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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집의 여왕

by 해니 Mar 11. 2025

 

 부모님 손에 이끌려 이곳저곳 다니던 어린 시절, 나의 기억 속에는 채집을 한 경험이 크게 자리하고 있다. 두 분 중 특히 엄마가 수확하는 걸 참 좋아해서 겨울을 제외한 나머지 계절에는 항상 뭔가를 잡거나 캐고는 했다.

 

 봄은 머위의 계절이었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서울집이 아닌 양양에 주로 계셨는데 머위가 많이 자라는 노지를 귀신같이 찾아서 한 보따리씩 따왔다. 머위가 뭔지도 몰랐는데 덕분에 봄마다 머위 나물을 맛있게 먹었다. 한 번은 엄마를 따라 양양에 갔다가 머위 핫스폿을 따라간 적이 있다. 비닐봉다리와 가위를 진즉 챙겨 온 엄마는 얼기설기 제멋대로 자란 나뭇가지를 헤치고 푸릇한 뭉텅이 사이에 쪼그려 앉아 정신없이 풀을 캤다. 숙희 씨의 재빠른  손놀림에 수많은 머윗대가 숭덩숭덩 잘렸다. 일대를 섭렵하여 봉지가 꽤나 찼을 무렵, 우리는 뜻밖의 생명체를 조우했다.


“어? 이거 뱀인가? 엄마 와서 봐봐요.”

“오, 그렇네. 뱀이네. 사진 찍어, 찍어.”


정말 뱀이었다. 거무튀튀한 큰 뱀 한 마리가 똬리를 틀고 앉아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야생에서 이렇게 큰 개체를 보는 건 처음이었다. 하지만 가까운 곳에 위험한 동물이 있음을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숙희 씨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최대한 많이 머위를 캐가는 것만이 그녀의 목표였다. 한번 앉아서 집중하기 시작하면 그야말로 몰입하던 엄마였다. 아마 그 뱀 친구도 당황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 몸이 무려 살무사인데, 아무도 도망가지 않고 신나게 구경하며 사진 찍고 하던 일도 마저 하고 갔으니까 말이다.(독사인 것은 나중에 사진을 본 지인을 통해 알게 되었다.)


 여름이면 바다에 놀러 가곤 했는데 동해, 서해, 남해 가릴 것 없이 항상 바다 생물들을 잡았다. 깊은 바다에서는 잠수를 해 조개를 잡고, 바위틈에서는 해삼, 개불을 주웠다. 가장 많이 다닌 곳은 서해바다였다. 갯벌은 그야말로 엄마의 무대였다. 지금은 갯벌들도 사업장 형태를 띠고 있어서 입장료를 내고 도구를 대여해 정해진 구역 안에서 캐는 문화가 자리 잡았지만 90년대만 해도 그런 개념이 별로 없었다. 도구만 있으면 어디서 얼마든지 캤다.


 한번 뻘에 들어간 엄마는 하염없이 호미질을 했다. 체력도 그다지 좋지 않으면서 무슨 힘으로 바지락을 캔 걸까. 오히려 젊은 내가 먼저 나가떨어져 뭍으로 후퇴했다. 엄마는 종종, ‘체력은 정신력이다.’라고 했다. 약한 몸을 타고났지만 자존심 강한 엄마는 어떻게든 이겨내려고 하는 경향이 있었다. 좋아하는 일이라면 더더욱이. 만선의 꿈을 이루려는 어부처럼 하염없이 뾰족한 호미 끝과 잿빛 조개 구멍을 따라가다 보면, 숙희 씨는 어느새 점이 되어 있었다. 햇빛이 부서지며 드리워진 갯벌의 윤슬과 하나가 된 엄마를 한참 불렀다.


“엄마! 엄마아!”


목소리가 닿을 리 없는 곳까지 나아간 엄마를 ‘때가 되면 오겠거니’ 하고 기다려야 했다. 밀물 때가 되기 전에 돌아온 한 손에는 수확물이 꽉 들어 찬 양파망이 들려 있었다. 엄마 얼굴에는 뿌듯함이 가득했다. 


 엄마는 지인들의 밭에서 나는 작물을 수확하는 것도 즐겼다. 고추도 따고 상추도 따고, 겸사해서 밤도 따는 풍요로운 가을. 자연의 생산물을 이렇게 좋아하는데 그럼 아예 농사를 지어볼 생각은 없냐는 대화를 한 적이 있다. 


“그렇게 좋으면 밭을 떼다가 뭘 심어서 길러 보는 건 어때요?

“아니야. 나는 누가 다 키워놓은 것만 따는 게 좋아.”


고된 과정은 건너뛰고 열매만 탐했던 숙희 씨 참 약았네. 하하.

지금은 어디에서 채집하고 있을까? 저 높은 곳에서 무얼 따라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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