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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를 사랑했던 소년은

by 알로 Aug 19. 2020

아홉 살 때부터 야구를 정말 사랑했던 소년이 있어요. 아버지랑 맨날 야구장에 가서 살다시피 했대요. 중학교 때 이미 국내 프로야구 웬만한 선수들 타율은 다 꿰고 있었어요. 자타공인 야구 마니아였죠. 아무개 선수가 안타 친 날, 그날 경기 기록이 뭔지, 9회 말에 분위기가 어땠는지, 누가 언제 물어봐도 다 대답할 수 있을 정도였대요. 대단하죠?


야구 전문기자가 돼야겠다, 한 거예요. 스포츠 일간지에 입사했어요. 그러다 보도국으로 옮기면서 스포츠 전문 방송기자로 일을 했어요. 그 정도면 거의 인생의 전부를 야구에 올인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죠. 제가 그랬어요. 기자님 같은 분이 야구 칼럼 쓰시면 얼마나 좋아요.


발로도 쓰시겠는데요?(웃음)


그니까요. 야구 입문한 사람들 대상으로도 쓸 수 있고요. 근데 자기는 야구를 모른다는 거예요. 야구를 뭘 몰라요, 기자님처럼 잘 아는 사람이 어딨다고, 그랬더니 자기도 자기가 야구를 잘 안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대요.


경기 기록을 달달 외웠을 때 야구 부심이 컸대요. 내 또래 중에 나만큼 야구 잘 아는 사람은 없다. 근데 어느 날 인터뷰에서 김성근 감독이 그랬대요. 저는 야구를 30년 해도 모르겠는데, 기자님은 저보다 야구를 잘 아시네요(웃음). 그래서 다시 생각했대요. 내가 기자니까, 전문기자가 되려면 적어도 야구라는 걸 가지고 인생을 이야기할 수 있을 때. 그 정도는 되어야겠다, 했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저한테 그래요. 작가님, 제가 다른 건 몰라도 '안타' 딱 이 두 글자만 가지고 한 시간 동안 웃겨드릴 수 있어요.


멋있지 않나요? 한 가지 소재를 가지고 한 시간 동안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가요. 야구라는 프레임을 통해 인생을 이야기하기 전까진 전문기자가 아니라는 겸손함도. 저에게 상당히 좋은 자극으로 다가왔던 대화였어요.


또 한분은 저랑 같은 팀에서 일하고 있는 분이에요. 저희가 사건사고 현장도 많이 따라다니다 보니까 사고에서 희생된 분들의 가족들을 만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그분이 얼마 전 발생했던 화재 현장에서 유가족분들을 만나고 왔어요. 사고가 발생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상태라서 가족들이 감정이 굉장히 격해진 상태셨대요. 그럴 땐 사람이 말을 막 격하게 하게 되잖아요. 흥분을 한 상태니까. 그날도 현장에서 말씀을 많이 하셨었나 봐요.  


근데 거기서 고민이 되더래요. 이 인터뷰를 쓰면 조금 자극적일 수 있겠다, 싶어서 다 뺐대요. 왜 그랬냐고 물었더니 사고 당시엔 격한 상태니까 어떤 말이든 할 수가 있는데, 이걸 내가 기사로 보도해버려도 괜찮을까. 기사는 10년, 20년이 지나도 남는 건데, 가족분들한테 혹시 상처가 되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거예요.


자극적인 멘트는 사실 저도 일하면서 많이 혹할 때가 있어요. 어쨌든 사람들이 클릭을 해줘야 취재해온 걸 전달할 수 있는 거니까요. 우리가 흔히 낚였다고 하는 기사들도 자극적인 헤드라인으로 클릭을 유도했는데, 정작 내용은 그걸 못 따라갈 때 쓰는 말이잖아요. 그런데 묻힐 순 없으니까 선을 넘지 않는 정도에서 자극적인 걸 찾게 될 때가 있거든요. 주목을 받아야 뉴스 본질에 충실한다고는 하지만, 그게 유혹으로 다가오는 순간이 있어요. 그분은 거기서 흔들리지 않더라고요. 그 경계선을 올곧게 지켜내는 모습에 제가 정말 많이 반성했어요. 기사는 남으니까, 남는 것에 대한 책임. 그분은 자기뿐만이 아니라 모든 기자들이 다 그렇게 할 거예요, 손사래 쳤지만 이건 얼마나 한결같이 해내느냐의 문제 같거든요. 놀랍게도 그분은 늘 한결같으시고요. 


생각해보면 참 좋은 분들이랑 일하고 있는 것 같아요. 끊임없이 돌아보게 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만들어주는. 그래서 누가 "요즘 일 재밌어?" 물어보면 망설임 없이 대답했던 것 같아요. 그렇다고. 힘들긴 한데, 즐겁다고. 이게 옳은 길인지 모르겠지만, 해보니 꽤 괜찮은 경험이에요.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거. 그 과정에서 겪었던 일들을 오늘 말씀드려볼게요. 딱 세 가지만 기억하시면 돼요.


첫 번째는 나만의 강점을 가져야 한다는 것. 두 번째는 누구에게나 강점이 있다는 것. 세 번째는 그 강점을 꾸준히 가꿔나갔을 때 잭팟이 터진다는 것. 타이밍이 다른 것뿐이라고 믿어요. 누구는 빨리 오고 누구는 늦게 오는지의 차이인 거죠. 언젠간 터지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조금 그걸 염두에 두시고 일희일비하지 마시고, 좌절할 이유는 더더욱 없고요. 그것만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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