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_Art Basel H.K_Galleries 8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만나는 컨템포러리 아트의 중심, blank projects 케이프타운의 우드스톡 지역에 자리 잡은 ‘blank projects’는 남아프리카 현대 미술의 중요한 허브로 손꼽히는 갤러리이다. 2005년 Jonathan Garnham에 의해 설립된 이곳은 처음에는 비영리 프로젝트 스페이스로 시작되었으나, 2012년 상업 갤러리로 전환하며 본격적인 미술계의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된다.
Jonathan Garnham은 케이프타운 출신으로,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남아프리카를 떠났다가 2005년에 귀국하여 'blank projects'를 통해 자신이 오랫동안 고민해 온 남아프리카 현대 미술의 가능성을 현실로 구현해 낸 인물이다. 그는 예술가이자 큐레이터로서의 폭넓은 경험을 바탕으로, 지역 미술계의 발전과 신진 작가의 발굴에 깊이 관여해 왔다.
‘blank projects’는 특히 아프리카의 문화적 맥락에서 개념적이고 추상적인 작품을 중심으로 한 비평적인 전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은 단순한 전시 공간 이상의 역할을 지향하며, 아프리카 현대 미술 담론의 형성과 확산에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다.
이 갤러리가 소개하고 있는 주요 작가로는 Igshaan Adams, Kemang Wa Lehulere, Jared Ginsburg, Zoë Paul, Donna Kukama 등이 있다. 이들은 남아프리카뿐만 아니라 국제무대에서도 주목받고 있는 작가들로, ‘blank projects’의 글로벌한 입지를 보여주는 예시라 할 수 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타운 Bonteheuwel에서 1982년에 태어난 Igshaan Adams는 오늘날 아프리카 현대 미술계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작가이다. Adams는 남아공의 복잡한 역사와 자신의 개인적인 서사를 텍스타일이라는 재료를 통해 풀어내며, 공간과 정체성, 기억의 층위를 깊이 있게 탐구하는 예술가로 알려져 있다.
Adams의 성장 배경은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그는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인종 분리 정책의 상징적인 지역 중 하나인 Bonteheuwel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컬러드(Coloured)’로 분류되는 인종적 정체성, 이슬람 신앙, 그리고 동성애자로서의 자아는 그의 작품 속에서 복합적인 층위로 얽혀 있다. 이러한 개인적 경험은 작품 속에서 끊임없이 ‘경계’를 넘나드는 형상으로 나타난다.
그의 대표적인 시리즈인 ‘Desire Lines(욕망의 선)’는 공공 공간에서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만든 비공식적인 이동 경로를 시각화한 작품이다. Adams는 이 작업을 통해 사회적으로 부여된 공식적인 경로를 벗어나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 만들어낸 궤적을 탐구한다. 특히 카펫, 비즈, 플라스틱, 전선 등 일상적인 재료를 활용해 대형 태피스트리를 제작하고, 이러한 작업을 통해 그는 일상 속에서 형성된 무형의 흔적들을 실체화한다. 그의 작품은 남아프리카 무슬림 커뮤니티에서 익숙한 수공예적 기술을 적극적으로 차용하며, 지역적 전통과 현대적인 미술 언어가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형태를 보여준다.
Igshaan Adams의 작품은 종종 ‘장식적’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그는 장식의 미학을 단순한 꾸밈이 아닌 공간과 신체, 정체성의 층위를 이야기하는 도구로 사용한다. 그의 대형 태피스트리는 관객이 작품 안으로 직접 들어가거나 주변을 거닐며 체험하게끔 구성되어 있으며, 이는 Adams가 다루는 ‘경계와 이동’이라는 주제와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특히 Adams의 작품은 관람객의 신체성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며, 그들이 전시 공간에서 직접 ‘욕망의 선’을 따라가도록 유도한다. 이러한 장치들은 관객으로 하여금 개인의 이동성과 경로, 그리고 그것이 남기는 흔적에 대해 자문하게 만든다.
Adams는 남아프리카를 넘어 국제 미술계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2022년 시카고 미술관에서 개최된 개인전 ‘Desire Lines’, 베니스 비엔날레 ‘The Milk of Dreams’ 참여, 그리고 2024년 보스턴 현대미술관에서의 ‘Lynloop’ 설치 등은 그가 전 세계적으로도 인정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의 작업은 남아프리카의 지역적 맥락을 품고 있지만, 그 안에 담긴 ‘경계와 이동’, ‘기억과 공간’이라는 보편적 주제는 세계 각지의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하고 있다.
Igshaan Adams의 작품 세계는 일종의 영적 수행에 가깝다. 그는 반복적인 섬유 작업을 통해 명상적인 상태를 유지하며, 이는 이슬람의 수피즘 전통과도 연결된다. 그의 작품은 개인적인 트라우마와 커뮤니티의 기억, 신앙적 수행,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다층적인 이야기 구조를 형성한다. 오늘날 Adams는 남아프리카 현대 미술계의 중요한 목소리로 자리 잡았으며, 세계 미술사 속에서도 독창적인 시각 언어를 가진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일상적인 재료로부터 만들어진 그의 거대한 태피스트리는 우리 모두가 밟고 지나가는 ‘욕망의 선’처럼, 세상에 은밀하게 남겨진 흔적과 기억을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