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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이나 Jan 03. 2024

마지막 여행(1)

아이는 엄마이면 충분합니다.

너무 아픈 기억을 다시 꺼내어 놓으려 하면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런데도 한 번씩 넋 놓고 가만히 있을라 하면 그 순간이 나를 잡아당겨 그때의 그 장소에 데려다 놓는 경험을 종종 한다. 무엇이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지는 모르겠다. 아! 최근에는 유니가 애교 섞인 말로 "엄마, 어디 가면 유니 두고 가지 마~"라고 한 적이 있다. 우와우와 한 번씩 이런 말 들으면 응? 갸웃거려질 때가 있다. 내가 널 두고 가려는 뉘앙스를 보인적이 있니? 엄마는 항상 네 손을 잡고 다녔잖아. 아! 주의를 주기는 했다. 어디 놀러 가기 전이나 혹은 길 잃은 아이가 엄마를 무사히 만났다는 동화를 읽었을 때 "엄마나 아빠를 놓치면 그 자리에 있으면 돼, 그래야 찾을 수 있어~ 알았지?" 그런데 요 근래에는 어린이집에서 안전교육을 했는지 되려 나에게 주의를 주기 시작했다. 자기 잘 챙기고 다니라고.. 


그리고 또 있네. 드라이클리닝이 필요한 신랑 옷을 챙겨 나가면서 "엄마, 세탁소 다녀올게. 금방 와~" 아이에게 이야기하고 현관문을 열고 나설 때 그때의 기억이 순간적으로 떠오른다. (물론 신랑이 있을 때 잠깐 다녀오지만) 물론 나는 쏜살같이 뛰어갔다 온다. 5살 딸내미는 유독 엄마가 없으면 찾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그럴 수 있었지?


이런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그때의 기억과 함께 트라우마가 소환된다. 나를 두 번째로 두고 간 엄마의 잔인한 거짓말을 들었던 순간으로 말이다. 아빠가 이 교대 일을 하면서 나와 동생을 돌본다고 고군분투하던 어느 날 나를 낳아준 엄마가 내 눈앞에 다시 나타났었다. 그때는 부부간이라도 한 명이 바람을 피우면 간통죄로 고소해 수감되었던 시절이다. 우리가 다 커서 아빠한테 들었던 말로는 동생을 다시 찾아왔을 때가 엄마가 유치장에 있었을 때였고 고민하던 아빠는 우리 때문에 다시 풀어주었다고 했다. 그리고 엄마는 집에 다시 돌아왔다. 매주 보는 금쪽같은 내 새끼에서 오은영 박사님이 이야기하셨다. 아이는 언제나 부모한테 마음이 열려 있다고. 가능성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이다. 그래. 맞아요! 우리는 엄마에게 마음이 열려 있어요! 엄마다! 보고 싶었던 엄마하고 같이 살게 돼서 너무 기뻤다. 엄마가 우리 앞에 나타났을 때의 기쁨은 지금도 또렷이 기억난다. 가도 가도 목마름과 갈증이 일어나는 뜨거운 사막 위에서 오아시스를 만나 '살아다!' 외치는 자들의 기쁨과도 같았다. 


하... 그 기쁨은 고작 사흘간 지속되었다. 아이에게 달콤한 초콜릿을 줬다가 빼앗아 본 적이 있는가. 장난감 가게에서 너무 좋아하는 장난감을 사고 싶은데 "안돼!"라고 저지당한 아이의 심정을 헤아려 본 적이 있나. 그때마저 엄마는 아이에게 몇 번의 양해와 설명을 하고 저지할 것이다. 보통은 단번에 빼앗지 않는단 말이다. 그런데 그 여자는 집에 돌아온 지 사흘째 되는 날 저녁에 다시 사라져 버렸다. 아빠가 밤 근무가 있었던 날이었고, 그때를 노렸을 것이다. 세탁소 다녀와야 한다는 말에 동생과 나는 멋도 모르고 신나서 가방에 옷을 같이 넣었던 기억이 난다. 분명 엄마는 세탁소에 옷을 맡기고 와야 한다고 말을 했다. "엄마, 세탁소에 갔다 올게. 기다리고 있어 알았지?" 가방 두 개 정도를 챙겨 들고나가는 엄마의 표정을 읽었어야 했다. 아니다. 무언가 의심쩍었지만 올라오는 의심을 꾸역꾸역 눌렀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 밤에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날 밤, 동생과 나는 둘이서 엄마를 기다리다 너무 무서워 울기 시작했다. 그 울음은 점점 커져 숨이 넘어가는 지경에 이르렀고,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엄마를 불러댔다. 그때가 밤이든, 사람들이 잠을 자는 시간이든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나에게 중요한 것이 사라져 버렸다. 돌려주세요. 엄마를 돌려주세요. 숨이 넘어가도록 울면서 외칠 수 있었던 한마디는 고작 "엄마 엉엉 엄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본능적으로 엄마가 나를 버렸다는 것만 알았을 뿐이다. 두 꼬마가 늦은 밤에 밖에서 울면서 돌아다니고 있으니 동네 사람들이 하나 둘 나와 우리 둘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하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날 이후 아빠가 술을 먹는 시간은 길어지고 더불어 한숨도 짙어졌다. 더 더 어두워져 갔다. 술을 먹으면서 우셨다. 화를 내기도 하셨다. 나는 어떤 생각도 행동도 할 수 없었다. 사실은 그냥 그날 이후의 기억이 없다는 게 맞는 것 같다. 내 기억의 타입캡슐은 점프를 해 어느 시점에 다다른다. 행복했던 엄마와의 마지막 추억 여행으로


"아이에겐 엄마라는 커다란 우주가 세상에서 전부예요. 그거면 충분합니다. 아이는 엄마라면 충분합니다. 그 이상을 바라는 게 아니에요. 제발 그 손을 놓지 말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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