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 돌 굴러가유~"
내 부모님은 충청도가 고향이시다.
" 부모님 고향이 어디신가?" 란 질문에 충청도라고 답하면 이렇게 농하시는 어른들이 많았다.
" 돌 굴러가유~"
하도 느리다란 선입견에 새로운 버전이 나왔다.
" 아버지 돌 굴러가유"
" 벌써 피했어 임마."
그래도 느리다란 선입견이 강했는지 또 다른 버전이 나왔다.
" 아버지 돌 굴러가유"
" 벌써 피했어 임마. ...윽."
" 두 갠디~"
식솔이 많은 탓에 연애도 중매도 제각각, 여러 형제자매는 제주도만 빼고
전국구의 이성을 만나 새로운 가정을 형성했다.
온 가족이 모이면 음식문화도 제각각, 사투리도 제각각이다.
부추를 달라고 했다가 정구지를 달라고 했다가 무를 달라고 했다가 무수를 달라고 했다가
김치, 짐치, 이짝 저짝 이쪽 저쪽...웃음이 터져나왔다.
"나라도 좁은디 말은 와그리 다른교?"
세월이 흐르니 니말이나 내말이나 알아서 새겨들으니 처음처럼 우습지도않더라.
그렇게 가족간의 우애가 좋아도 서로의 정치성향은 좀처럼 나누지않았다. 오히려 예우해주었다.
아.그 사람 좋지. 지금 생각해봄 영혼없는 대화였다.
그것은 참 예민한 문제라고 생각했었나?
꽤 오래전 일로 기억하는 데 열댓명 모인 술자리에서 전라도 친구가
" 우리야 영원히 김대중이재" 하면서 건배사를 올려 빵 터진 적이 있다.
그 옆에 있던 동향인이
" 우리야 뼈속까지 김대중이재" 라며 추임새를 올렸다.
이후 경상도 지인이 뭐라 뭐라 했고 테이블은 시끌시끌거렸다.
제일 조용한 건 경기도? 강원도? 그랬던 것 같다.
강원, 경기도는 마땅한 정치인이 없었던 까닭인데 어쨋든 그 자리는 각자의 추임새만으로도
상당히 즐거웠고 서로간의 사투리를 흉내내다 그 어색함에 웃음이 끊어지지않았다.
프로야구를 보는 게 하나의 취미인 나는 가끔 응원창에 올라온 댓글에 빵빵 터질 때가 많다.
촌천살인도 있고 야구단 감독인가, 선수 아버지이신가란 착각도 들게 하는 열혈팬들.
악성댓글도 있지만 사실 댓글을 달 정성이면 보통 팬들이 아닌게다.
특히 KIA와 롯데의 경기에는 각 고향의 특징을 담은 홍어와 문딩이란 단어가 자주 나오고
서로를 비방하는 경우도 있다.
처음 그 댓글들을 볼 때는
'하. 우리나라는 왜 이러지, 왜 아직도 지역감정이지'....란 생각을 했는데
요즘은 꼭 그렇지만도 않은 듯하다. 상호간의 비방이 아니라 그냥 자기팀이 이기길 바라는 팬심이고
심지어 안부까지도 궁금해한다.
" 이 00 홍어. 오랜만이네"
" 그래, 00 짜샤 바빴다. 왜, 보고싶었냐?"
익숙한 아이디에 서로의 안부를 묻기도 하고 오늘은 뭣때문에 야구장 못간다는 스케쥴도 오간다.
누군지 전혀 알지못하나 내 팀이 있어서 신나고 상대팀이 있어서 더 신나는 댓글창은 또 다른 야구장이 된다.
우리나라의 명문대학인 고려대학교와 연세대학교, 연세대학교와 고려대학교(누구를 먼저 써도 누구에게나 야단맞는단다)는 해마다 고연전.연고전을 한다.
그 응원단 이름도 독특하다.
아카라카와 입실렌티라고 하던데 잠실주경기장에서 둘의 응원전을 볼 기회가 있었다.
와...장난아니다!
화려한 의상에 화려한 몸놀림의 연세대
민족고대란 말처럼 한복을 입고 나선 고려대
응원단의 인기에 무한도전프로그램에서 나온 걸로 기억하는데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현장감이었다.
두 학교에 소속된 학생이라면 그 열정적인 응원에 일심단결이었겠지만 소속이 없어도 뜨거운 열기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열기가 무르익자 어느 순간 고려대 응원단장과 연세대 응원단장이 서로의 단상으로 바꿔 올라섰다.
