맞이한다.
그 시간은 나를 계절의 중심으로 데려갈까?
자주 초입에 머물러있던 나도, 이제는 좀 더 가 보자는 생각이 든다. 여름의 중심은 덥겠지만, 그럼에도 가 보려는 건 그곳에서만 누릴 수 있는 일들이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능숙해진 담당자가 인상적이기도 했고.
우리는 미지근한 바람을 잔뜩 맞고, 뜨거운 석양을 보거나, 초록의 여름을 만끽하며 더 나아지고 숙달될 것이다.
수없이 맞이하고 머물렀던 계절의 초입에서 느리게, 느리게 여름의 중심으로 가자.
의외로 태풍의 눈처럼 맑고 고요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