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배우입니다. #배우김혜자 님을 존경하는 이유
"그래~ 이맛이야"
친정엄마의 맛있는 음식에는 늘 다OO가 있었다.
어머니뿐이 아니었다. 어르신들이 만든 국물맛에 "기가 막히다 어떻게 이런 깊은 맛을 내시지"했더니
다OO가 한바가지였다.
MSG는 조미료란 고정관념은 쉽게 떠나지않고 외부음식을 먹고 난후의 텁텁한 입맛이 싫어 집에서만큼은
쓰지말자했더니 나의 식탁은 이 맛도 저 맛도 없다.
내가 김혜자씨를 처음 본 게 이 선전이라고 기억된다.
" 그래 이 맛이야"
보글보글 끓고 있는 찌개에 한 수저 떠서 간을 보고 고개를 살짝 돌려 인자한 엄마미소를 짓는.
그 이맛이야
김혜자씨가 전원일기에서 느릿느릿하면서도 할 말은 다 하는 김회장의 안사람으로 나왔을 때
다른 사람들이 오해하듯 나도 두 분이 부부인줄 알았다.
톡톡 나서다가 늘 일을 키우는 일용엄니의 중심을 잡아주고 따끔한 시어머니 한마디, 김회장의 무뚝뚝한 표현에 순전한 투정, 시골향취 듬뿍 나는 음식을 만드는 손맛..김혜자씨는 단언코 전원일기의 중심이었다.
꽃으로라도 때리지말라는 책을 출간할 정도로 아프리카 기아에 진심으로 관심을 보였던 중년후반의 삶은
세상밖으로 행진하라는 한비야의 외침과 비슷한 시점에 전혀 다른 관점을 부여해주기도 했다.
나는 그분을 좋아하나보다. 그분이 나온 인터뷰 토크쇼 무한도전을 거의 챙겨본 것 같다.
-아프리카에 있을 때 아, 서울에서 했던 고민들은 다 쓰레기였구나....
-내가 담배를 오래 피웠는데 어느 날 담배냄새도 맡기 싫은거예요. 그래서 딸에게 오늘 이상해 아침에 담배를 피우려고 했는데 도저히 안되는거야 했더니 딸이 아멘 감사합니다하더라구요. 딸이 저를 위해 오랫동안 기도했었대요
- 소녀같은가요? 모르겠어요 나이가 많아지니깐 내가 이렇게 말이 많았나싶을 정도로...소녀의 감성은 좋지만 소녀처럼 행동하면 안되는거잖아요
- 마더를 모니터하는데 너무 무서웠어요. 저 여자얼굴 나오지않게 해주세요라고 했어요
- 전원일기할 때 돌아가신 엄마에게 전화하는 장면이 있었어요. 촬영하는 분만 남고 모두 나가라고 했어요.
하늘에 있는 엄마에게 전화를 하는 거예요. 그럴 수 있잖아요.
전국의 어머니들에게는 요리를 잘하는 사람으로 보여졌는데 "요리는 그다지, 전혀.. 차라리 내가 국민엄마다" 라는 김수미씨의 증언(?)으로 실상이 공개되었지만 인터뷰내용은 120프로 가식없는 진실일 것 같다.
본방사수와 일주일을 기다리기 싫어 남들이 다 보고 난 뒤 진짜 명작이다란 드라마.
그중에서도 구미가 진짜 당기는 것만 골라보는 경향이 있는 나에게 "눈이 부시게"가 추천되었다.
이거 또 눈물샘 자극하고 보고 난 후 며칠 간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거 아니야하면서도 1화부터 정진해서 삼일만에 12회까지 완주했다.
역시나 김혜자씨는 앞에서 맡았던 어떤 역할도 떠올리지못하게 하는 신들린 연기력의 소유자다.
41생 우리나이로 80대 시니어, 흠칫뽕하는 샐쭉한 표정이나 손녀뻘되는 어린 연기자들과 야자를 터는 장면에서도 전혀 어색하지않고 아픈 다리를 놓고
"아빠 내가 미안해" 라며 안쓰러워할 때는 눈물을 쏙 뺐다.
