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봉란 Nov 14. 2023

2023년이 48일 남았습니다

프롤로그 : 필사적인 이삿짐 정리


새해 계획보다는 한 해 마무리에 열을 올린다.

올해는 48일 남았다.


어떤 해에는 숨 가쁘게 지내왔던 1년을 돌아보며 혼자만의 십 대 사건을 정리했다. 산속에 있는 고요한 예배당을 찾아 들어가 곡기마저 끊고,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고 물으며 며칠을 버티기도 했다. 몇 년 전에는 9월 23일부터 100일 글쓰기에 도전했다. (장렬히 실패했다)


하지만 올해는 그보다 앞서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삶을 정돈되게 살기 위한 밑작업이다.

엄마의 오롯한 시간을 확보하려는 전략이며

분산되는 에너지를 모아 유의미한 삶에 집중하려는 몸부림이다. 일은 넘치는데 집에서 놀고 있냐는 소리를 듣는 전업맘이 워킹하기 위한 1단계 준비 작업이다.


@mm2_home



이사한 지 1년.
아직도 짐 정리 중이다.


엄마의 손길을 최소화하는 공간으로
집을 세팅해 보자.







결혼하고 11년 동안 5번의 이사를 했다. 집을 좁혀 이사하느라 억지로 짐을 버려야 했던 경우를 제외하면 저절로 짐이 단출해진 적은 없다.  이삿짐 정리는 살면서 하는 거라고 다들 쉬엄쉬엄 무리하지 말랬다. 매우 끄덕이며 느긋하게 정리를 하다 말다 반복했다. 문제는 짐이라는 것은 절대 줄어드는 법이 없어서 신경 쓰지 않고 있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기하급수적으로 증식해 사방을 점령한다는 점이다. 과거로부터 쌓인 짐과 새로이 밀려 들어온 짐들이 합세해서 집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2024년이 되기 전

남은 시간은 짐정리를 해야겠다.


짐정리가 이리도 어려운 이유는 우선순위에서 끊임없이 밀려나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일상에서 처리해야 하는 빨래, 청소, 설거지, 애들 챙기는 수만 가지 일로도 버거운데, 당장의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일이라면 무한 대기 시켜 놓는다. 그래도 된다. NO PROBLEM. 내 몸 건강하고, 결혼기념일에는 아직까지 재계약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으며, 아이들 얼굴엔 그늘보다 볕 든 날이 많다.


하지만 중요한 일들에 밀린 어떤 꾸러미는 지난번 이삿짐센터에서 싸 준 그대로 이번 집에, 푸르지도 않고 고대로 가져왔다. 어릴 적에 듣던 클래식 씨디들이었는데, 주로 핸드폰으로 음악을 듣는 요즘은 굳이 꺼내 들을 일이 없었다. 또, 현재 집에는 베란다가 없어서 이사 전 베란다에 있던 물건들을 박스에 포장해 현관 바깥, 엘리베이터 앞에 '일단' 쌓아두었다.

그대로 10개월이 흘렀다.


도둑이 들어 그 짐을 통째로 훔쳐간대도 생활에 별 지장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그냥 100L 종량제봉투를 사다가 가차 없이 쓸어 담으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100L는 현재 없어졌고 75L가 최대용량이기 때문이 아니라, 초등 때 일기장까지 간직하고 있는 내겐 물건 버리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박스를 여는 순간 물건들은 내게 말을 걸면서 친한 척을 하고 마음에 들러붙어 말을 건넨다.

'나 안 버릴 거지?'


혼자의 힘으로는 절대 정리할 수 없어서 온라인 세상에서 만난 선생님들에게 배우기로 했다.


3년 전, 미니멀 라이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또 알고 나서도 별로 원치 않는 생활방식이라 생각했지만 '당신의 인생을 정리해 드립니다'라는 한 문장에 홀렸다. 바로 나를 위한 모임이었다. 그렇게 하루에 물건 하나를 비우며 정돈된 삶의 비결을 배우는 '당인정' 모임에 1년 정도 참여했다. 리더인 미소님은 양말이 4개라고 했다. 자신이 가진 물건을 다 파악하고 있는 그녀가 신기했다.  카오스 같은 육아의 늪에서 나는 삶의 통제력을 완전히 잃어가는 중이었는데 비움의 개념을 처음으로 배워가며  틈을 얻었다.


올해 이사하고서 만난 분은 비채나쌤이다. 신박한 정리에 나오듯, 집을 싹 정리해 주고 공간을 새롭게 바꾸어주는 일을 업으로 하는 분이다. 그녀의 비포 애프터 현장 사진 보면 고객들도 분명 티브이 프로그램 속 연예인들처럼 눈물을 흘릴 거라 확신한다. 정신없이 어지러운 공간이 깔끔해진 모습은 가히 혁명이라고 부를만하다. 꽉 막혀 보이지 않던 미래가 훤하게 열리고 소망이 가시화되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둥지파괴'를 배웠다. 어질러진 물건은 자석과 같아서 잡동사니들이 모이고 뭉치고 산더미처럼 쌓이게 되는데 이것만 정돈해도 집이 훨씬 단정해 보인다.




우리 집의 단골 둥지는 테이블과 식탁이다. 매일 반복적으로 치워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일이 커진다. 최소한의 청소로 최고의 효과를 내는 방법이다. 10분의 투자로도 집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훤해진다. 아래의 사진처럼 아주 사소한 공간도 조금 더 예뻐진다.




문제는 우리 집에 이런 둥지가 100개쯤 된다는 것이다. 하루이틀 걸려 생긴 일상둥지와 별개로 몇 달씩 쌓인 짐더미들이 있다. 게다가 대형 이삿짐 박스들까지.


48일간의 짐정리 이야기를 기록해보려 한다.

늘 보고 지나칠 때마다, '저거 치워야 하는데'

하는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싶다. 머리 한편에 찜찜하게  남은 미제사건을 이제는 해결해야만 한다!



왠지,


그러고 나면

글도 더 많이,

잘 쓸 수 있을 거 같다.


짐정리를 하고 나면 작가의 길에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가 있을 것만 같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