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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 전하는 사랑

by 해니

엄마와 나란히 걷는다. 어느새 나보다 약간 낮아진 왼팔에 슬쩍 오른팔을 감는다. 국수 타래처럼 차지게 휘감기길 바라지만, 어쩐지 건조하고 휑뎅그렁한 공간이 우리 둘 사이에 서려있다.


“불편해.”


잠시 견뎌주며 걷던 숙희 씨는 이내 슥- 팔을 빼고 남은 걸음을 재촉한다. 머쓱해진 내 오른편은 익숙한 듯 그러려니 한다. 우리가 외출할 때면 팔짱 기싸움이 벌어졌다. 잡으려는 자와 잡히는 자, 끼려는 자와 빼려는 자 그리고 섭섭한 자와 불편한 자의 보이지 않는 알력 다툼이었다. 엄마는 스킨십을 싫어했다. 아무리 메모리를 뒤져봐도 내 기억 속에는 엄마 품에 따스히 안겨 본 데이터가 없었다. 반대로 나는 애정표현을 좋아했다. 정확히는 표현을 받는 걸 원했다. 과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딸로서 할 수 있는 친근한 제스처 정도는 엄마와 나누고 싶었다. 같이 장을 보러 간다던가, 걷기 좋은 여행지에 간다던가 그런 순간들에 말이다. 하지만 늘 곁을 잘 내어주지 않았다. 내어주더라도 아주 잠깐 뿐이었다. 나중에 아빠에게 듣기로는 젊었을 때도 딱히 좋아하지 않았다고 했다.


“아니, 손 좀 잡으려 하면 홱 하고 뿌리쳐 버리고 말이야 참 나.”


강한 외양과 달리 여렸던 아빠가 느낀 그 서운함은 내 마음속의 그것과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숙희 씨와 거리낌 없이 닿을 수 있는 때가 있었다. 그건 바로 내 발이 무척 차가울 때였다. 어린 시절 내내 몸이 냉한 체질이어서 배탈도 잘 나고 손발이 얼음장이 되기도 했다. 한가로운 시간이면 우리는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곤 했는데 내가 먼저 널브러져 있으면 엄마는 끄트머리에 앉음과 동시에 발의 냉기를 감지했다.


“왜 또 이렇게 차.”

“몰라요.”

“다리 좀 굽혀봐.”


엄마는 내 다리를 굽히고는 발등 위에 착! 앉았다. 내 발을 덮은 엄마의 허벅지는 마치 핫팩처럼 따끈따끈했다. 마치 알을 품는 어미 새의 몸짓 같달까. 그렇게 수분 있다 보면 언 발이 솔솔 녹아내렸다. 그 몽글몽글한 해동의 감각이 참 좋았다. 어떤 때는 양쪽 끝에 서로 나란히 누워 있으면 엄마의 발이 내 발을 포개어 덮어 줄 때도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온기를 나누며 웃긴 예능을 보면서 깔깔대곤 했다. 손과 손이 마주 잡은 것보다 더 따듯하고 포근한 발과 발이었다. 어쩌면 손을 잡고 걷거나 팔짱을 끼고 다니는 것보다 더 애틋한 시간들이 아니었을까.


세월이 흘러 체질이 바뀌었는지 내 발은 적당한 온기를 머금었지만 병을 얻은 엄마의 발은 예전 같지 않았다. 어느 날 들른 친정에서 소파에 앉았다가 깜짝 놀랐다.


“발이 왜 이렇게 차? 줘 봐 봐요.”


이내 굽혀진 다리 끝에 익숙하게 앉아 엄마의 언 발을 품었다. 순간 낯선 감정이 올라왔다. 나는 언제나 돌봄을 받는 철딱서니 없는 대상이었는데 이제는 마치 엄마의 엄마처럼 허벅지를 내어주고 있다는 게 기묘하면서도 서글펐다.


3월, 겨울이 끝을 보이고 있다. 나의 딸은 방학 동안 아침마다 소파와 한 몸처럼 지냈는데, 지나가다 가끔 아이 발이 차갑다 느껴지면 숙희 씨가 그랬던 것처럼 잠시 앉아 녹여주었다.


“옛날에 할머니도 엄마 발을 이렇게 해줬었어. 따듯하지?”

“웅 따듯해~”


내리사랑이라 했던가. 까칠했지만 따스했던 할머니의 온기가 손녀에게도 전해지고 있다.

발에서 발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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