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백은 그냥 살살 쳐라. 폼은 정확히 잡고.. 세게 치지 말고
나 역시 시력검사를 하고 있을 때, 옆에 계신 의사 선생님은 고객에게 화를 내듯 말했다.
"큰일 나세요. 지금 운전하시면 안돼요." 그러자 환자는 말했다. 조심스럽게 운전할게요라고.
환자는 봉고차를 몰고 딜리버리 서비스를 하시는가 보다. 내가 옆에서 보았는 데, 시력검사판 맨 위에 있는 글자만 겨우 읽으셨다.
선생님은 환자의 치료 시간을 정했고, 당분간 운전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알았습니다. 의사 선생님" 말을 하고 환자는 나갔다. 환자는 진료실을 나가면서 카운터로 나가 진료비를 냈다. 물론, 환자는 나직이 계산하는 간호사에게 말했다.
주차 할인해 주세요. 제 차 번호는...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는 그냥 노안이라고 했고, 눈에는 별 이상이 없었다 말씀하셨다. 간단히 안약만 처방받았다. 눈에 이물감 끼는 느낌에 걱정돼서 갔는데 다행이었다.
관장님은 사무실에 앉아 계셨다.
과장님은 지금 대금 연습 중이었다.
대금의 구슬픈 소리가 밖에까지 들렸다.
그러나 슬픈 감정이 들기 전에 너무 많은 삑사리로 그렇게 감정을 흔들지는 못했다.
체육관에는 운동 템포를 위해 MP3로 힙합을 크게 틀어 놓는다.
그래서 운동에는 다행히 "지장"이 없었다.
나는
줄넘기하고, 폼 연습을 한다.
붕대를 감는 동안 숨을 고른다.
권투 장갑을 끼고 샌드백을 쳤다.
힘 빼라는 관장님 말을 무시하고 세게 쳐서 왼쪽 손이 지금도 얼얼했다.
우리네 일상도 힘 빼고 놔두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데 말이다.
인생은 조바심과 여유로움의 대립이고 투쟁이고 협력이고 변증법적 모순 같았다.
권투장을 나와 하늘을 보았다.
눈이 많이 내리고 있다.
흩날리는 눈을 보며 생각한다.
"이제는 무엇을 해야 할까"
하던 거 해야지 뭐. 무슨 고민을 해.
15년 전 미룬 것을 지금 하고 있다. 회피했었는데 말이다.
박사논문도 그렇고, 운동도 그렇다.
물론 안 해도 된다. 시킨 사람이 없다.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할까 보다 과거에 못했던 논문과 운동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건 과거와 연결된 현재이고, 과거와 연결된 미래가 될 것이다.
그래서 과거를 보면 나의 미래를 아는 것이리라.
무슨 괘변이야. ~ 말 같잖은...
이렇게 해서 전생 체험 뭐 이런 거 하는 거다.
과거에 묻어 놓은 일은 언젠가 터지고 드러나게 되듯이 말이다.
그래서 현재를 늘 충실하게 살아야 하는 거 아닐까. 내준 숙제 꼬박하면서 말이다.
그냥 일상이 어쩌면,
산꼭대기로 공을 굴리고 있으니 , 오늘도 일단 꼭대기로 굴리는 거다.
공이 다시 밑으로 떨어져도 다시 위로 굴리는 거다.
그냥 그게 인생일까? 벌일까?
그래. 그게 인생이지.
그러면서 집에 들어와 냉장고에 생연어를 꺼내고 화이트 와인을 마셨다. 흩날리는 눈을 보며...
너무 많이 마셨나.
교수님께 논문은 이번 주 말고 다음 주에 보여드릴게요라고 전화 드렸다.
...쩝.
어젯밤에 논문 안 쓰고 술을 너무 많셨다. 집에서...
미루지 말자. 쪼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