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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을 잘 치는 김숙희 씨-1

by 해니 Mar 25. 2025

 ‘장난을 잘 치는 타카기 양’이라는 드라마가 있다. 장난의 고수인 여중생 ‘타카기’와 이에 매번 당하는 허당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필통을 깜짝 상자처럼 만들어서 열어보게 해 놀라게 한다든지, 늘 타고 오던 자전거 없이 등교하고서는 ‘너랑 손잡고 학교 가고 싶어서’라고 말해 심쿵하게 만든 달지 하는, 그야말로 중학생다운 귀여운 장난들이 등장했다. 그런데 그런 유치한 모습들을 보면서 왜 엄마 생각이 나는 걸까?  


 우리 집에도 장난을 즐기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숙희 씨였다. 4살 터울 내 동생도 그 정도는 아니었다. 엄마의 장난은 ‘골탕’에 가까웠다. 고지식하고 눈물이 많았던 딸내미는 엄마의 좋은 먹잇감이었고 그녀의 짓궂음은 항상 선이 굵은 추억을 남겼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북한산이 있었다. 그래서 종종 등산을 가곤 했는데 한바탕 올랐다 내려오는 길목 끝자락에는 늘 번데기 장수가 있었다. 양은냄비 한가득 보글보글 끓는 번데기의 고소한 향이 허기진 배를 두드리면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하산길에 번데기 한 컵을 샀다. 이쑤시개로 콕 집어 입에 털어 넣고 음미하던 중 엄마가 불렀다.


“핸, 이거 좀 봐라?”

“뭔데요?”


엄마는 종이컵을 나에게 맡기고는 맨손으로 번데기를 하나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생글생글 웃으며 양손가락으로 쪼글쪼글한 번데기의 끄트머리를 잡아당겼다.


“짜잔!”

“아아아아악!”


그야말로 ‘완전체’의 번데기가 눈앞에 나타났다. 공기가 들어가면서 흉측한 벌레의 원형이 드러나 버린 것이다. 초등학생이었던 내 머릿속 번데기는 그저 맛있는 음식이었을 뿐, 원재료가 무엇인지 어떤 생김새인지는 중요치 않았다. 그런 나를 엄마가 개안시켜 버린 것이다. 윤기 나는 갈색 등 위에 그어진 일정한 간격의 짙은 주름이 벌레로서의 정체성을 당당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비명을 지르고 펄쩍펄쩍 뛰는 소녀의 앞에 사악하게 웃고 있는 숙희 씨가 있었다. 그야말로 깔깔 웃고 있었다. 그 뒤로 다시는 번데기를 먹지 못했다. 엄마 때문에 못 먹게 됐다고 볼멘소리를 하면 “왜애- 그냥 먹어-”라며 약을 올리기도 했다. 옛 어른들의 ‘먹을 걸로 장난 치면 못 써.’라는 말은 우리 엄마에겐 적용되지 않았다.




 잊을 수 없는 일은 또 있었다. 외출을 하려고 아파트 현관문을 열었는데 발치에 무언가 움직이는 것이 있어 자세히 보니 송장메뚜기가 한 마리 있는 것이 아닌가. 


“엄마! 여기 메뚜기가 있어요!”

“오 그래?”

“신기하네. 왜 여기까지 올라왔지? 다녀올게요!”


잠시 후, 나갔다 돌아온 나를 부엌에서 불렀다. 엄마는 뜬금없이 옛날이야기를 꺼냈다.


“핸, 요즘은 먹을 게 천지지만 말이야 엄마가 어릴 때는 논두렁에서 개구리도 잡아먹고, 메뚜기도 잡아먹었다? 구워 먹으면 얼마나 고소했는데. 그래서 엄마가 아까 걔를 잡았어.”

“네?”


그러자 손 끝의 송장 메뚜기가 보였다. 엄마는 능숙하게 젓가락으로 그것을 잡고 가스레인지 불을 켰다. 그리고는 김 구우듯 위아래로 뒤집는 게 아닌가.


“요걸 이렇게 삭- 구워가지고 먹으면 얼마나 맛있게?”


뭐라 말릴 새도 없이 숙희 씨는, 보란 듯이 메뚜기를 입 안에 털어 넣었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으악! 그걸 왜 먹어요?!”

“아하하하 왜! 옛날에는 다 이랬어!”


최근에는 미래음식이다 뭐다 해서 밀웜을 먹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지만, 집에 먹을 게 없는 것도 아닌데 그저 딸내미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즉석에서 메뚜기를 구워 먹는 엄마라니. 사춘기 소녀의 마음은 충격으로 어질어질했다. 벌레를 먹다니! 진짜 벌레를 먹다니! 질겁하는 딸을 보며 히죽히죽 웃는 숙희 씨의 얼굴이 또 보였다. 하...... 개구쟁이 엄마 같으니라고.


숙희 씨의 이런 소소한 유희들은 나를 놀라게 하기도 하고 웃고 울게도 했다. 대체로 귀여운 편에 속한 에피소드들이 대부분이었지만, 한 번은 선을 아주 세게 넘은 마음 아픈 장난이 있었는데......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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