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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봉란 Oct 19. 2023

서울에서 가장 불가능한 꿈


나풀나풀 낭창한 아줌마가 되었던 날의 사진을 들췄다. 역광의 햇살에 얼굴 주름은 적당히 뭉글어져 있다. 자연 뽀샵이다. 오른쪽 손은 셀카를 찍느라 쭉 뻗었고 왼쪽 손으론 어린 남자를 꽉 안고 있다. 아줌마는 그 이상 해사하게 웃을 수 없는 표정이다. 지구별에 태어나 서른여섯 해 만에 진해에 도달했다. 참 오래도 걸렸다.


벚꽃 반 사람 반이라는 군항제를 보러 갔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아줌마의 애인은 네 살배기 아들이었다. 여행의 좋은 동반자이지만, 사실 큰 짐이기도 했다. 어릴 때 이 좋은 데도 안 와보고, 뭐 하고 살다가 이제야 무겁게 혹을 달고 여행을 다니는 건가. 그런데 생각해 보면 늘 바빴다. 대학교 때도 중간고사를 치르고 나면 꼭 벚꽃이 다 떨어져 있었다. 일을 시작하고부터는 더 여유가 없어 이런 곳을 다녀볼 생각조차 못 했다. ‘서울 촌년’이 속으로 생각했다.


‘바보야, 참 헛살았다.’     



둘은 손을 꼭 붙잡고 걷다가 이내 손을 놓아버렸다. 꽃비가 하도 쏟아지니까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휘날리는 분홍색 꽃잎 하나 잡아 보겠다고 허공을 마구 움켜쥐었다. 우스꽝스러운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창피하진 않았다.      



공간이 사람에게 주는 영향은 서른여섯 살을 네 살로 만들 만큼 힘이 있었다. 거대한 드라마 촬영장처럼 온 도시가 예뻤다. 동네를 걷다 눈에 띄는 파출소는 인테리어용 장식물 같았다. 이 도시는 범죄가 일어날 수 없을 것이다. 적어도 봄에는.      







2023년도 서울의 인구는 약 940만 명, 면적은 605㎢로 아름다운 도시 진해에 비해 면적은 5배(123㎢)이지만 인구수는 19만 명으로 50배에 이른다. 어릴 적 친구들과 함께 숫자 맞추어 신문지에 올라가는 게임을 했다고 치면, 진해 친구는 널찍한 종이 위에 혼자 대자로 누워 편안히 쉬는 모양새다. 서울 친구들은 오십 명이 올라가 서려고 일단 한 발은 들고, 옆 사람 발을 밟고 어부바를 하고 목마까지 태워 간신히 버티고 있는 형국이랄까.      



[불멸의 이순신]을 쓴 진해 출신의 작가 김탁환은 1996년 첫 장편 소설을 출간한 후로 23년 동안 29편의 소설을 쓰다가 일 년은 쉬어 가야겠다며 곡성에 머물렀다. 곡성지역을 지키는 농부 과학자 이동현의 안내에 따라 소멸해 가는 지방, 벼농사, 공동체의 상황을 지켜보고, 지켜야겠다고 생각하며 [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라는 책을 발표했다. 그가 나온 TV 인터뷰에서 너무 인상적인 말을 들었다. 지방과 농촌마다 아이가 없고, 학교도 문을 닫고, 젊은 일손도 없어 위기라고 하지만,     



정말로 소멸해 가는 곳은 서울이죠



건물과 사람밖에 남지 않은.

풀과 나무, 산, 곤충, 새, 미생물... 

아름답고 지킬만한 것들을 잃어가는 서울.     



인간이 환경을 지배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 환경이 또한 인간을 지배한다. 내 마음이 너무 뾰족하거나 파삭파삭 말라 간다면 그건 주변에 콘크리트만 가득해서일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서울에서 꿀 수 있는 가장 불가능한 꿈은 50억 빌딩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 건물을 부수고, 도로를 없애고, 그 자리에 잔디와 나무 몇 그루 심는다고 가정하자.

시간과 에너지와 자본을 들여 푸른 한 뼘 땅을 고의로 만들었다고 상상해 보자.

그야말로 진정 미친놈이라 불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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