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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꾸신발 Dec 26. 2022

10. 마무리하며

비정신과 의사의 우울증 투병기

약 한 달 전부터 단약을 하면서 악화되었던 증상들이 지난 주말부터 많이 회복되었다. 주된 변화는 낮 시간대의 불안감이 감소해 신경안정제 없이도 하루를 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직도 무기력증과 설명하기 힘든 마음 답답함은 남아 있지만 그래도 긴 터널의 끝에서 출구가 어렴풋이 보이는 느낌이다.


지난 한 달간 무척 힘들었다.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운동도 열심히 하려고 했는데 때마침 무릎이 아파서 예전에 하던 운동량의 절반밖에 할 수가 없었다. 좌절감이 찾아왔지만 언젠가는 괜찮아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기계적이지만 호전을 위한 노력을 계속해왔다. 약을 꾸준히 복용했고, 가능한 한 운동을 열심히 하려고 했고, 견과류와 영양제도 꾸준히 먹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와 가장 큰 변화는 금주를 시작한 것이다. 10년을 채울 뻔했던 나의 매일 음주 습관은 다행히 약의 도움 없이도 끊어낼 수 있었고,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계속 지속 중이다. 금주/금연 인터넷 카페에 가입해보면 몇 년 동안 계속 금주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 비하면 나는 이제 시작이지만, 먼 길을 나서기 위해서는 일단 걸음을 떼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전문의만 되면 행복할 것이라 생각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인생의 초반부를 겨우 넘어가던 시간이었는데, 자신의 처지를 넘어서 먼 미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일은 참 쉽지 않은 것 같다. 다시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것만 넘기면 행복하겠지라고 생각한 순간들은 많이 있었다. 끝없는 일에 파묻혀 막차 시간이 다 되어서야 겨우 퇴근할 수 있었던 전공의 시절, 오프가 없어서 병원 밖으로 한 발 자국도 나서지 못하던 인턴 시절, 수없는 시험에 지쳐가던 의대생 시절, 수능이라는 커다란 시험을 앞두고 불안에 떨었던 고3 시절. 과거를 복기하면서 미래에 대해 생각한다. 지금 나의 우울증은 호전되는 중이지만 나의 인생에 찾아올 시련은 이것이 끝은 아닐 것이다. 왜 살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노트북 앞에 앉아서 글을 쓰다 보면 또 생각이 차분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인생이란, 원래 그런 것이라는 것.




삶이 계속되는 한 우리의 실패는 아프게도 계속되겠지만, 그것이 삶 자체의 실패가 되게는 하지 말자. 절대로 지지 않겠다는 선언보다 필요한 것은 그조차도 용인하면서 계속되는 삶이다

- 김금희, 복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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