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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치용 Jun 18. 2024

어려서 난닝구 바람으로 문밖을 나서지 않았으나,

유서가 쓰고 싶을 때 나는 라면물을 올린다

많은 사람이 생계를 꾸리는 데 시간 대부분을 사용하지. 그러다가 조금이라도 자유가 주어지면 불안해하며 거기에서 빠져나오려고 애를 쓰지. 인간의 숙명인가.     
Die meisten verarbeiten den größten Teil der Zeit, um zu leben, und das bißchen, das ihnen von Freiheit übrig bleibt, ängstigt sie so, daß sie alle Mittel aufsuchen, um es loszuwerden. O Bestimmung des Menschen!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출간 연도는 1774년이다. 근대사 출발점의 하나로 거론되는 프랑스혁명이 1789년에 발발한다. 프랑스혁명을 목전에 둔 시점에 20대 중반의 청년 괴테가 독일문학의 가능성을 세계에 선포한 작품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다. 무명인 괴테를 일약 유명인으로 만들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속 베르테르의 생각은 따라서 지금의 나와는 다를 수 있다. 당시 20대 중반이란 나이의 의미, 또 대문호 괴테라는 인물의 의식을 감안하면 청년 괴테가 지금의 나보다 성숙하지 말란 법이 없긴 하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나이 혹은 연륜을 무시하지는 못한다. 아 꼰대가 되었다는 표시인가? 변명하면 나이 많은 사람이 젊은 사람보다 더 현명하거나 정신적으로 더 성숙하다는 뜻이 아니라, 나이가 들면 젊을 때 안 보이던 것이 보이게 된다는 얘기다. 그중엔 안 보이면 더 좋을 법한 것들까지 포함된다.     

세상이 변하면 나이의 의미가 변한다     


나이듦의 의미 자체는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것을 판단하는 잣대는 달라지는 듯하다. 즉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야 나이가 들어 연륜이란 것을 운위할 수 있느냐를 두고는 점점 ‘고령화’ 추세를 보인다.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는 70살까지 사는 게 드문 일일 때 나온 얘기다. 요즘 웬만한 철부지 아니고는 환갑잔치를 안 하고 70살이 되어도 펄펄 날아다니는 사람이 많다. 지금 나이를 옛날 나이와 비교하려면 70%를 적용해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들 한다. 예컨대 지금 50살은 옛날의 35살로 봐야 한다는 논리다.


단순히 건강수명이 늘어난 것에 맞추어, 즉 분포곡선이 달라졌으니 평균값도 달라져야 하는 게 아니냐는 논리만은 아닌 듯하다. 세상이 복잡다단해지며 ‘경륜이 있다’는 소리를 듣기에 필요한 관점 혹은 견해를 갖추어야 할 분야가 늘어났다. 지혜롭다, 어른스럽다는 얘기를 듣기에 필요한 식견의 양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지식과 지혜가 등가가 아니지만, 최소한의 지식 없이 지혜는 불가능하다. 


나는 50살이 되며 <50대 인문학>이란 책을 썼다. 서문에서 “이제 조금만 더 살아내면 가지에서 떨어진 붉은 단풍잎이 하얀 눈 아래 묻혀 얼어가는 광경을 49번째로 보게 되고, 그러고 아주 조금 더 버티면 심지어 천명까지 알아야 하는 50살 남자가 된다”라고 짐짓 엄숙하게 썼다. 이어진 문장은 다음과 같다.      


“내 어린 시절에 마주 대한 50살 남자는, 그때 어린 내 기준으로나 당시 사회 기준으로나 분명 엄청난 어른이었다. 그때 50대 어른을 보며 이렇게도 생각하였다.

‘저 나이가 되면 무슨 재미로 살까?’

실제 50살이 되면서는, 나는 ‘무슨 재미’보다는 ‘여전히 그 모양 그 꼴로 살고 있음’을 더 많이 생각한다.” 

