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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기울였어야 했던 이야기-1

by 해니

엄마의 암은 갑상선 암이었다. 가족이 병에 걸리니 이런저런 관련 정보나 이야기를 찾아보게 됐다. 그러던 중 눈에 든 표현이 있었다. 갑상선 암은 ‘착한 암’이라는 것이었다. 착한 암이라...... 애초에 병이라는 게 착할 수가 있을까? 쉬운 위로의 방편으로 쓰이는 말이라는 걸 알지만 그것도 정말 초기일 때나 먹힐 말이었다.


2009년, 검진에서 암이 발견됐다. 아무것도 모른 채 학교를 다니던 어느 날, 밤늦게 돌아온 집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엄마의 기척 대신 아빠가 조용히 나를 불렀다. 내 방 침대에 나란히 걸터앉은 아빠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했다.


“엄마가 암 이래.”


드라마에서나 들어봤을 법한 대사를 현실에서 들으니 혼란스러웠다. 아빠의 한마디 한마디가 전에 없이 무겁게 느껴졌다. 앞으로 어떤 병원 일정들이 있는지를 전해 듣고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나서 거실을 내다봤다. 안방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아무하고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숙희 씨의 마음이 느껴졌다. 가장 힘들 사람은 엄마일 텐데 딸인 내가 울고 불고 질질 짜면 싫어할 게 뻔해서 엄마 얼굴을 보지 않고 이불속에서 울다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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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상선 암은 예후가 좋다고 들어서 수술을 잘 마치면 괜찮으리라 생각했다. 몸집이 작고 허약한 엄마가 너무 힘들지 않게 빨리 잘 끝나길 기다리던 중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 의사의 호출을 받은 아빠가 말했다.


“절개를 했는데 지금 수술하기 좀 어려운 상태여서 다시 닫았대.”


이게 무슨 일인가. 열었다가 다시 닫다니. 살면서 그토록 허탈한 말은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설명을 들어보니 암세포가 이미 주변으로 퍼져 있어서 외과적으로 건드리기 힘든 상태였던 모양이다. 소위 ‘착하다’는 암은 애꿎은 칼자국만 숙희 씨의 몸과 마음에 남겼다.


엄마를 살리기 위해 아빠는 필사적이었다. 여러 병원에 다니며 많은 의사들의 소견을 들었다. 갑상선 암은 1기일 때나 착한 녀석이지 이곳저곳 퍼진 4기는 다른 암들과 별 다를 게 없었다. 대형 병원 두 군데에서 진단을 받았다. A병원은 엄마의 잔여 수명을 5년, B병원은 10년이라고 예측했다. 치료와 관리를 병행한다는 가정하에 내린 선고였다. 엄마 나이 고작 만 50이 되던 해였다. 자식 둘 다 대학을 보내고 ‘인간 김숙희’로서 더 자유롭게 인생을 누릴 그 시작점이었는데 하늘은 늘 그렇듯 무심했다.


시한부 판결을 받았지만 엄마는 완치에 대한 의지가 강했다. 다행히 몇 년이라는 시간이 주어졌고, 당장 써볼 수 있는 항암제와 치료 방법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이 의학 기술이 발전해서 치료제가 탄생하기를 기대할 수도 있었다. 엄마가 한창 항암 치료를 진행하던 때, 평소처럼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다가 불현듯 궁금해져 엄마에게 물었다. 병을 좀 빨리 발견했으면 좋았을 텐데 어쩌다 이렇게 늦어졌을까 안타까운 마음에서 시작한 질문이었다.


“1기에 발견했음 좀 나았을 텐데...... 건강검진 꼬박꼬박 안 받았어요?”


시선은 텔레비전에 가있었지만 생각이 많아진 듯한 눈빛의 엄마가 말했다.


“다 부질없다. ○○삼촌네 숙모 알지? 유방암 판정을 받았는데 불과 반년 전에 검사했을 때도 안 나왔다더라.”


나는 안다. 엄마가 병원을 참으로 싫어한다는 걸. 좋아서 가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그래도 본인 몸 좀 챙기며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 엄마는 그저 악으로 깡으로 버텼다. 암에 걸린 건 엄마 탓이 아닌데 내 질문이 마치 검진을 제때 받지 않은 본인 탓처럼 들려서였을까, 속으로 ‘우리 엄마가 그렇지 뭐.’ 하고 있던 나에게 숙희 씨는 처음 듣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짙은 후회가 어린 목소리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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