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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play Jul 04. 2024

낭만 8 ξ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우리는 서로에게 꽃이 되었다.

“이제 사람들이 연주엄마라고 안 하고 경자 씨라고 불러,”

“좋다. 엄마 이름으로 불리는 거 좋다, 엄마.”     


나는 경자 씨의 첫째 딸로 태어나 내가 없는 곳에서도 내 이름은 자주 불렸다. 긴 세월 동안 ‘연주엄마’는 엄마의 이름보다 우선되는 닉네임이었다. 동생은 자기 친구들의 엄마마저 연주엄마라 부르는 게 불만이더니, 나보다 50일 먼저 아이를 낳아 한을 풀었다. 엄마는 동생의 딸 이름을 따서 ‘지온이 할머니’로 불렸다. 

      

이름이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출산을 앞둔 부모들은 아이 이름을 짓느라 고심한다. AI가 글을 쓰고 노래를 만드는 세상에서도 이름은 유명 철학관에 맡긴다. 귀한 아이를 대하듯 바르고 좋은 이름을 지으려 애쓴다. 자기소개에서 첫 문장, 첫 줄에 등장하는 게 이름이 아니던가. 아이들은 가장 먼저 자기 이름을 쓰는 걸 배우고, 그건 일생을 살면서 가장 많이 반복해서 쓸 글자가 된다. 

     

그런 이름을 잃었던 엄마가 본인의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니 기뻤다. 나도 내 이름으로 불리는 것에 대한 갈증이 있었기에 더더욱.      


지금으로부터 2년 전, 낯선 동네에서 두 아이를 가정 보육하고 있었다. 아이가 알 때까지 백 번, 천 번 말해줘야 한다는 교육론은 일상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아이들은 의자 위에 휘청대며 서 있거나, 밥을 집어서 바닥으로 뿌리는 등 하지 말았으면 하는 일들을 저질렀고, 나는 지금만큼 관대하지 못했다. ‘안돼, 그만’이라는 말을 녹음해서 내내 켜두고 싶을 지경이었다.   

   

날씨가 조금 누그러진 겨울, 모처럼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터에 갔다. 그리고 나만큼 지쳐 보이는 엄마와 대화를 하게 됐다. 똘똘이 스머프를 닮은 이 엄마는 대화 끝에 전화번호를 물으며 내게 한 가지를 더 물었다.   

  

“본인 이름이 뭐예요?” 

“보민, 아, 제 이름이요?”    

 

잠시 멈춤 상태가 됐다. 우리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첫째 이름으로 불리곤 했는데, 정말 오랜만에 누군가 내 이름을 물은 것이다. 신선한 설렘에 또박또박 두 번이나 반복해서 말했다. 


“김연주예요. 김. 연. 주.”   

  

이름을 묻고 답하는 것이 이렇게 설렐 일인가 싶었지만,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리고 나도 오랜만에 물었다.


“이름이 뭐예요?”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서 첫째가 어린이집에 입학했다. 새 학기가 흐르는 동안 처음 보는 엄마, 아빠들과 인사했고 그중에 누구와는 더 자주 마주치며 친근해졌다.  전화번호를 주고받으며 엄마들의 이름을 물었다. 겨울의 나처럼 의아해하는 엄마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렇다, 우리는 아이들을 통해 알게 됐으니 어쩌면 아이 이름만 알아도 되는 사이였다. 


하지만 서로의 이름도 알게 된다면 그 관계는 다른 방향으로도 뻗어나갈 여지가 생긴다.      

어느 날 ‘이왕 이름을 알게 됐으니 조금 더 욕심내 볼까?’ 하는 충동이 일었다.  

    

“저, 제 이름으로 불러 주세요.”     


다시 생각해 봐도 어떻게 저런 말을 한 건지 뒤늦게 부끄럽다. 아마도 ‘내 이름으로 불리는 것에 대한 갈증’이 폭발한 날이 아니었을까. ‘나도 누가 돌봐줬으면, 좀 불러줬으면’ 하는 마음이 밖으로 튀어나온 것이었다.  

    

“알겠어요.”     


낯설고 엉뚱한 제안이었을 것이다. 마치 번호로 불리던 죄수가 이름을 불러달라고 소리치는 것처럼. 시작은 어색했다. 그렇게 하자고 제안한 나조차 쉽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더 수월하게 내 이름을 불러줬다.

그 이후로 좀처럼 속엣말을 하지 않는 내가 때때로 타인과 일상을 공유하게 됐고, 대화 도중에 ‘내가 이런 얘기까지 한다고?’ 싶은 생각이 드는 순간도 있었다.  

서로의 이름을 부른다는 건, 그 사람의 일상도 불러들이는 것이었다. 


“연주 씨, 오늘 뭐해요?”

“오늘은 글쓰기 숙제를 해야 돼요. 자정까지 올려야 되거든요. 

00 씨는요?”     


우리는 서로에게 꽃이 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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