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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봉란 Oct 22. 2023

시골쥐 서울쥐

더 나은 삶의 가능성



아빠는 환갑이 되기 전부터 귀농 교양 강좌를 듣곤 하셨다. 숲 해설 공부를 하고 틈틈이 친구분들과 문화재 탐방을 다니신다. 평생을 도시의 중심부에서 성실하게 회사를 이끌었는데, 은퇴하면 미련 없이 떠나실 것 같다. 건물이 시야를 가리지 않는 곳 고구마나 키우면서, 동네 도서관에서는 책 보고 붓글씨 쓰고, 여생을 행복하게 보낼 완벽한 계획을 세우셨다. 반면 엄마는 도시 여자다. 사람은 모름지기 나이 들수록 도시의 편의 속에 살아야 한다며 병원 가깝고 모든 인프라 갖춰진 서울에 머무는 걸 선호하신다.



나는 천성이 아빠 쪽을 더 많이 닮았나 보다. 서울에서 대중교통으로 2시간 떨어진 곳에서 10년을 살고 나니, 서울로부터 더 멀리 갈 수도 있겠다는 배짱이 생겼다. 주변에는 귀촌을 선택한 지인들도 몇 있어 가끔 정보도 얻곤 한다.



서울에서는 주거 불안이 살기 힘든 원인의 1순위인데, 순천에 내려간 지인의 말로는 자연경관, 여유, 집값 이 세 가지 장점이 있을진대 그중 제일은 집 걱정 없는 거란다. 명토 박아 말하자면 서울에서 원룸 하나 구할 가격이면 구축 아파트 30평대에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선택지가 서울만큼 많지는 않지만, 청년이 워낙 없는 동네라 얼마든지 일을 구할 수 있다고도 했다. 다만 싱글인 자기는 너무 심심하다며 전화통을 놓지 않았다. 진도에 내려가서 사는 또 다른 지인은 부부가 함께 로컬 여행사를 기획해 로컬투어 상품을 준비하고 있다. 아참, 마을 이장도 야심 차게 꿈꾸고 있다. 현재는 면사무소에서 기간제 근로자로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는데 적게 벌지만, 스트레스가 서울에서의 삶과 비교할 수 없이 낮아, 기대 이상으로 만족한다고 했다.

 


어렸을 적에는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다. 지방 살이 말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방송국에서 일하고 싶은 꿈이 있어 시험을 봤다. 내 능력으로는 뚫을 수 없는 바늘구멍이었다. 선생님들이 충고하기를, 지방에도 지원해 보라고, 그러면 원하는 일을 할 수도 있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그땐 지방에 가서 산다는 건 아예 선택 범위 안에 설정되지 않았다. 생각조차 안 해보는,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치부했다. 결국 방송국 드림은 텔레비전은 진출도 못해본 채 라디오에서 프로그램의 꼭지 한 두 개 맡아 1년 경험하고, 일반 회사에 취직하면서 아스라이 사라졌다. 생각해 보면 라디오 하면서 재밌게 일했고, 좋아하면서 다녔는데, 이십 대  중반에 시야가 조금만 넓었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내가 원하는 곳을 고집하지 않고,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은 어디일까 탐색이라도 해봤더라면... 지방이라고 다  받아줬을 리 없지만 그 어딘가에서 유익을 끼치며 더 다양한 경험들을 할 수 있진 않았을까?



감사하게도 내게 허락된 인생에서 다양한 가능성의 삶을 보게 되었다. 더 나은 삶이 있을 수 있는데, 경험하지 못해 겁을 내는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다시 시작한 서울살이 안에서도 새로운 대안적인 삶을 색해 봐야겠다. 여기 브런치에 그 실험들을 기록해봐야지.








전원주택에 사는 시골쥐는 아파트에 사는 서울쥐를 집으로 초대했어요. 서울쥐는 쉬는 날 없이 일하느라 무척 오랜만에 여행을 떠나온 거였지요.      



시골쥐는 서울쥐를 위해 최고의 웰빙밥상을 준비했어요. 밭에서 직접 키운 줄콩을 빻아 바질, 로즈메리 등의 허브들과 함께 슥슥 버무려내니 별미가 탄생했어요. 또, 산에서 엊그제 따왔다는 참나물과 송이버섯 등의 귀한 재료가 가득 들어간 비빔밥도 맛이 일품이었어요. 시골쥐는 마을회관에서 청년쥐들을 위한 강의를 들었다며, 명인이 알려준 비법으로 담근 엄나무순 장아찌까지 내 오는 게 아니겠어요. 몇 년 전, 시골쥐의 초대를 받고 왔을 때는 볼품없는 도토리, 쥐엄열매, 말라비틀어진 강냉이 쪼가리만 있었던 것 같은데. 이건 서울쥐가 쌔빠지게 돈 벌어서 가끔 기념일에 고급 한정식집에 가야, 유기농 비건 식당에나 가야 비싼 값 주고 사 먹는 거였어요.     



서울쥐는 배를 두드리면서, 시골쥐에게 너도 오랜만에 서울 나들이 한번 오라고 했어요! 이번엔 특별히 한강 유람선이랑 남산 케이블카도 태워준다고요. 지난번 왔을 때 시골쥐가 잘 먹었던 생크림 케이크도 큰 걸로 하나 준비해 놓겠다면서요. 그런데 웬일인지, 시골쥐가 영 시큰둥해요. 전번에는 당장에 따라 상경하더니 말이죠.     


"그래, 다음에. 요즘은 내가 밀가루는 안 먹고 있어서 말이야.  그리고 지난번에 차에 치일뻔해서 꼬리 잘릴뻔한 거 생각하면 아직도 진땀이 나."


서울쥐는 그래도, 애들 교육 생각하면 너도 이젠 좀 올라와서 살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니 시골쥐가 그래요. 요즘 시골에 하도 애들이 없어서 여기 학교 다니면 승마도 공짜, 스키도 공짜. 유학도 공짜라고요. 서울쥐는 눈이 휘둥그레졌어요. 그게 참말이냐고 여러 번 물었지요. 시골쥐는 이 오랜 벗을 못 믿겠냐며 같이 내려와 살자고 했어요. 서울쥐는 동공이 흔들리는 듯했어요. 하지만 이내,     


"아니야, 난 그래도 서울에 살래"

라며 자기 집으로 돌아갔답니다.


+ 위의 이야기는 무주와 곡성을 여행할 때 현지 분들이 애들 데리고 내려와서 살라며 설명해 준 이야기들을 토대로 썼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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