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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이나 Jan 18. 2024

마지막 여행(2)

이별은 어떻게 대처하나요?

헤어짐의 형태는 다양하다.

많은 사람들은 만나고 헤어진다. 내가 원하든, 상대가 원하든지 간에 마음이 변해서 헤어질 수 있고, 의도치 않은 헤어짐도 있고, 불가피한 헤어짐도 있다. 어른들의 헤어짐은 상대나 내가 원하지 않을 때 각자의 선택으로 인해 존중받고 이해하면서 헤어지면 좋은 그림이 될 것이다. 하지만 한쪽이 원하지 않는데 상대가 헤어지기를 요청한다면 아프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종종 성숙하지 못한 사람이 헤어짐을 요청하는 상대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괴롭히는 사람들이 있지만 말이다.


그럼 부모님과 헤어지는 어린이의 마음은 어떠할까. 어린이에게 선택권은 없다. 부모가 아이에게 이해되도록 설명은 해주겠지만 결국 일방적인 통보가 된다. 혹은 아이를 생각한다고 거짓말을 하는 경우, "넌 몰라도 돼" 라며 무섭게 일갈하는 경우도 있다. 역시 어린이는 약자다. 그들 아래에 태어난 것 말고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 부모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약자라는 이유만으로 존중받지 못하는 것이다.


이상한 사람들


 앞 이야기를 이어가 본다면... 사라진 엄마가 두 남녀를 데리고 불쑥 나타났었다. 언제였지? 세탁소를 갔다 온다고 나간 그날 밤 이후 얼마만의 귀가였는지 기억이 안 난다. 세탁소에 맡겼다는 옷가방은 보이지 않고 낯선 남녀를 데리고 나타나서 나를 데리고 어디론가 간다? 어랏? 봉고차?? 이 피곤한 밤에 애를 데리고 어디를 가는 거야? 나는 잠이 쏟아져 엄마 무릎에 누워 까무룩 잠이 들었다. 아.. 좋다. 엄마 냄새.. 갑자기 사라졌다가 멋대로 돌아오는 이상한 사람.. 이젠 어디를 가는 거지? 


 어릴 적 좋아하는 tv 만화에 노란 막걸리 주전자가 주문을 외우면 주인공들이 시간여행을 떠나는 소재로 매 에피소드마다 '돈데 기리기리 돈데 기리리 돈데돈데 돈데그마?'를 외치면 영화에서 흔히 보는 시공간을 넘나들 수 있는 통로가 열리고 주인공들이 들어갔다가 다른 공간에서 쓩쓩 나타난다. 가만히 눈을 감고 차소음과 덜컹 거림을 느끼고 있으려니 마치 그 시공간 안에 들어가 달리고 있는 것 같다.

 우리가 향한 곳은 대구에 있는 '우방타워랜드' 


아름다운 꽃들로 조경이 되어 사진 찍기로 유명한 우방타워랜드를 그때 처음 가봤다. 그것도 밤에 말이다. 개장시간이 막바지였거나 종료한 시간이었을 거다. 분명 모든 놀이기구는 멈춰 있었고 컴컴했는데, 어랏... 엄마가 데려왔던 두 남녀가 수영장에서 수중발레를 선보이는 것이 아닌가. 


 둘이 수영을 하면서 다가서더니 뽀뽀를 한다? 부... 부부겠지? 달빛이 워낙 밝았던지라 입술이 맞닿은 게 훤히 보였다. 예의상 한 폭의 그림이라고 말해두겠다. 두 사람이 아니라 달빛이 건물의 창에 반사되어 반짝였고, 물에 달빛이 단계를 이루어 어른 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영장에 달이 잠겨있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 넋 놓고 보게 된다.


 아... 엄마는 나에게 좋은 추억을 남겨주고 싶었나 보다. 저 사람들은 좀 떼놓고 오지... 엄마 얼굴은 기억이 안 나는데 저 낯부끄러운 장면은 생생하게 남아 있단 말이야.


