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귀 기울였어야 했던 이야기-2

by 해니


잠깐 뜸을 들이던 엄마는 이내 입을 떼었다.


“갑상선에 뭐가 있는 건 20대 때부터 알고 있었어.”

“네? 저 낳기 전부터 있었던 거라고요? 근데 그걸 왜 그냥 두고 있었어요?”

“처음 검사했을 때는 일반적인 종양이라고 그랬어. 악성도 아니고 딱히 커지지도 않는. 그래서 그냥 묵혀둔 거지. 엄마가 느끼기에도 별로 달라지는 게 없었으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별 문제없는 거라면 굳이 수술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을 젊은이는 없겠지. 나라도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엄마가 암 진단받기 2-3년쯤 전에 갑상선 암을 맞춘 사람이 있었다?”

“네? 이건 또 뭔 얘기예요?”

“응 그 당시에 우리 살던 옆 동네에 암인지 아닌지 진료만 보고도 딱딱 맞추는 용한 의사가 있단 이야기를 동네 아줌마들이 하더라고. ○○아줌마가 가본다길래 어떤가 궁금해서 따라가 봤지.”

“갔더니?”

“글쎄, 엄마가 진료실에 앉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의사가 ‘목에 뭐가 있는 거 같은데요.’라고 하는 거야!”


의사가 아니고 도사인가? 어떻게 엑스레이도 MRI도 찍어보지 않았는데 목에 뭐가 있는 줄 알지? 원체 미신 같은 걸 안 믿는 숙희 씨에게 그야말로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이미 20대 시절부터 갖고 있었던 거고 별 문제없는 녀석임을 의사에게 전했다고 했다.


“아닐 텐데...... 더 큰 병원 가서 정밀 진단받아보세요.”


믿고 안 믿고는 온전히 숙희 씨 몫이었다. 그날 같이 갔던 아줌마들 중 찝찝한 이야기를 듣고 나온 건 우리 엄마뿐이었다. 긴가민가한 엄마에게 다른 곳에 가서 다시 진단받아보자는 조언을 누군가 한 모양이다. 무당 같은 의사 한 명의 말만 듣고 선뜻 큰 병원에 가서 온갖 검사 프로세스를 밟고 싶지 않았으리라.


“그래서 다른 병원 갔더니 뭐래요?”

“응 엄마가 외할머니 모시고 자주 가던 ○○내과 알지? 거기로 가서 물어봤지. 원장님이 얘기를 듣더니 ‘아유, 그거 그냥 옛날부터 있던 그거예요. 신경 안 써도 돼요.’라고 하는 거야. 그래서 엄마도 그런가 보다 하고 3차 병원에 가볼 생각을 안 했지.”

“아니, 그 선생도 뭐 하나 찍어보지도 않고서는 아니라고 진단을 내린 거예요? 와 진짜 황당하네!”

“그러게나 말이다......”


tempImageZBbavs.heic


후회나 회한은 숙희 씨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건강을 잃은 상황에서 마지막 기회일 수 있었던 그 순간을 복기하려니 심정이 복잡한 듯 보였다. 이야기를 듣던 내 마음도 마찬가지였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그때로 돌아가서 엄마를 끌고 병원에 갔을 텐데. 대학 갔다고 신나서 칠렐레 팔렐레 놀 시간에 엄마를 좀 더 챙겼어야 했는데. 별의별 상념들이 스쳤다.


원체 병원을 싫어한 숙희 씨는 결국 정밀검진을 받지 않았다. 엄마가 아프고 난 뒤에 알게 된 일화였기에 왜 그랬냐고 타박 아닌 타박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 판단이 이해되기도 했다. 두 사람 모두 공인된 자격증을 가졌고, 첫 번째 의사는 정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으며, 듣는 입장에서 가장 마음이 편해질 만한 말을 건넨 건 두 번째 의사였으니까 말이다.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라는 속담이 있다. 건강에 도움이 되는 약이 입에 쓰듯, 이로운 충고는 귀에 거슬린다는 말이다. 엄마에게 ‘아무 문제없다’는 그야말로 사탕 같은 말이었을 거다. 듣기 좋은 말을 듣고 싶은 건 사람의 본능인걸 어쩌랴. 그렇다고 숙희 씨가 그 사탕을 삼킨 것에 통한의 후회를 하고 그런 건 아니었다. 살다 보니 그런 일도 있었다-는 정도였을 뿐이다. 엄마는 덤덤하게 이야기를 하고 난 뒤 아무렇지 않게 뜨개질을 하러 갔다.


그나저나 그 도사 같던 의사는 여전히 일을 하고 있을까? 왜 엄마에게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는지 진단 근거를 들어봤으면 좋았을 텐데 어딘지 전혀 몰라서 아쉽다. 안도의 사탕을 준 의사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다른 이름으로 영업 중이다. 홈페이지 내 전문 진료 영역에 ‘갑상선’을 기재해 놨던데 과연 전문 분야가 맞는지 흐린 눈을 하고 스크린을 잠시 째려봤다. 여전히 달달한 진단만 내리고 있지 않기를 바란다.

keyword
이전 21화귀 기울였어야 했던 이야기-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