<50대 인문학>(안치용 지음, 내일을여는책)     


엄청난 어른은커녕 사실 어른인지도 헷갈린다. 천명을 알아야 하는 50살을 넘겨 무슨 얘기를 들어도 거슬림이 없는 이순(耳順)을 바라보지만, 우아하게 지혜를 뿜뿜하기보다는 허덕거리며 모자란 지식을 쌓느라 여전히 분주하다.     


“나는 나이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吾十有五而志于學), 서른에 뜻이 확고하게 섰으며(三十而立), 마흔에는 유혹에 흔들리지 않았고(四十而不惑), 쉰에는 하늘의 명을 알게 되었으며(五十而知天命), 예순에는 남의 (어떤) 말을 들어도 귀에 거슬리지 않았고(六十而耳順), 일흔이 되어서는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사람의 나이와 연관 지어 이정표 격으로 제시되는 공자의 나이 해석은 <논어> 위정편에 나온다. ‘나이’학(學)을 지금 현실에 적용할 수 없기에 앞서 언급한 ‘70%’ 환산법이 이 대목에 매우 유용하다. 궁색하지만, 이제 나는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불혹의 나이 정도의 덕을 갖추면 된다고 자위할 수 있다. 한데 막상 불혹도 쉽지 않다.


그러므로 내가 <50대 인문학>에서 뒤집은 ‘나이학’이 더 마음에 와닿을 수 있다. 지학을 15살, 혹은 청소년기엔 학문에 뜻을 두어라로 해석하는 데에 이견이 없다. 이립(而立)은 말이 안 된다. 서른 살이 되어서 뜻이든 무엇이든 제대로 세우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하여 이립은 “서른 살이 되었거든 홀로 서도록 노력하여라”로 읽힌다. ‘되었거든’과 ‘홀로’ 사이에 ‘제발’을 넣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불혹(不惑)은 영어식으로 말하여 (Don’t으로 시작하는) 부정 명령문으로 풀어야 한다. “마흔 살(또는 40대)이 되거든 유혹이 많으니 유혹에 흔들리지 마라.” 유혹이 더 많아진 것인지, 유혹에 더 눈을 돌리게 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개인적으로 지천명은 어처구니가 없다. 천명은커녕 제 삶도 제대로 꿰지 못한 나이이니 말이다. 내가 예외적으로 미욱해서 그랬던 건 아니라고 확언할 수 있다. 50살 여자는 모르겠고 50살 남자는 도긴개긴이다. 지천명(知天命)을 “(겨우) 쉰 살(또는 50대)에 천명(天命)을 안다고?” 혹은 “쉰 살이 되었으니 천명에도 관심을 기울여라”로 해석하는 게 타협책이다. 공자 시대엔 어땠는지 모르겠으나 천명에 관심 있는 50대는 요즘 드물고 드물다.


이순(耳順)은 “예순 살(또는 60대)이 되었으면 남의 말에 귀를 기울여라”로 이해하자. 60살이 되면 도무지 남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이순을 ‘shut up!’으로까지 받아들이면 존경받고 창의적인 60대가 될 수 있다. 종심(從心)은 당초 불가능하다. “일흔 살이 되거든 마음 가는 대로 욕망대로 행동하느라 법도를 어지럽히는 우를 범하지 마라”로 받아들이자. 공자의 나이학은 이런 변용을 통해 지금 현실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50살에 일단 사표를 냈다     


내 인생의 주요 전환점 중 하나가 50살이다. <50대 인문학>을 쓸 무렵에, 대학을 졸업하고 입사한 직장을 그만두었다. 첫 직장이자 아직 마지막 직장이다. 사표를 쓰기 전에 마음을 정리할 셈으로 긴 휴직 기간을 거쳤다. 집에다 얘기하지 않았기에 거의 1년을 아침에 계속 출근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게 그렇게 싫더니 휴직하고 나선 저절로 그 시간에 눈이 떠졌다. 형 사무실에 빈방이 있어서 한동안 그리로 출근했다. 공간은 그렇게 해결했지만 점심이 문제였다. 몇 개월 지나자 같이 밥 먹을 사람이 없어졌다. 혼자 식사하는 데에 익숙지 않아 점심을 때우는 게 적잖이 힘들었다.