이별을 대처하는 자세


 사람이 마음이 떠나면 같이 있기가 힘든 것이다. 누구나 그러하다. 나도 그럴 것이다. 고3이 되자마자 집을 나가 살았던 내 과거가 그걸 증명한다. 엄마는 마음이 떠나간 사람과 살기가 죽기보다 싫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를 보내면서 울기는 또 엄청 운다. 이해할 수 없는 어른들. 아빠와 봉고차 안에서 한참을 언성이 높아졌다 조용해졌다 하면서 대화를 하는 것 같은데... 난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표정의 변화는 있었던가? 


 초등학교 1, 2학년이면 자기표현을 해야 하지 않나? 왜 난 아무것도 말하지도 않았을까. 난 원래도 소심하고 사람들 앞에 서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었다. 엄마가 시키는 대로 따르기만 했었다. 내가 주도적으로 학습해 본 일도 없고, 엄마하고 대화를 많이 해본 기억도 없다. 엄마가 나를 통제해 왔던 것인가. 둘 다 인 것 같다. 내성적이고 부끄러움이 많은 나라서 엄마는 말 좀 잘해라고 웅변을 오래 시켰다. 무엇을 하든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다. 나는 말을 잘하는 아이가 아이였고 엄마는 내 느린 대답과 스스로 할 때까지 기다려 줄 정도로 한가하지도 못했다. 엄마는 주부이자 자영업자로 가게도 꾸려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생각이 없었다. 본능대로 즐거움을 찾아서 사고 치는 행동도 많이 했었다. 엄마가 작은 구멍가게를 할 때 과자를 훔쳐서 먹고 껍질은 여기저기 버리고 다녔다. 집의 전화로 공공기관까지 장난전화를 해대고 몸과 마음의 여유가 없는 엄마는 나로 인해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말은 느리면서 행동으로 사고 치는 건 빠른 아이.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 같다.


엄마가 나에게 차에서 내려 집에 먼저 가라고 했다. 지금의 나라면 이유를 캐묻고, 모녀간의 예의 등을 따져겠지만 엄마 말에 100% 따랐다. 나는 엄마 말에 순응할 줄만 아는 프로그램이 짜여 있었던 것이다. 왜? 를 몰랐다. 나는 이별을 대비할 아무런 준비도 없이 손절당해야 했다. 내 마음, 감정을 쏟아내 보지도 못한 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나에게 내 감정과 생각을 물어보지도 위로해주지 않은 어른들의 잘못일까. 자초지종을 묻고 따지고 바짓가랑이라도 붙잡지 않은 초1 여자아이의 잘못일까. 나는 단지 뭐든지 느린 아이였을 뿐이었다.


 아무도 나에게 이별을 대처하는 자세를 가르쳐준 사람이 없었다. 아무런 설명도 이해해 달라는 이야기도 듣지 못하고 차에서 재빨리 내려놓곤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골목 근처를 서성이며 봉고차를 바라보았다. 그때 난 무슨 생각읋 했었지?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빠가 떠나가고 한참을 우는 것 같은 엄마의 실루엣은 확실히 기억이 나는데 나는 어떤 감정이었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저히 감이 안 잡힌다. 


 난 당신 없이도 잘할 거야. 

왜... 드라마에 보면 어린 시절 불우한 환경에도 눈이 똘똘해서 "저 놈 뭐가 될 거야"라는 소리를 듣는 주인공의 강한 생활력이 파르르 지나가잖아? 내가 지금 시간을 돌려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면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하지만 난 느리고 무딘 아이였다. 그리고 우유부단하고 자기표현에는 약한 아이였다. 모든 상황을 잘 수용하고 잘 받아들이고, 그 상황이 나를 뭉개뜨리더라도 느리게 반응하거나 반응이 없었다. 엄마의 보호막이 사라지니 나는 뱃사공도 없이 정처 없이 떠도는 돛단배에 불과했다. 육지에 줄을 매여줄 뱃사공이 필요한데 돛단배가 혼자서 여기 부딪치고 저기 부딪치고 휩쓸리며 떠내려 가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아마 파손이 되지 않는다면... 어느 육지 하나정도는 만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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