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_Art Basel H.K_Galleries 7
파리에는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수많은 유명 갤러리가 존재하지만, 이들 틈새에서 자신만의 독립적인 색채로 파리 현대미술 신(scene)에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는 공간이 있다. 바로 Galerie Allen이다. Galerie Allen은 2013년 파리 10구에 설립된 독립 갤러리로, 비상업적이고 실험적인 전시를 꾸준히 선보여 온 곳이다. 전통적인 화이트 큐브 갤러리와는 달리, 상업적 성공보다는 예술적 자유와 창작의 실험 정신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있는 공간이다. 특히 사회적·정치적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이를 주제로 한 다양한 전시를 기획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곳에서는 회화, 설치, 퍼포먼스, 출판 등 장르의 구분 없이 다양한 매체의 작업들이 소개된다. 신진 작가부터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아티스트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의 작가들이 이곳을 통해 작품을 선보인다. 또한 Galerie Allen은 전시뿐만 아니라 독립출판, 아카이브 프로젝트, 리서치 기반의 큐레이션 등 예술의 확장성을 적극적으로 실험하는 플랫폼으로서 기능하고 있다.
갤러리의 이러한 실험적인 성격은 창립자인 Joseph Allen Shea의 철학과 맞닿아 있다. 호주 출신의 그는 시드니에서 Monster Children Gallery 디렉터로 활동하며 다양한 전시와 출판 프로젝트를 이끌어 온 인물이다. 출판과 예술을 연결하는 데 깊은 관심을 가져온 그는, 파리에서 자신의 독립 갤러리를 설립하면서 이러한 철학을 고스란히 녹여냈다.
오늘날 현대미술에서 공간의 기억과 물질의 본질을 다루는 작가 중 가장 독창적인 언어를 보여주는 인물 중 하나가 바로 Daniel Turner이다. 1983년 미국 버지니아주 포츠머스에서 태어난 그는, 미니멀한 조형 언어와 깊은 개념성을 결합한 작업으로 국제 미술계에서 주목받아 왔다. Daniel Turner는 철, 강철, 구리와 같은 산업적 재료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작업을 지속해 온 작가이다. 그는 병원, 공장, 사무실 등 특정 장소에서 수집한 금속 가구나 건축 자재를 해체하고 녹이는 물리적 과정을 거쳐, 이를 다시 미니멀한 형태의 조각이나 설치로 변환한다. 그의 작업은 단순히 물질을 변형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공간에 축적된 기억과 시간성을 응축해 보여준다.
대표작 중 하나인 ‘Particle Processed Cafeteria’(2017)는 이러한 Turner의 작업 세계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그는 폐쇄된 공장의 식당에서 수집한 철제 구조물과 가구를 모두 용해한 뒤, 하나의 금속판으로 재탄생시켰다. 이 작업은 공장이 지닌 사회적, 노동적 흔적을 물질로 응축하는 동시에, 최소한의 형태로 재현하며 장소의 기억을 소환한다.
Turner의 작업에서 주목할 부분은 바로 ‘비가역성’이다. 그는 한 번 해체한 재료가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작업의 핵심으로 삼는다. 이러한 비가역적인 전환은 Turner가 물질을 다루는 방식뿐만 아니라, 공간과 인간의 흔적을 어떻게 조형적으로 남길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과정과도 맞닿아 있다.
그의 조형물은 형식적으로 미니멀리즘을 연상시키지만, 미니멀리즘과는 다른 깊은 내러티브와 시간성이 내재되어 있다. Turner는 산업재, 금속, 녹, 먼지 등 ‘장소’의 흔적을 품은 재료를 통해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순간을 포착한다. 관객은 그의 작품 앞에서 물질이 품은 기억과 공간의 서사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현재 Turner는 뉴욕을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그의 작품은 Hauser&Wirth, Kunsthalle Basel, White Cube, Galerie Allen 등 유럽과 미국의 유수 갤러리 및 기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그는 설치, 조각, 드로잉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작업하고 있지만, 그 핵심에는 언제나 ‘장소의 해체와 재구성’, ‘물질을 통한 서사화’라는 일관된 문제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Daniel Turner는 단순한 조형 언어 너머로 공간과 인간의 흔적, 그리고 시간을 물질로 응축하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물질의 본질을 탐구하는 현대미술의 흐름 속에서, 매우 독창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앞으로 또 어떤 장소의 기억을 물질로 치환해 낼지, 그의 다음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