상대팀 응원단장이 올라오자 박수와 함성은 배가 되었다.
큰 절을 올리고 신호에 맞춰, 박자에 맞춰서 상대팀 학생들이 정말 열심히 따라하는데 눈물이 날 정도였다.
나는 어느 소속도 아님에도 저들의 열정에 흡수되는 느낌!
이런 걸 진정한 화합이라고 해야하나
빨간색과 파란색은 적대감정을 가진 채로 절대 섞이지않을 것 같은데 아니었다.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걸맞았다. 딱맞았다.
아주 보기좋았다.
동호회 식사모임에서 어쩌다보니 학교이야기가 나왔는데 한 분이
"강북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안암동..." 이란 멘트가 나오자
" 어, 난 독수리인데 혹시 호랑이?" 라며 급 반가운 눈치를 주었다.
마치 전쟁에서 잃었던 전우처럼 대하며
동창보다 오히려 즐거운 기억을 꺼내는 두 사람.
어떤 의미에서는 戰意전의를 불러일으켜 준 상대팀이라는 게 젊은 시절로 돌아가 니캉내캉.싸움구경만 재밌는게 아니더라.
작고하신 친정아버지는 서울에 올라오신지가 아주 오래되었음에도 술을 마시면
" 나는 고향에 묻히고싶다" 란 말씀을 자식이 아닌 고향 동기들에게 말씀하셨다는데
고향 땅도 다 넘기고 당신을 찾아 뵐 후손은 직계인 자식들이 다들 서울에 사니
충청도로 정하고 내려간다치면 과정이 복잡해진다.
그것을 아시니 자식들에게는 차마 주장하지못한 유언이 바로 그거였다.
그러나 자식들은 효도를 하지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모든 장례가 서울자식들의 방식대로 다 진행된 후에 본가의 사촌오빠가 발이 안떨어진다고 했다.
" 니 아버지가 그렇게 부탁하셨는데..내가 죽으면 고향땅으로 꼭 데려가달라고...직계가 아니니 주장은 못하지만..난 이건 아닌 것 같다."
아버지는 뼛속까지 충청도였다.
당신 말로 " 충청도 놈들은 음흉혀" 라고 농하셨고 전국구 출신의 사위들의 사투리에 웃으셨고
그들의 정치색을 존중하셨고 그래도 고향땅에 묻히기를 소망하셨지만 남은 자들은 고향보다 현실이
앞섰다.
고향을 바꿀 생각은 없다. 고향은 엄마이고 아빠이니깐.
그러나 동향이라고 해서 점수를 더주거나 더 반갑거나 하지도 않다.
윗세대들은 동향이란 이 "연고"에 마음이 끌려 출세와도 연관짓는지 모르겠지만
나를 포함해 뒷세대들은 고향에 대한 애정이나 출신지에 대해 그다지 궁금해하지도 않는 분위기다.
그것으로 명함 한 장을 더 놓거나 출세에 영향을 줄 세대는 이제 없다고 본다.
그런 분위기이기에 기아나 롯데같은 VS, 연대와 고대같은 VS는 심심한 혼자를 재밌는 둘로
만들어 주는 계기고 가능성같다.
연대가 고대없었음 어쩔 뻔 했는가?
지역감정을 아카라카와 입실렌티처럼 상대방의 단상에 올라서서 큰 인사를 하고 큰 호응을 해준다면
빨간색 파란색이 아닌 보라색이 되는 그런 가능성말이다.
" 이 00홍어 어디갔다 왔어? 궁금했잖아."
" 이 문딩이 자식, 왜, 보고싶다냐? 이 형아가 좀 바빴어. 오늘 경기는 우리가 가져간다 잉!"
백제의 사투리,
"거시기가 거시기혀서 너무 거시기하다" 란 대화가 너무 어려워서 신라군이 침략에 실패했다는 말,
경상도 사투리,
" 갸가 갸갸가?"
란 말에 옆에 듣고 있던 한국사람이
" 봐. 내가 일본 사람같다고 했잖아."
충청도 사투리,
" 갔슈?"
웃음이 나오는 각자의 사투리, 싸울 때는 치열하나 뒷풀이는 하나인 VS,
"동향이 반갑기는 하나 무조건 봐주지는 말랑껭 그리고...
다같은 우리나라 사람 아인교?? 게임할때만 편의상 나누랑께. 겨.아니여?"
#연대 #고대
#연고전
#고연전
#기아 롯데
#롯데기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