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와 멧돼지의 연극

연극이 끝나고 난뒤

by 유원썸

참 좋은 제도다.

매마수.

매주 마지막주 수요일은 문화의 날이다. 연극도 영화도 반값이다.


친구의 생일을 축하해주기위해 뭘 해줄까...고민하다 재밌다는 연극을 예매했는데

럭키!!!!

매마수라 32,000원 연극표가 어떻게 dc되었는지 12,000원에 결제되었다.

나이수!!!


"오백에 삼십"이란 제목에 사실 큰 기대는 안했다.

음... 돈없는 서민, 돈 없는 청춘들의 애환을 코믹하고 미스테리하게 연출했다는 등등의 리뷰를 믿어보자란 마음으로 혜화동으로 향했다.


혜화동은 언제와도 즐거운 곳이다. 분위기도 그렇지만 기억도 한 몫이다.

대학다닐 때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한 카페가 있는 곳이고 미팅을 한 장소가 있고

첫사랑이 고백후 맛있는 것을 사주겠다며 데리고 갔었고 그 후로 꽤 오랜 시간 뒤 남편과

데이트할 때 처음으로 손을 잡은 곳이기도 하다.


아르바이트했던 그 카페의 사장님은 손님이 없을 때 나를 은근히 미워했다.

손님도 없는데 인건비만 나가네...란 그런 아까운 표정을 어린 나이에도 충분히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고작 몇 천원을 쓰는 데는 1분도 안걸리는데 고작 몇 천원을 버는 게 이렇게 어렵구나란 깨달음을 준

고귀한(?) 삶의 체험.

안먹고 안쓴다란 각오로 딱 한달을 하고 그만두었는데 지나고 보니

그 때 내가 배가 불렀구나싶다.

청춘, 그 시간에 먹고 떠드는 것도 필요하나 내 힘으로 돈을 버는 과정도 있어야했었다.


삼천포로 빠졌는데 여하튼 그런 혜화동의 연극은 여전히 청춘과 열정으로 가득차있다.

많은 공연장은 무릎을 쫙 펼 수 없고 불나면 어떻하지란 불안감이 들 정도로 열악하지만

관객은 장소에 연연해하지않는다.


요즘의 배우들은 연기만 잘하는 게 아니다.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좋은 외모에 훌륭한 몸매까지

내 기억에 뚱뚱한 연기자는 있었어도 늘어진 배를 가진 이는 없는 것같다.

시간이 넘게 무대위에서 쉬지않고 움직이니 체력이 남다르다.

화내고 울고 웃는다. 애드립도 만만치않게 많다.

전에 연기자의 주름까지 알아챌 정도의 거리인 맨 앞자리에서 본 연극이 하나있는데

종반으로 갈 수록 그의 땀이 나한테까지 튀겨서 어찌나 당황스러웠는지 모른다.

그 열정과 땀은 내게 이중적인 생각을 갖게했다.


그래서 앞자리는 돈때문이 아니라 집중하기위해 피한다.


"오백에 삼십"은 제목대로 돈 많은 집주인이 쟁쟁거리고 그 빌라에 사는 사람들은 서로 도와가며 일희일비하는데 집주인으로 나온 아줌마가 매우 맛깔스럽게 연기다. 연기인지 실제인지 구분이 서지않는다.

얀극 오백에 삼십 공연이 끝나고
연극 오백에 삼십 공연이 끝나고
연극 오백에 삼십 공연이 끝나고

대부분의 연극이 그러하듯 1인 다역으로 나온 많은 출연자들이

A분장에 A역할, B분장에 B역할. 헷갈릴 수도 있을텐데 전혀 그렇지않다. 저러니 프로겠지.


연극이 끝나고 난 뒤 무대에서 사진을 찍으라는 관계자의 종용(?)에 핸드폰 저장용으로 쓰기위해 올라섰을 때

그 주인 아줌마 역할을 한 배우를 보고 깜짝 놀랐다.

내 눈에는 애기였다. 피부톤이 일단 20대였다.

어린티가 팍팍 나서

" 어쩜 그렇게 아줌마 연기를 잘하세요." 엄지척을 했다.

" 감사합니당~"란 혀짧은 답변에는 이십대의 부끄러움이 듬뿍 했다.

일만 이천원이 아니라 삼만원을 주었어도 전혀 아깝다란 생각이 안들 그들의 연기에 일단 박수를 보낸다.


놀이패.남사당패. 광대.딴따라,연예인이란 여러 이름으로 우리 일반인들앞에 서는 그들은 참 뻔뻔하다.