80세 여성에게 "여전히 소녀같아요"란 말보다 "세심한 배우다"란 칭찬에 더 반색 하는 그분은 배우하려고 태어난 양반이다.
어떤 일이고 일만 시간을 하면 전문가가 된다고 한다. 하루 8시간 기준으로 보면 일주일에 40시간 ,한달이면 160시간, 일년이면 1,920시간, 5.2년이 걸려야 일만시간이란 전문가 과정이 완성된다.
5년, 전문가라고 부르기엔 좀 짧은 시간같다. 골프캐디분들도 10년은 되어야 소리만으로도 공이 왼쪽으로 갔는지 오른쪽으로 갔는지 안다는데.
어쨋든 시간에 비례해 한 눈만 팔지않고 5년 정도 일하다보면 어디가서 명함은 내밀어도 된다란 말이겠지.
3.5.7이란 직장생활의 규칙이 있었다. 입사 3개월, 입사 3년차때면 이게 내가 원했던 직장일까 일일까
이거 계속 가?
말어? 요즘은 3개월도 못가 회의감이 들어서 그만둘거면 하루라도 빨리로 바뀌었다지만
그 3.5.7시기를 놓쳐 어느 덧 5년차 10년차가 되어도 전문가가 되기는 커녕 모르는 누군가가 혹시 00일 하세요?라고 물으면 흠칫 놀랬던 기억이 있다.
알아본 게 기쁜걸까 전문가가 아닌 수준을
들킨게 부끄러운걸까
어디 가서 뭐한다라고 말하지말라. 0팔린다란 너스레를 떠는가하면 어떤 직업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에 맞는 행동을 해야한다란 부담감에 그냥 회사원이란 직업을 대기도 한다.
청국장집에서 나오면 청국장냄새가 나는 게 당연하고 햄버거를 먹었으면 마요네즈냄새라도 나겠지만
직업에 대한 회의감은 시도 때도 없이 오고 자부심은
수입에 따라 상한가 하한가를 번복하며 때로는 감추고 때로는 잠깐 하는 일이라고 변명도 해본다.
70년대에 데뷔한 김혜자씨는 이제 50년차의 중견배우가 되었다.
나는 배우입니다.
나는 가수입니다.
젊은 아이돌에게 바라는 것도 늙은 여배우에게 바라는 것도 같다. 노래 잘하고 연기 잘하고
나는 회사원입니다.
나는 선생입니다
나는 차수리공입니다
나는 영업사원입니다.
나는 공무원입니다
나는 미용사입니다.
일만이란 시간이면 전문가가 된다란 말은 5년이 어떤 일을 배우는 데 있어 짧지않다는 말과 같다.
그 열배의 시간을 보낸 한 배우가 우리를 웃고 울게 만든다.
나는 어떤 일의 전문가가 되어있어야 하는 것일까
누군가가 내게 기대하는 목표치의 근처 비스므레하게는 가있는 것일까
김혜자씨를 보면서 나이들어가는 게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구나.
서른의 엄마도 소중하고 일흔의, 여든의 엄마도 소중하구나
그런 역할을 해줘서 어머니를 떠올리게 해주고 감사하다.
한창 젊은 나이의 여배우가 병석에 누워있는 역할임에도 진한 화장을 하고 있다.
모 여배우가 못생긴 역할을 맡았는데 "배우는 예뻐야하는 데 속상해요"란 인터뷰를 했었다.
여배우는 꼭 이뻐야할까?
초짜 연기자들이 연기잘하는 선배와 함께 한 것만도 대단한 영광인것처럼
평범한 우리도 선배 전문가와 함께 하는 걸 영광으로 알고
시간에 비례한 진짜 영향력있는 전문가가 되고싶어진다.
나는 배우입니다
라고 말씀하시는 그 분의 영향력에는 닿지못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