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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봉란 Oct 21. 2023

시누이 열전

서울 자식은 보험이고요

시누이가 셋이다.

결혼을 앞두고 알았다.

남편이 일부러 숨긴 건 아니랬다.

그냥, 말하는 걸 잊은 것뿐이라고.     



첫째 형님은 나보다 열세 살이 많은 K 장녀의 대표주자다. 직업도 맞이답다. 갓김치가 맛있는 동네에서 보건소 직원으로 일하신다. 명절 때는 대가족 밥상의 설거지를 식세기보다 빠르게 처리하는 비상한 능력을 발휘하신다. 나도 염치가 없는 사람은 아니라, 뭐라도 도우려고 하면, 오히려 걸리적거린다며 주방에서 쫓아내는 통에, 나는 고무장갑을 끼다마는 역할을 전담한다.     


https://m.blog.naver.com/houngminmom/223029133938


둘째 형님은 남편의 가족 중 처음 본 사람이다. 지방에서는 대체로 들 싸게 싸게 결혼하는데, 서른다섯이 되도록 혼자인 동생이 갑자기 결혼하고 싶은 여자를 소개한다고 하니, 아이 셋을 대동하고 상경했다. 짜장면을 먹으며 나를 선보이는 첫자리에서, 그 집안을 알아가는 최초의 만남에서, 그런데, 대화가 좀 이상하게 흘러갔다.      



예를 들어,      


“일요일 밤에 라디오 틀면, 봉란이 목소리 들을 수 있어.

영어로 된 노래 소개하는 프로그램이야.”      


라고 하면 둘째 형님은      


“그래? 우리 철수 아빠도 항상 영어 공부를 하는데...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날마다 책상에 앉아서 단어 보고, 책 읽고,

애들보다 더 열심히 한다니까.”     



그러면 철수 아빠는 왠지 주름진 나이에는 어울리지 않는 수줍은 미소를 띠며 아내의 말을 부인하지 않았다. 이렇게 대화의 축이 넘어가면 둘째 형님의 남편, 그러니까 남편의 매형, 세 아이의 아버지, 내겐 아주버님이 되실 분이 대화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었다.

      


“봉란이는 착해.”     


라고 하면 둘째 형님은     


“우리 철수 아빠도 사람이 너무 좋아. 항상 이렇게 웃고 있잖아.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애들 때문에 짜증이 날 법도 한데 찡그리거나 화내는 일이 없어. 진짜 이런 사람 없지”     



모르고 들었으면, 봉란이와 철수 아빠를 연결시켜주는 자리인 줄 알았을 것이다. 어쨌든 이 아리송하게 묘한 대화 덕에 어색하고 떨려서 죽을 것 같은 마음이 편안해졌다.



갓김치보다 더 유명한 그곳의 밤바다에서 둘째 형님과 아주버님은 전화 통화를 하며 연애를 했을까?     

‘이 바다를 너와 함께 걷고 싶어, 걷고 싶어.

이 거리를 너와 함께 걷고 싶어, 걷고 싶어.’     

라며 두 분은 사랑을 나누어서 이렇게 애가 셋인데도 사랑이 차고 넘치는 걸까?

이건 내가 꿈꾸던 삶인데.

백 살까지도 사랑 타령하는 것 말이다.

합격이었다. 이 집안, 마음에 들었다.     



물론 나도 그들에게.

“도망칠 여자 같지는 않네.”

라고 세 아이가 평가하여,

우리는 결혼할 수 있었다.

누나 삶의 방식이 동생에게 이어지지 않는 변수가 있는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셋째 형님은 역시 셋째 딸이다. 얼굴도 안 보고 데려간다는. 집에 숱하게 많은 남학생의 전화가 걸려 왔었다는데, 줄 선 남자 중에 고른 사람은 서울 유학을 다녀온 분이다. 아주버님은 고향에 돌아와 공무원이 되어 지역발전에 이바지하고 계시다. 셋째 형님은 백화점깨나 들락거릴 것 같이 생겼지만, 이 고장에 백화점 비슷한 몰이 들어선 것도 2021년 5월이 처음이라, 평생 사치스러운 경험을 멀리하여 그런가, 그저 알뜰하고 옹판지다. 현재 나는 서울살이를 하며 노후준비를 전혀 못하고 사는데, 가끔 남편의 고향에 내려가 음악 학원을 차리고 셋째 형님을 실장님으로 모시는 상상을 한다. 형님은 무슨 일을 했다 하면 잘되지 않을 수 없는 포스가 있기 때문이다.



https://m.blog.naver.com/houngminmom/223029133938



세 자매는 갓김치가 맛있고, 밤바다가 아름다우며, 백화점이 없는 지방에서 재미지게 다. 각자의 직장이 있지만, 시부모님의 농사에 동원될 때마다 툴툴거리면서 때에 맞게, 늦지 않게, 고구마를 심고 토마토를 따고 깨를 턴다. 바쁘다 바빠!      



출가한 딸들은 수시로 시골집을 들락거리며 노부모님의 안위를 챙긴다. 집안의 대소사도 세 자매가 똘똘 뭉쳐 걱정 없이 해결한다. 딸 셋을 낳는 것이 노후 대비의 정석임을 보고 있다.      



아 참! 빠트린 대목이 있다. 남편은 누님 셋 말고도 형님이 하나 더 있다. 아주버님은 우리처럼 서울에 사신다. 그러니까 오 남매 중 딸 셋은 지방에 머물러 살고 아들 둘은 서울로 올라가 버린 것이다. 아들들은 명절 때나 간신히 내려가기도 하고 못 내려가기도 하고, 그렇게 산다.      



서울에 있는 아들들이 ‘쓸모 있어지는’ 경우는 병원에 갈 때다. 아무래도 크게 아픈 일이 있을 때는 지방 병원보다는 서울 병원이 믿음이 가기 때문이다. 시아버님 논리로는 1등 하던 애가 100등 하던 애보다 수술을 잘하지 않겠냐는 거다. 큰 병원에 가는 일은 1년에 한 번 정도 정기 검진 때 외에는 없었는데, 최근에는 노화로 인한 허리통증 때문에 조금 더 많이 오고 계시다. 서울에 사는 자식들은 이때를 위한 보험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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