옷과 소품 몇개로 그들은 전혀 다른 과거의 인물, 심지어 서양의 인물이 되어 보는 이들을 완벽하게 속이고 그것도 모자라 들었다 놓았다하니 그렇다.


최근 경기도 안성에서 스토리가 있는 남사당공연을 보았는데 머스트해브씬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공연가운데는 120센티정도의 어린아이가 어른의 어깨에 오르고 또 그보다 더 어린아이가 그 위에 올라서는데

어린아이들의 표정은 평안 그 자체다. 어떤 믿음으로 두 어린이가 버티고 있는 것일까?

아무래도 아빠이겠지. 설마 남한테 아이를 맡기겠어? 이러저러한 추측이 그나마 떨리는 마음을 잡았다.

다행히 공연은 실수하나 없이 잘 진행되었다.


주인공 역할인 여인네가 연기,노래,기타등등의 예능을 보이다가 마침내 줄타기 공연을 했다.

안성남사당패

늘 남자분들이 하는 것을 보다가 여인네가 하는 걸 보니 남다르다.

솔직히 떨어지면 어떻하지란 아슬아슬이 더했다. 같은 여자라 안쓰러서였을까?

센 밧줄에 자신의 몸이 튕길 때마다 어쩔 수 없는 마찰에 아팠는지 틈틈히 허벅지를 매만지는 주인공.

하일라이트가 끝나고 모두가 내려와 강강수월래로 마무리를 했다.

그 와중에 그 여인네의 얼굴을 보았는데 또 한번 놀랐다.

걸걸한 목소리와 전혀 어울리지않는 앳띤 얼굴, 내 눈에 역시나 애기였다. 피부톤이 20대였다.


참 이상한 마음이 들었다.

연극을 보았을 때는 그들의 열정에

"재밌네, 잘하네, 잘생겼네 TV에서 곧 보겠네"란 긍정적인 생각뿐이었다.


남사당패의 공연에서 실수는 곧 사고다. 애드립도 없다.

오직 온 몸으로 표현하는 극놀이.

특히 그 줄타기 여인을 가까이서 보고나니

" 왜 하고많은 일중에 이렇게 힘든 일을 택했을까?"

마음이 짠했다. 물론 인간문화재일거고 그에 따른 인기와 명예, 댓가가 있겠지만 3미터쯤 되는 높이에서 온 몸을 튕기는 아슬거린 곡예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절대 돈이 목적이 아니라는 걸 알기때문이다.


좋아서. 진짜 좋아서. 너무 좋아서이겠지.


돈을 많이 준다고 남이 시켜서 해도 버티고 할 수 있는 한계가 있다.


나는 그게 단순히 재능으로만 보이지않는다.

그건 누구나 같은 시선이리라.

재능이라고해봐야 남보다 강심장,

수 천번 연습하고 떨어지고 다시 올라섰을 그 여인네의 노력이 비단 2019년뿐이었을까


신라에도 고려에도 조선에도 하물며 그 암흑의 일제시대에도 분명 있었을 예능인들이 단지 돈으로만 유혹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연극이든 서커스든 뭐든간에 예능인들은 관객이 있어야 한다.


연극의 劇이란 한자는 호랑이와 멧돼지가 들어있단다.

둘의 싸움이란 거다.

맹호와 무서울게 없다는 멧돼지의 싸움은 막상막하란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치열하다.

누군가 하나는

죽어야 끝날 싸움이다.

그런 아슬아슬한 전투의 성격을 우리는 앉아서 편하게 본다.


재밌네. 괜찮네. 연기잘하네. 잘생겼네. 아휴, 돈 아깝다. 다른 거 볼 걸.


남사당 줄타기여인이 이런 말을 했다

" 오늘 오신 손님들의 박수가 놀부 된장국이네."

" 그게 무슨 말이야?"
" 짜. 너무 짜"


그제서야 박수가 여기저기서 슬슬슬 나왔다는.


우리가 기립박수하고 커튼콜을 쉽게 하는 민족은 아닌 듯, 그래도 BTS를 보고 환호성을 지르는 외국인들을 보면 마음이 흐뭇해지는 게 이제는 기립박수는 둘째치고라도 우리 예능인들의 공연을 돈을 내고 자주 자주 보러가야겠다.


연극인들도 남사당패도 계속 계속 잘되었음 싶다.

준비한 노력에 비해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아 무대위에서 허전한 마음을 달랠지도 모르는 청춘들에게

놀부 된장국은 이제 그만 대접할 것을 다짐하면서 이번 매마수에는 무엇을 볼까 고민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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