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암 진단을 받고 투병한 지 2년이 훌쩍 넘어가던 해였다. 그 해 나는 결혼을 했는데 한창 신혼의 단꿈을 꾸면서도 아픈 엄마를 두고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건지 마음 한 칸이 쓰라리던 시기였다. 그래도 좋은 짝을 만나 행복하게 잘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엄마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엄마 나름의 노력을 했다. 아파도 티를 잘 안 냈고 힘들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이건 노력이라기보단 몸에 배어 있는 태도에 가까웠다. 숙희 씨는 늘 아픈 걸 표현하는 것을 ‘민폐’처럼 여겼다. 혼자 끙끙 앓고 지나가거나 알리지 않는 식이었다. 심지어 우리가 신혼여행을 가있는 사이에 유방 수술을 다 해놓고는 아무 말 안 하고 있다가 귀국해서야 이야기해주기도 했다. 급하게 잡힌 수술이어서 굳이 말 안 했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딸 입장에서는 엄마가 고생하는지도 모르고 마냥 신나게 놀다 온 자식이 된 것 같아서 야속하고 죄책감이 드는 것이었다. 그 정도로 엄마는 표현을 안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엄마에게서 전화를 받은 건 크리스마스 기념으로 여행 온 남해에서였다. 예기치 않은 눈으로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직후였기에 잘 당도했냐는 안부 전화라고 생각하고 받았다.
“어...... 으으으, 해...... 해나...... 으으-”
분명 엄마 번호로 온 전화인데. 내가 연락처에 저장해 둔 이름 ‘어마마마’가 맞는데. 아픔에 괴로워하는, 목구멍을 쥐어짜는 듯한 앓는 소리가 핸드폰 너머로 들려왔다. 순간 눈앞이 빙글빙글 하얗게 됐다.
“엄마?? 엄마! 무슨 일이야! 어디가 많이 아파? 엄마?!”
“으...... 흐어억어어억......”
심상치 않은 전화임을 눈치챈 남편의 걱정에 휩싸인 눈빛이 들어왔다.
“장모님 무슨 일 있으신 거야?”
“모르겠어...... 엄마! 엄마!!”
일그러진 얼굴로 엄마를 부르짖었다. 조금만 건드려도 수도꼭지인 나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울 수가 없었다. 눈물이 터지면 제대로 된 판단을 못할까 봐서였다. 엄마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지? 아빠랑 동생은 어디 있지? 지금 바로 서울 올라가야 하나? 머리가 뒤엉키고 목소리는 상기된 채 엄마를 계속 불렀다. 그때 이상한 소리가 감지됐다.
“으어 으으으...... 으히 이히히 히힛”
‘히힛?’ 엄마가 너무 독한 항암 때문에 실성이라도 한 걸까? 별의별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갈피를 못 잡는 사이, 핸드폰에서 예상치 못한 음성들이 넘어왔다.
“으히히히, 나야.”
“아하하하하하하.”
바로 동생과 엄마였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 있는데 둘은 아주 신나 있었다. 예능에서나 보던 몰래카메라에 당한 사람의 모습이 바로 내 모습이었다.
“아 뭐야.....! 난 또 무슨 일 난 줄 알았잖아!”
“와 진짜 몰랐어? 아니 이렇게 속을 줄은~”
아픈 엄마 목소리는 동생이 연기했고 숙희 씨는 감독처럼 옆에서 흥미진진하게 관전하고 있었던 것. 속은 내가 바보지. 아픈 걸 절대 티 내지 않는 엄마가 전화에 대고 이럴 리가 없는데. 아니 그래도 암 환자가 이런 장난을 쳐도 되는 건가. 해도 해도 너무하네.
잔뜩 볼멘소리 늘어놓고 싶었지만 두 장난꾸러기들께서 나를 골탕먹이며 즐거웠으면 됐다 치고 넘어가 드렸다. 성깔 있는 딸이었으면 바락바락 뭐라 하며 ‘장난도 정도가 있지!’하고 화냈겠지만, 나는 별 수 없이 순한 양이었다.(착하고 순한 딸 둬서 복 받은 줄 아셔요!)
엄마를 멀리 보내드리고 나니 그런 너무한 장난마저도 그립다. 요즘 통 숙희 씨가 꿈에 안 나오는데 한번 와서 장난도 좀 치고 다 같이 깔깔 웃고 그랬으면 좋겠다. 우리가 온전히 함께였던 그때 그 시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