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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봉란 Oct 16. 2023

이곳은 서울인가, 시드니인가

외국인 반, 한국인 반

편리한 것만큼이나 불편한 것도 공존하는 것이 서울 생활이지만, 야식을 먹고 싶을 때만큼은

역시, 서울이다.     

 


함께할 남편이 없고, 재울 아이도 없던 청년 시절, 집 근처 홍대거리를 매일 쏘다녔다. 오랜만에 서울에 돌아오니, 낮이고 밤이고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 속에 불안정하게 갈지자로 흔들리던 청춘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의 포장마차 쌀 떡볶이가 먹고 싶어졌다.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차에 올랐다. 엄마 아빠의 옛날 만남 장소에 자녀들을 합류시켜 추억을 갱신할 요량이었다. 물론 서울은 늘 주차 자리가 넉넉지 않지만 강북은 강남에 비해서는 그래도 형편이 나았던 것 같은데…. 문 닫은 상점 앞이나, 약간의 빈틈이 보이는 자리들이 아량을 베풀곤 했는데, 10년 만에 다시 찾은 홍대는 훨씬 더 빡빡했다. 교통량도 훨씬 늘었음을 체감했다. 자신만의 멋을 갖춘 아담한 가게들보다는 대형 상권이 대로를 장악했고, 빌딩들은 ‘나 쌔삥하지?’ 라며 대놓고, 뽐내는 것 같았다.     



온갖 요령과 센스를 끌어모아 간신히 주차하고 포장마차를 찾아 걸어가는 길에 이미 예감했다. 추억의 장소는 신기루처럼 사라졌겠구나. 무슨 말이냐면, 똑같은 곳인데, 길거리 풍경의 골조는 비슷한데, 정서적으로 너무 달랐다. 젠트리피케이션(낙후 지역에 외부인과 자본이 유입되어 임대료 상승 등으로 원주민이 밀려나는 현상)을 설명하는 사례로 뉴욕의 소호가 교과서적인 예라면 한국에서는 틀림없이 홍대입구가 대표일 것이다.      



홍대입구역



특히 놀랐던 건, 지나다니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한국인보다 외국 사람이 더 많았다. 너무 신기해서 손가락을 펼쳐 세 봤다. 떡볶이와 튀김을 주문하는 사람, 먹는 사람,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쭉 살펴보는데 한국 사람은 우리 가족과 주인아저씨뿐이었다. 포장마차의 메뉴판이 괜히 다국적 언어로 적혀 있는 게 아니었다. 여기선 떡볶이 장사를 하려 해도 스피킹은 기본이겠구나.     



서울이 어느새 시드니처럼 변한 건가? 다민족 사회. 국가적인 차원에서 이민자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종족의 다양성이 당연한 도시. 장강명 작가의 [한국이 싫어서]에서 주인공이 부조리한 한국에서의 삶이 싫어서 이민을 결심하고 선택한 곳. 호주의 시드니 말이다.      



나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거기로 여행을 다녀왔었다. 거리에서는 한국말이 심심찮게 들렸다. 검은 피부 흰 피부 노랑 피부 섞여 있는 것이 어색하지 않았고, 내가 이방인이라는 이질감을 느끼지 못했다. 전혀. 주류 인종의 눈치를 보며 대세가 무엇인가 파악해야 하는 분위기가 아니라, 너나가 다른 것이 표준값인 듯했다. (그 안에도 인종차별은 있다고 들었지만) 자신을 호되게 깎아내고 틀에 끼워 맞추지 않아도 살만한 것 같았다. 행복을 찾는 이민자들이 많은 데는 다 이유가 있을 테니까.      



응? 그런데 서울이 그런 곳이 됐다고?     



또 다른 날 찾았던, 24시간 영업하는 ㅁ분식집도 비슷했다. 밤 10시쯤 들어갔음에도 다닥다닥 붙은 의자들이 모두 만석이었다. 지방과 확연히 다른 비좁음에 답답했다. 저기 건너 건너 건너 테이블과도 한 식구처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손님의 절반은 외국인이었다. 마침 혼밥 하러 온 학생은 쫄면을 시켰는데 야채를 빼놓고 먹어서 나이 지긋한 식당 이모님한테 잔소리를 들었다. 야채를 팍팍 비벼서 먹어야 맛있지! 하시는데, 우리 여섯 살 딸내미가 “야채를 잘 먹어야 하는데, 편식하면 안 되는데”라고 화답해서 민망했다.      



옆자리에는 3색의 인종이 함께하고 있었다, 각 나라의 억양을 섞어 구사하는 영어가 흥미로웠다. 정말 영어가 만국의 공통 언어가 맞나 보다. 러시아 억양을 가진 여성이 한국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는 알 순 없었으나, 여기 만두가 3,500원이고 보통 커피 한 잔이 5,000원이니까, 1시간 일하면 만두랑 커피를 사 먹을 수 있다고 친구와 수다 떨고 있었다. 그녀는 대한민국의 최저시급과 물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낮에 들렸던 신촌은 또 다른 분위기였다. 그토록 많은 외국인이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관광객으로만 보이진 않았다. 딱 봐도 여행 가방이 아닌 책가방을 메고 있었고, 왠지 똑똑해 보이는, IT 계열에 종사할 것 같은 인도 사람과 히잡을 쓴 여인들도 보였다. 신촌에는 여러 대학이 있고 대형 어학원도 있어서 유학생인가 보다 혼자 추정했다. 실제로 서울시에서 2022년에 조사한 결과 서대문구 신촌동과 홍대 근방의 서교동이 서울에서 낮 시간대 외국인 생활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으로 조사되었단다.       

  



내가 살던 지방에도 외국인들이 많았다. 특히 원곡동은 상점의 간판까지도 외국어로 되어 있어, 무슨 음식을 파는 것인지, 무슨 서비스를 해 주는 곳인지 묘연한 곳도 있었다. 하지만 신촌, 홍대와는 느낌이 달랐다. 다수의 한국 사람인들 사이에서 균열을 내고, 비집고 들어와, 억척같이 뿌리내린 노동자들이 많았다. 소문에는 물 건너온 칼잡이들도 있다고, 해가 지면 길에 혼자 다니지 말라고 충고했다. 근방 경찰서나 소방서에서 근무하는 이들은 다양한 사건 사고들 때문에 참 어렵다고. 대신 무사히 임기를 채우면 경륜을 쌓고 승진을 노려볼 수 있다고 했다.  한 편으로는 일하다가 억울한 일을 당한 외국인들도  많아 무료로 노무 상담을 해주는 봉사자들과 다문화 복지를 위해 애쓰는 기관들이 귀했다.     

      


코로나가 끝나고 다시 찾아온 관광객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이제는 사회에 스며든 외국인이 많아졌다. 시드니에서 한국 사람이 사는 것이 자연스럽듯, 서울에서는 옆집 철수와 앞집 찰스가 공존하게 되었다.           



우리 사회가 그 덕을 보길 바란다.

한 발짝도 물러설 수 없는 여와 야, 꼰대와 MZ, 부자와 빈자, 남과 여 등등의 갈등 속에서

온 세계 민족, 그 다양한 생활상을 보며

“그럴 수도 있구나” 의 마음이 깨어나면 좋겠다.   

       



소곤소곤 :

머리는 일주일에 한 번 감아도 되는구나, (매우 놀람)

모든 사람이 치킨을 먹지는 않는구나. (더더욱 놀람)

남자가 애를 키울 수도 있구나. (정말 괜찮냐고 묻는 누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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