인용문과는 상황이 약간 다르긴 하지만 자유의 무게가 범상치 않음을 체험한 순간이었다. 게다가 생계를 해결해야 했는데, 호구지책을 마련해두고 그만둔 것이 아니어서 자유(Freiheit)라는 게 종종 불안(Angst)에 압도되곤 했다.


항산이 없으면 항심이 없다는 틀린 말이 아니었다. <맹자>의 ‘양혜왕상편(梁惠王上篇)’에서 맹자가 제선왕이 정치에 관해 물었을 때 답하며 나온 얘기다. 원래 무항산무항심(無恒産無恒心)은 개인의 품성을 논한 게 아니라 사회와 국가를 운영하는 기본원리를 설명한 것이다. 개인의 차원으로 이해해도 크게 틀리지 않으나, 사람들이 종종 잊는 것은 무항산무항심 앞의 문장이다. 맹자는 ‘무항산이유항심자 유사위능(無恒産而有恒心者 唯士爲能)’이라고 했다. 즉 항산이 없고도 항심을 지닐 수 있는 건 오직 선비만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무항산무항심은 범인의 특징이다. 무계획한 조기 퇴직 후에 개인적으로는 범인임을 자각할 기회가 많았다. 


베르테르가 말한 인간의 운명에서 예외인 존재는 맹자에 따르면 선비이다. 지천명의 나이에 호기롭게 회사에 사표를 내고 나와 확인한 사실은 내가 맹자가 말한 것과 같은 종류의 선비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어린 나를 선비 같은 아이였다고 기억하고 당시 주변에 그렇게 말하곤 했다. 얌전하고 책읽기를 좋아한 데다 바로 위의 형과 달리 누구랑 싸우지를 않았으니 그렇게 생각했을 법하다. 무엇보다 아주 어릴 때부터 난닝구 바람으로는 집 밖으로 나가지를 않았다고 한다. 어려서 선비였지만 나이 들어서는 선비가 아니었다. 


더 나이가 든다고 무항산유항심이 내게 가능할 것 같지는 않다. 다만 무항산무항심은 백성에게 항산을 만들어주는 게 정치의 본령이란 걸 강조한 맥락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무항산무항심은 무항산유항심과 함께 개인의 삶에 있어서도 온전히 적용될 수 있는 금언이기도 하다. 


여기서 어리석은 질문 하나, 항산을 추구하는 것과 선비 되기를 추구하는 것 중에 어떤 삶의 전략을 택하는 게 더 나을까. 모르긴 몰라도 나이가 들고 만일 더 현명해진다면 선비 쪽이 더 효율적인 선택이 아닐까. 자본주의를 사는 우리에게 추구해서 만족할 만한 수준의 항산을 갖게 될 확률이 미미하기에, 차라리 선비 쪽이 낫다는 현실론이 압도적으로 효율적이다. 그것은 정신승리일 수도 있고 지혜일 수도 있다. 


한데 얼마만큼 나이가 들어야 인간의 운명 혹은 규정에서 벗어나 삶의 조건과 무관하게 항심을 갖게 될 수 있을까. 적은 나이는 아닐 것이다. 수명만 늘어나고, 철은 안 드니 말이다. 그때까지 뇌가 온전해야 할 텐데, 그러나 노년의 온전한 뇌라는 게 대체로 항산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형편임을 떠올리면 항심이란 것이 허망하다. 자유에는 도달하지 못하고, 핵 주위를 도는 전자처럼 자유의 언저리를 맴도는 게 결국 인간의 운명임을 받아들이는 것. 겨우 그것이 지혜이자 항심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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