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동본 때문에 사랑을 막았던 시대를 살았던 기억
낯선 이가 우리 동네에 어슬렁 거린다.
“너 누구냐?”
- 저 건넛마을 김해지역 마을에 김 씨라고 합니다.
”그래? 나 너네 마을에 ‘에디’를 알고 있다. “
- 아.. 네 저는 그 에디의 아들입니다.
“아.. 내가 에디랑 친구다. 그럼 너는 에디의 아들 에디 son..이구나. 그 옆에 이기는 누구냐?
- 아.. 네 저의 아들입니다.
“아 그럼 네가 에디 son의 주니어이구나.”
- 네 저는 김해 김 씨의 에디슨이라고 합니다. 이 아기는 저의 아들 에디슨 주니어입니다.
“그렇구나.. 난 레오나르도 지역에 사는 카프리라고 한다.
- 네.. 레오나르도”의” 카프리… 여기서 “의”가 “do”이니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이 시군요.
“그렇다.”
이렇게 에디슨, 메디슨, 퍼거슨, 에릭슨, 로버트 다우어 주니어 등등이 이렇게 생겨났다.
단, 흥민son 은 아니다.
예전에는 지역사회가 좁고, 그 지역에서 대부분 한평생 살기 때문에 유전자 문제로 동성동본을 막은 이유가 있었다.
그래서 몽골에서도 결혼을 위해 아주 멀리멀리 다른 마을로 신붓감을 얻는 것도 그런 이유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복작해졌다.
그러나
나 스무 살 때 동성동본 결혼은 안 된다고 한복 입은 할아버지들이 반대 데모를 했다.
우리 학교 앞에서 한 것 같다. 우리 학교에는 유학 관련 연구소도 있고 전공도 많은 데.. 사실 상관없이 데모를 하셨다.
지금은 사회가 복잡해서 동성동본이라도 친인척이 아니라면 결혼할 수 있다.
우린 그런 사회에 살았다.
사랑도 마음대로 안 되는 사회였다. 말도 안 되는 이유이다.
그래서 그 당시 동거만 하고 애를 낳았지만 자식을 호적에 못 올리는 불 상사가 있었다.
이렇게 사랑의 제약이 조금씩 사라져 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사랑은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