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implay Jul 11. 2024

낭만 9 ξ 잘 가고 또 와요

오겠다는 마음과, 어서 오라며 기다리는 마음

“언제 또 와요?” 

“겨울?”

“중간에 한 번 더 와요. 가을에.”    

 

아쉬움이 내린 목소리였다. 

그녀가 다른 지역으로 떠난 뒤, 다 같이 단지 내 쉼터를 찾은 건 두 달 만이었다. 늦은 밤이라 불은 꺼졌지만, 새로 생긴 전광판이 환히 빛나고 있었다. 생각보다 빠른 만남이었다. 어쩌면 이 관계는 끊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니까.    


그녀는 다니던 병원에 검진차 온 김에 우리를 찾아왔다. 얻어걸린 거냐는 우스개 소리를 했지만, ‘겸사겸사’라는 말로 넘기는 모습에서 부지런한 정성이 보였다. 이른 아침부터 기차를 제외하고도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피곤한 여정을 거친 걸 안다. 그 일정 속에 시간을 내 이곳에 온 것이다.  

   

우리 중에 유일한 외향형 성격을 가진 그녀의 유쾌함에 귀를 기울였다. 시작은 이사한 집 앞에 있는 멋진 공원과 새로운 어린이집 이야기였다. 곧이어 마음에 드는 소아과를 찾아낸 일과 멀리 떨어져 있는 치과에 간 날, 아이들이 좋은 프로그램을 경험하고 있는 일상 등을 낱낱이 들려주었다. 그 뒤에는 아직 이웃들과 큰 교류 없이 지낸다는 말과 병원 이동이 불편하다는 점을 덧붙였다. 그녀는 떨어져 있던 두 달의 시간을 서너 시간 동안 부지런히 꿰매 이어 붙였다. 그렇게 공백이 채워지자, 마치 엊그제도 그녀를 본 듯한 착각이 들었다.


나는 그녀처럼 텐션이 높은 사람들이 놀랍다. 분기에 한두 번 높아지는 텐션을 가진, 그리고 그 정도에 만족하는 나로서는 언제나 넘치는 에너지를 가진 기분이 궁금하기도 하다. 그 에너지는 상대방의 에너지를 끌어내기도 하는데 그 결과, 우리는 온 가족이 함께 만나는 계획을 하기에 이르렀다.  


대화만큼 무르익은 시간이 자정을 넘겼을 때, 전광판이 꺼졌다. 나는 눈을 푹 감았다가 떴다. 애틋하고 반가운 감정과는 별개로 졸음이 쏟아지고 있었다. 집에 있으나 밖에 있으나 자정이 고비다. 이미 마시고 온 맥주 대신, 이온 음료를 계속 들이켰다. 몸을 움직이며 어두워진 쉼터와 그녀를 번갈아 봤다.  

    

두 달 사이, 쉼터에는 변화가 있었다. 구석에 있던 간이 싱크대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테이블 한 개와 의자 세 개가 놓였다. 벽면에 놓인 긴 테이블 끝에는 분리수거함 3개가 나란히 자리 잡았고, 한쪽 벽에는 커다란 전광판이 설치됐다. 그곳에는 아파트 소식이나 동사무소 공문, 한껏 꾸며진 공연 소식 등이 내내 떠 있었다.   


이번에는 그녀의 변화를 찾기 위해 눈에 힘을 준다. 좀 전 술자리에서 말해준 바뀐 안경테가 어둠 속에서도 반짝인다. 얼굴이 더 좋아 보였던 이유는 바뀐 안경테가 잘 어울렸기 때문일 것이다. 가방과 벙거지 모자를 쓴 모습은 여행자 같았고, 학생처럼 보이기도 했다. 혼자 와서 편하다고 했지만, 쏟아내는 이야기와 휴대폰에 닿은 손끝은 아이들을 향하고 있었다. 떨어져 있으면 몸은 좀 편해져도 마음까지 그럴 수는 없는 것이었다. 


다시 테이블로 시선을 옮겨 생각해 보니, 나는 계절에 한 번씩 어두운 쉼터에 있었다. 지나간 겨울과 봄, 지금은 여름이었다. 분기에 한 번만 높아지는 텐션을 가진 게 확실했다. 관성처럼 가을에도 이곳에 들를 것 같았고, 그러다 문득 그녀에게 언제 또 오냐는 질문을 건넸다. 겨울에 온다기에 가을에 한 번 더 오라고 했다.  


“가을에는 우리 딸 생일인데 생일 파티하게 와요.”     


중간에 한 번 더 보기 위해 아무 말과 이유를 들이밀었다. 잔잔한 웃음이 장마 전 여름밤처럼 선선하게 일렁이다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자리에서 가장 먼저 일어났다. 기차를 타고, 지하철과 버스도 타고, 중간쯤 택시도 탔을 그녀보다 먼저 고꾸라진 게 무안했지만 말보다 먼저 비집고 나오는 하품이 더 민망했기 때문이다.  


“조심히 가요. 도착하면 연락해요.”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밖으로 나와 문을 닫는다. 가로등 덕분에 밝은 길이 펼쳐져 있었다. 그 위에 짧은 시간 동안 반복한 인사말, ‘와요’ ‘가요’의 잔상이 남는다. 이 말 사이에는 어떤 마음이 담겨 있었을까.      


오가는 건 이어지는 길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 길은 오겠다는 마음과, 어서 오라며 기다리는 마음이 쌓일수록 견고하게 붙는다. 통하는 마음은 만남을 잇는 다리가 된다. 


우리는 무던하게 그러나 잊지 않고 서로에게 오가는 길을 다지고 있었다.

길에 대해 생각하다가 되돌아본 길은 쉼터까지 잘 이어져 있었다. 그 안에서 들릴 ‘아그삭아그삭’, ‘타닥’ 하는 소리들이 잡힐 듯했다. 안에서는 밖이 훤히 보일 테니 한 번 더 손을 뻗어 흔들었다.     


‘잘 가고 또 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