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오래 살려고 저렇게 뛰나. 관절 다친다.
회사 근처 대학교에는 넓은 인조잔디 운동장과 육상 트랙이 있다.
특별한 행사가 없다면 보통 점심 식사 후 산책하기에 좋은 곳이다.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며 탁 트인 캠퍼스를 느끼며 공복 스파이크를 완화한다.
러닝이 짧은 시간 효과적으로 운동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이 일반 상식이 되었다.
이를 실천에 옮긴 20대, 30대 대학생, 직장인들은 천천히 걷는 직장인과 교직원 사이로 앞질러 나간다.
땀을 뻘뻘 흘리며 조금은 뛰는 폼이 어색한 50대 후반의 형님, 뛰는 형님이 내 앞을 지나갔다.
나도 뛰어볼까는 마음은 평소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결코 실천에 옮기지 않는다.
땀이 저렇게 나버리면 오후에 일할 때 불편할 것이다.
신발이 러닝화가 아니니 발에 상처가 날 수도 있다.
등등의 여러 가지 변명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방금 나를 앞지른 뛰는 형님은 두 명의 걷는 형님들을 또 한 번 앞질렀다.
걷는 형님들은 자주 걷는 분들이다. 폼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거북목과 굽은 등을 펴기 위한 최적의 자세.
장시간 앉아서 일한 자세의 반대다.
가슴을 펴고 시선은 위로
뒷짐을 딱 지고
발은 살짝 팔자로 가장 편안 자세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주고받던 걷는 형님사이의 팟캐스트 같은 대화는
땀에 젖은 비주얼의 뛰는 형님의 거친 숨소리 사운드는 라디오 방송사고처럼 잠시 멈췄다.
걷는 형님 두 분의 시선은 뛰는 형님을 향하고 있었다.
앞서 뛰어가는 뛰는 형님의 모습을 바라보며 천천히 걷고 있는 걷는 형님들과 걷는 나.
마치 건강을 향한 경쟁에서 밀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때 걷는 형님 중 왼쪽에 더 큰 형님과 우측 형님이 차례로 말씀하셨다.
"얼마나 오래 살려고 저렇게 뛰나."
"저러다 관절 다쳐."
순간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무렇지 않게 뱉은 말 같지만, 100세 시대 건강에 대한 인식과 정보가 함축되어 있달까. 마음 깊숙한 곳에 들어와 박혔다. 건강이라는 주제 앞에서 애써 쿨한 척 변명을 하거나 이미 알고 있는 건강 상식을 늘어놓거나. 어느 쪽이든 그래 그 말이 맞다 하고 다른 주제로 넘기거나.
식이와 운동, 호르몬의 종류와 원리, 수면의 질, 거북목과 허리디스크, 정신 건강까지 의학이 발달하고 의학 지식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 건강에 대해서 무지해서 망가졌다면 변명이라도 하겠는데 그렇게 운동해라 식단관리하라 하였거늘 건강을 망치다니. 건강에 대한 규칙을 어길 때마다 죄책감 + 1이다. 이를 상쇄하는 것이 쿨~ 한 척하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무작정 뛰거나. 무작정 뛰지 않거나. 무감각 해지거나.
(무작정 뛰다가 다치거나)
모두 쿨하지 못하다.
건강에 정말 쿨한 것은 '뛰지 않음'으로 올 수 있는 건강 상태에 대해 알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모르는 상태에서 무작정 뛰거나 무작정 뛰지 않는 것은 쿨하지 않다.
제대로 알아보고 선택하고 감당하는 것이 쿨한 것이다.
쿨한 척은 쓸데없다.
건강은 각자의 선택이고,
그 선택은 오직 본인의 몫이다.
본인 건강은 본인이 챙기자. 쿨한 거다.
그리고 가급적 남의 건강엔 오지랖 말자. 쿨하지 못하니깐